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2010년대 이후 사회에 새롭게 정착한 단어를 꼽자면 '팩트'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팩트(Fact)는 신조어가 아니다. 사실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언젠가부터 인터넷에선 한국말을 놔두고 굳이 팩트란 말을 쓰는 경향이 우세해졌다. '팩트체크'는 공론장에서 관용어가 됐다. '팩트 폭력', 줄여서 ‘팩폭’ 같은 말이 파생되며 유행어가 된 것도 물론이다.

팩트의 용례에서 주목할 점은 팩트의 반대말이 ‘선동’이나 ‘날조’로 통한다는 점이다. ‘선날승’ (“비겁하게 팩트 가져오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조로 승부하자!”)이란 신조어에선 정확히 그렇게 구분돼 있다. 팩트와 선날승은 진영 논리에 의해 전유되어 각각 자기 진영의 주장을 합리화하고 상대 진영의 주장을 폄하하는 용도로 발화된다. 다른 한편, 팩트는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주장을 냉소하거나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맥락에서도 자주 발화된다. '팩트 폭력'이란 말의 뉘앙스가 그렇다. 사실을 왜곡해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예민한 사람은 그저 사실을 알려주는 것을 폭력으로 받아들인다는 비아냥이다. PC주의자와 페미니스트는 감성적 주장으로 팩트를 대신하는 대표적 집단처럼 손가락질당한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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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에 사로잡힌 이들은 현실에 대한 '과도한 가치판단'을 거부하고,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란 형식'에 집착한다. 현실에 대한 이념적 미사여구는 선동, '감성팔이'다. 이들은 선동의 반대말로서 다른 태도를 지향하는 것이지, 사실관계의 내용을 탐색하는 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 사실과 논리와 관점의 종합으로 현실을 파악하는 체계성보다 몇 장의 '캡처 사진' 같은 형식이 우월하다고 믿는다. 물론 그 캡처 사진의 진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팩트에 대한 물신, 그러니까 '팩티시즘'(factishism)이라 부를 만한 태도는 가치판단에 입각한 현실에 대한 서술을 사실의 기술로 대체하는 사이비 리얼리즘이다.

현실에 대한 이런 몰가치한 태도는 지금-여기 있는 현실의 질서를 자연화하는 동물적 태도와 통한다. 팩트란 말을 선호하는 건 왼쪽보다는 오른쪽에 있는 사람, 사회를 바꾸려는 사람보다는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보수적 멘탈리티 속에서 불평등이 넘치는 사회 현실은 회의하지 않는 팩트가 된다.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자는 가치판단을 버릴 때 팩트는 바꿀 수 없는, 바꿔선 안 되는 진실이 된다. 이 진실을 거부하는 자들은 선동꾼이고 무임승차자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차별은 옳다고 논증하기 쉽고 평등은 논증하기 어렵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역사가 기록될 때부터 힘과 힘, 지위와 지위로 구획돼 있어 그것은 항거할 수 없는 자연적 사실, '팩트'처럼 느껴진다. 차별을 옹호하는 논증은 팩트를 거론하는 것으로 간단히 수행된다.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해 부의 분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남들 노력할 때 놀았던 사람은 처지에 맞게 사는 게 공평한 거 아닌가요? 왜 노력한 사람들이 자기 걸 나눠줘야 하죠?"라고 할 때 이 논리는 다수의 직관에 매끄럽게 부합한다. 평등을 주장하는 논증은 이 주어진 사실을 우회해 옳고 그름을 설득해야 하기에 말이 길어진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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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역사는 수천 년간 전승된 자연적 사실을 뒤엎고, 거추장스러운 입씨름 없이 한마디 말로 상대를 입 다물게 하는 공리, 새로운 자연적 사실을 개발한 역사다. "왜 노력 안 한 사람에게 내 걸 나눠줘야 하죠?"라는 반문을 "모든 사람은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일축할 수 있는 논리 말이다. 그것의 총아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 동등하게 가지는 권리, 천부인권이란 개념이다.

단적으로, '평등' '자유' '인권' 같은 말이 설득이 필요 없는, 얼마나 자명한 것으로 통용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식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은 자명한 것들 앞에서 점점 더 많은 말을 필요로 하는 사회, 나아가 아무리 말을 해도 설득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간다. 

평등과 자유의 기준을 놓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과 자유, 인권 같은 것이 왜 필요하냐는 투의 말과 맞닥뜨려야 하고, 근대적 개념이 폐허가 된 자리를 '알파 메일' '도태남녀' 같이 힘의 우열에 따라 사람의 신분을 가르는 원초적 개념이 대신하고 있다. 지역갈등, 이념갈등, 노사갈등, 남녀 갈등을 떠나, 그 모든 소통불능을 일으키는 근본적 갈등은 근대적 자명성에 대한 합의의 부재다. 팩트란 말이 일상어가 된 현실 안에는 이 사회가 마주한 역사적 진보의 역행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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