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사 측이 자사 기자들을 편집국에서 쫓아내고 편집국을 점거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회사측은 기자들이 1달 넘게 인사발령을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 과정에서 용역이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파문이 커질 전망이다. 편집국에서 쫓겨난 한국일보 기자들은 이를 부당노동행위로 규정,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 한국일보 비대위는 사측이 용역을 동원 한국일보 편집실을 점거하고 기자들을 내쫒았다고 밝혔다. (사진 한국일보 제공)

언론노조 한국일보 비대위에 따르면, 한국일보 회사측은 15일 오전 6시 20분경 서울 중구 한진빌딩 신관 15층에 위치한 편집국을 폐쇄하고 편집국 안에서 일하던 당직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몰아냈다.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이 박진열 사장, 이진희 부사장, 일부 편집국 간부 등 약 15명을 대동하고 편집국에 나타나 편집국을 점거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약 15명의 외부 용역이 동원돼 기자들을 강제로 편집국 밖으로 몰아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회사측은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한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 요구 등 회사 지시에 즉시 따른다'는 내용의 '근로제공 확약서'에 기자들이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일보 사측은 기자들의 반발로 인해 논설위원실로 발령냈던 하종오 전 사회부장을 15일자로 다시 편집국장 직무대행으로 임명하고, 인사발령을 거부해온 편집국 간부 4명에게는 자택 대기발령을 내렸다.

▲ 한국일보 기자들은 내부 편집시스템 접근도 거부 당했다. 편집시스템에 접근할 경우, "퇴사한 사람"이라고 표기되고 있다. (한국일보 비대위 제공)

신문 제작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인 한국일보 기사집배신에 접속할 수 있는 기자들의 ID도 전면 삭제됐다. '근로제공 확약서'에 서명하지 않는 한, 기사를 쓸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쫓겨난 기자들은 16일 오전 편집국 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했으며, 17일부터 법적 대응을 취하고 17~18일 사이에는 장 회장을 추가고발할 계획이다. 한국일보 편집국 기자 일동 및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대위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하던 기자를 편집국 밖으로 몰아내면서 근거없는 문서 작성을 강요한 조치는 대한민국 언론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라며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자 기자들의 정당한 취재권리를 방해한 불법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장재구 회장의 6월 15일 조치는 짝퉁 편집실 설치 시도가 무산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신문을 제작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지자, 한국일보를 사유화하기 위해 신문의 심장인 편집국을 불법점거한 폭거"라며 "'사원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 강력한 법적 대응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비대위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선제적인 직장폐쇄를 단행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기자들의 기사 작성을 막은 것 역시 정상적인 업무활동을 방해한 것"이라며 "내일(17일) 각종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측은 기자들에게 거의 '전향서'에 가까운 확약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있는데, 기자들 사이에서는 정신적인 위자료까지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며 "17~18일 사이에 장 회장을 추가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15일 오후) 검은 양복을 입은 용역직원들이 나타나 한국일보 잠바로 갈아입은 뒤 회사측의 점거를 도왔다. 비노조원들로서는 충분하지 않아서 용역까지 동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일보 사측은 16일 입장을 내어 "한국일보 노조의 투쟁 목적이 '편집권의 독립' 같은 기자 고유의 권한을 위한 것이라면 경영진도 양보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노조의 유일한 목적은 '회장은 물러나라'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추가로 돈을 못내는 오너이니 다 놓고 나가라'는 식이다. 이런 노조의 부도덕한 불법행위를 더는 용납하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사측은 "정상적인 신문제작에 동참하겠다는 편집국 간부나 기자들은 누구나 편집국 출입은 물론, 정상적인 취재 및 기사작성의 문이 열려 있다"며 "실제로 노조가 '폐쇄니 봉쇄니' 하며 주장하고 있는 16일에도 편집국 부장 전원과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측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자유와는 상관없는 문제"라며 "17일자 신문을 정상 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용역이 동원됐다는 증언에 대해 "용역이 아니라 비편집국 직원일 뿐이다. 경비담당 직원, 관리직원 등 다 저희 내부 직원들"이라고 부인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