2012년 170일 파업 당시 부족한 인력 수급을 위해 시용기자를 채용했던 MBC가 이번에는 15년차 이상 데스크급 기자들을 헤드헌팅 방식으로 영입할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노조)는 14일 노보를 발행해 “MBC 경영진이 ‘15년차 전후의 데스크급 기자들을 10명 이상 외부에서 수혈한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말했다.

▲ 서울 여의도 MBC 사옥 (사진=미디어스)

MBC노조에 따르면 이번 ‘데스크급 경력기자 채용’은 MBC 경영진 첫 워크숍에서 이진숙 보도본부장의 발의로 시작된 일이다. MBC 내부 관계자들은 3주 전부터 ‘데스크급 경력기자 채용’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열흘 전부터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MBC노조는 “현재 보도국, 스포츠국, <2580> 등 취재 일선에 배치된 기자들 인력구조를 보면 데스크를 맡은 15년차 이상과 그 미만의 비율이 약 1:2로 ‘데스크급 이상’ 기자가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명백한 착시현상’”이라고 강조했다.

김장겸 정치부장이 보도국장으로 수직상승하면서 보도국장 연차가 입사 33년차에서 6계단이나 내려와 부국장, 부장, 팀장 연차도 타사에 비해 급격히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MBC노조는 “KBS, SBS의 경우 대개 24년차가 부장을 맡는 데 비해 MBC는 19년차~20년차가 부장의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창 일선에서 뛰어야 할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MBC노조는 이번 채용 방침을 두고 △향후 조직 운영과 장기적인 인력 수급 계획에 심각한 부담 초래 △앞으로도 많은 기자들을 보복인사, 보복평가를 통해 업무 배제시키겠다는 의지 천명 등 두 가지 목적을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MBC, 일부 보직자도 ‘헤드헌팅’ 경력 채용 계획

MBC노조는 또한 “법적 분쟁에 대해 회사 이익을 대변하거나 대외 이미지를 책임지는 부서의 보직자도 ‘헤드헌팅’ 방식으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MBC노조는 특히 공개채용이 아닌 ‘헤드헌팅’이라는 방식을 가져가려는 사측의 방침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MBC노조는 “보직자를 헤드헌팅이라는 방식으로 외부에서 들여온다는 것은 안광한 사장 스스로 자신이 이끄는 조직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라며 “MBC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례없는 일을 강행하려다 보니 사측은 보직 부장을 한시적 촉탁직으로 채용하는 무리수를 강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좁게는 회사 사규를 혼란스럽게 하고 넓게는 회사의 고용구조를 어지럽게 하는 해사행위”라고 꼬집었다

2012년 MBC노조 170일 파업 때도 '시용기자' 채용 전례 있어

MBC는 2012년 170일 파업 때도 인력 부족 문제를 ‘시용기자 채용’ 등으로 메우려 한 적이 있었다. (▷ 관련 기사 : 논설위원도 반대하는 MBC의 '시용(試用)'기자 채용, 그게 뭐지?)

MBC는 파업 중이던 2012년 5월 12일부터 20일까지 1년 근무(시용) 후 정규직 여부를 결정하는 형태로 경력기자를 모집한 적이 있다. ‘시용’은 회사 쪽이 근로자를 정식으로 채용하기 전, 근로자로서의 직무수행능력 및 적성 등을 평가하기 위해 일정 기간을 두고 사용한다는 의미로, 일정 기간 근무 결과를 보고 근로관계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뒤따랐다. 당시 MBC 논설위원 7명(김상철, 김원태, 성경섭, 윤영욱, 이연재, 임태성, 홍순관)은 “사실상 정규직에 가까운 ‘시용기자’ 20여명을 뽑겠다는 것은 노조 파업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를 넘어서는 본원적 문제”라며 MBC를 향해 “분열의 씨앗인 ‘시용 기자’ 채용 방침을 재고해 달라”고 촉구했다.

MBC 기자회·영상기자회도 ‘김재철에게 속지 마세요’라는 호소문을 내어 시용기자직에 지원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이전에 뽑힌 ‘전문기자’ 역시 각종 땜질 보도에 동원되고 있다고 밝히며,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고 회사 쪽의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대체 인력’은 김재철 체제의 부역자와 하나도 다를 바 없기에 언론인으로서 동료애를 나눌 생각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 MBC 기자들이 MBC노조 파업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12년 5월 26일, 오전 시용기자 채용을 위한 전형이 진행된 서울 을지로 센터원 빌딩 앞에서 '시용기자 채용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시용기자’ 채용은 여러 잡음을 남겼다. 파업 이후 뽑은 45명의 기자들 중 문제를 일으켜 3명이 해고됐고, 2명은 부서 부적응을 이유로 비보도 부문으로 전출된 상황이다. 현재 40여 명의 시용기자 출신 기자들이 보도 부문에 배치돼 있다. 취재 일선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파업 참가 기자들은 최근 인사로 스포츠국 소속이었던 기자들마저, 경인지사나 미래방송연구실 비보도 부서로 쫓겨났다.

MBC 기자들 ‘혼란’, ‘걱정’… MBC “조직 경쟁력 극대화 차원”

이런 상황에서 내부 인력을 외면한 채, 외부 충원 계획이 나온다는 것에 MBC 기자들은 혼란스러워하면서 우려를 금치 못했다.

MBC의 A 기자는 “현재 보도국에서 데스크를 보는 기자들이 15~20명밖에 안 된다. 그래서 경력기자를 뽑겠다는 건데, 사실 있는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면 된다. 인력 풀이 그 정도는 된다”며 “명백하게 부당전보를 가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데스크를 뽑겠다는 건, 말단부터 허리까지 흔들리지 않는 인력풀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MBC의 B 기자 역시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이 기자는 “지난해에 40여 명을 뽑았지만 아직 데스크급이 장악이 안 돼 있으니까, 주요 부서 데스크까지 회사의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깔아놓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된다”며 “만약 그렇게 뽑는다면 조직 장악이야 확실히 되겠지만, 도대체 뉴스는 어떻게 하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B 기자는 “지상파의 ‘퀄리티’라는 게 존재하는데, MBC가 이런 상황에서 KBS, SBS에서 오겠나. 종편 등 타 채널에서 오는 사람들을 사상검증해서 뽑는 게 아닐지 우려가 된다”며 “새로운 경력기자들에게 제작지시까지 받게 된다면 내부 기자들은 더 죽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공개채용이 아닌 헤드헌팅으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한다는 점도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왔다. MBC 기자들은 ‘경력기자 채용’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과거에도 취재, 제작을 잘하는 기자들은 꾸준히 경력기자로 뽑아왔고, 그들이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줬기 때문에 긍정적인 기능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과거에는 현장 기자들에게 의견을 구해 영입할 만한 인물들을 추천 받는 과정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그조차 생략됐다는 점을 짚었다.

A 기자는 “공모가 아니라 헤드헌팅 업체에 맡겨서 경영진이 스카우트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다. 입맛에 맞는 사람들을 뽑겠다는 의미다. 그것도 데스크급을 뽑는다니 의도가 더 불순하다”고 말했다.

B 기자는 “그동안에는 각 출입처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기자들이 누군지 현장 기자들에게 추천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자들 내부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경영진 쪽에서 밀실에서 채용한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뽑는 건 경영진이지만 같이 일해야 할 사람들은 기자들이기 때문에 조직 혼란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MBC 사측은 ‘순혈주의 타파’ 및 ‘조직 경쟁력 극대화’가 이번 채용의 취지라고 밝혔다. MBC 정책홍보부 최장원 부장은 경력기자 채용 계획에 대해 “MBC는 올해 상암 신사옥 이전과 함께 제2의 창사를 계획하고 있다. 새로운 비전과 마인드로 일 중심의 조직문화를 세우기 위해서 능력 있는 인재들을 개방형으로 뽑자는 취지로, 순혈주의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뽑아서 조직 경쟁력을 극대화하자는 것이 회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헤드헌팅 방식으로 뽑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그 부분은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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