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6월 17일은 한국일보에게 역사적인 날이었다. 이 역사적인 날은 어떤 결말로 귀결될 것인가.
한국일보가 지난 토요일 170여명의 기자들을 밖으로 내몰고 금일(17일)자부터 15인 가량이 신문을 제작하는 비상사태가 전개되자 타사 기자들도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는 반응이다.
일선 기자들은 “지나간 일을 다시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다들 작년 국민일보 사태보다 훨씬 심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한다. 한 일간지 기자는 "국민일보 역시 극한상황까지 대치하고 신문은 파행제작 되었지만 노사간에 퇴로를 열어놓고 협상을 한다는 느낌은 있었다"라고 평했다. 그는 "한국일보 기자들이 집배신에 로그인할 때 퇴사처리 되어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이 다 덜컥하더라"면서 "박봉에 좋은 신문 만들어 보겠다고 노력하던 기자들을, 회사를 지키려 싸우던 기자들을 엉뚱하게 회사가 잘라낸, 정리해고 해버린 어이없는 상황이다"라며 사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인터넷 언론에서 일하는 다른 기자는 "인터넷 언론도 아니고 고작 열 다섯명이서 일간지를 꾸리겠다니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사측이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촌평했다.
언론사에서 일하지 오래되지 않은 한 신입기자는 “사측에서 노조에 장악당한 편집국 운운하는데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 나와 같이 경찰서에서 먹고 자며 하며 수습훈련을 함께 받았던 기자도 쫓겨나갔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상황이 어떻게 풀릴지 난감하다는 시선도 있었다. 각 언론사 노조의 성향을 비교한 한 기자는 “기본적으로 강성노조이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정적인, 그러니까 어느 정도 현상유지를 하려 하고 어지간한 일에는 나서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진 한국일보 기자들의 분위기로 이 정도까지 왔다면 정말 파국적인 일이 아니겠나”라면서, “사태가 어디까지 장기화될지 감도 안 오는 상황이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의 사주이며 노조고발에 따르자면 배임행위를 하였고 이번에 기자들을 직접 편집국에서 끌어낸 장재구 회장에 대한 비판도 신랄했다. 10년차 이상 경력의 한 기자는 “한국일보 창업주인 고 장기영 전 회장은 일종의 ‘천재’ 아니었나. 일본을 방문한 메이저리그팀 섭외해서 한국으로 끌어들여 처음으로 메이저리그팀의 경기를 유치했고, 미스코리아도 만든 사람이다. ‘센스’가 좋고 경영수완이 있었다. 언론인으로서도 좋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자식농사만큼은 ‘개판’으로 했다”고 평했다.
5년차 이상 경력의 다른 기자도 “대통령이 박씨라고 지금이 유신시절인 줄 아는 모양이다”라면서 “1975년 동아일보도 아니고 2013년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게 참담하다”라고 평했다.
논설위원들이 모두 집필을 거부한 현재 실정에서 한국일보 사설 지면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기자들은 “사설도 연합시론에서 가져다 쓸 건가. 아니면 이것도 서울경제 걸 협찬받을 건가”라는 꼬집었다. 한국일보 측에서는 “논설실 고문과 전직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면서 자체제작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비대위 측은 박민식 기자의 이름으로 외부 필진들에게도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집필을 미뤄달라는 부탁을 하는 전체 메일을 발송한 상태다.
한 진보언론 관계자는 “회사 내부에서 MBC처럼 정권이 개입된 문제가 아닌데 자세히 다룰 필요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작년처럼 사주의 전횡인 국민일보 사태와 공영방송의 장악에 반대하는 MBC 파업이 동시에 터지면 진보언론은 후자의 보도에 편중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오히려 현재 한국 사회의 모순을 더 집약적으로 보여주는게 국민일보나 한국일보 사태가 아닌가 한다. MBC는 어쨌든 감시라도 받는다. 하지만 재벌, 사립학교, 족벌언론 등 ‘주인’이 있는 곳에서의 권력과 민주화의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 아닐까. 이게 한국 사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경제민주화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다른 언론이 아니라 한국일보이기에 더욱 아쉽다는 시선이 많았다. 한국일보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신문경영이 어려웠어도 한국일보 특유의 기풍이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도 부장급들끼리 누가 되어야 할지 내부에서 논쟁을 했다는데 이런 논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일보 특유의 분위기였다"면서, "그런 중도적인 포지션 때문에 인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자부심이 있는 언론을 이렇게까지 추락시킨 사주 측이 용서가 안 된다"고 전했다.
또한 진보언론의 한 기자는 “특히 이충재 편집국장 시절 한국일보 지면이 좋았는데 편집장이 교체되어서 아쉬웠다”면서 “동종업계 종사자로서 입장은, 단독 팡팡 터뜨리며 스트레이트로 승부하는 근성 있는 경쟁자가 이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침몰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정상화를 바라는 것은 한국일보 기자들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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