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측의 편집국 폐쇄로 인해 쫓겨난 기자들은 파행 발행된 17일자 지면에 대해 "독자들께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사측의 편집국 폐쇄로, 17일자 한국일보 지면은 평소에 비해 10면 가까이 축소 발행됐다. 회사 측이 임명한 부장들과 사측 편에 선 일부 기자 10여명 만이 제작에 참여함에 따라, 지면에는 연합뉴스 기사들과 아예 바이라인 조차 없는 정체불명의 기사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 1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한국일보 제작 정상화와 장재구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 모습 ⓒ미디어스

170여명의 한국일보 기자들은 "오늘 한국일보는 90% 이상을 연합뉴스로 채웠다. 단어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게재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기사는 누가 썼는지를 밝혀야 함에도 일일이 '연합뉴스'라고 표시하기는 부끄러워 바이라인을 달지 않은 출처 불명의 기사도 많았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한국일보는 우리 기자들에게 모범답안과 같은 신문이었다.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을 떠나 객관적인 사실을 정제된 표현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오늘 신문은 '한국일보 제호'를 붙일 수 없는 인쇄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위조 부품 신월성 1호기 4개월 내 재가동 어려워' 기사와 같이 당연한 이야기를 1면에 게재해 중요한 기사처럼 보이게 한 것도 부끄럽다"며 "잘못된 기사 배치로 독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 점 사죄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한국일보가 망가진 이유에 대해 "배임, 횡령 등 범죄로 한국일보를 망가뜨린 장재구 회장과 그에 동조하는 극히 일부 인사들이 신문을 만든 탓"이라며 "지면을 망가뜨린 행위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짝퉁 한국일보'가 발행된 첫 날인 17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한국일보 사옥 앞에서 열린 '한국일보 제작 정상화와 장재구 구속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는 편집국 폐쇄를 단행한 장재구 회장에 대한 규탄 발언이 이어졌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무력으로 쫓겨난 것은 1975년 동아투위의 민주언론실천선언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사주의 사익을 위해 언론사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편집국에서 기자들을 쫓아낸 것은 한국일보의 자살행위"라고 비판했다.

강성남 위원장은 "대한민국 언론상황에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거창하게 '기자정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언론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이번 일을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채널, 보도전문채널 등 취재진 40여명이 취재에 나서고 언론시민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열기가 뜨거웠다. 이를 두고, 강성남 위원장은 "언론사 파업 이후 이렇게 많은 기자,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며 "그만큼 사안이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김현석 언론노조 KBS본부장 역시 "월요일 오전에 이렇게 많은 기자들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모인 이유는 '분노'때문이다. 장재구 회장은 한국일보의 적이 아니라 이 나라 언론 노동자들의 공적이 되었다"며 "장재구 회장을 퇴진시키고 한국일보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때까지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원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대위원장은 "(편집국 폐쇄 이후) 여러 차례, 신문을 만들게 해달라고 회사측에 호소했으나 전혀 변화가 없다. 오늘도 여전히 철문을 잠그고 있고, 한국일보 자매지에 아예 편집실까지 차려놓고 신문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이 신속하게 수사해서 장재구 회장을 단죄해야 한다. 장 회장은 회사에 200억을 돌려놓고 한국일보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언론노조 한국일보비대위는 오후 2시 비상총회를 개최하고 5시에는 편집실이 마련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경제 사옥을 항의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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