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정말 중요하고 꼭 필요한 AI 솔루션이 개발 중에 있고 곧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지난 9월 ‘AI로 한문 고서 번역해 문화유산 접근성 높인다’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고서 번역 작업을 도와주는 AI 기반의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이 번역 솔루션은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대전광역시 한밭도서관, 전주 문화원 등 11 곳에서 터치 키오스크 형태로 시범 서비스 실시 중에 있다. 지금은 일부 특정 장소에서만 운영되고 있지만 금년 연말에는 모든 국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PC나 모바일 앱 기반의 솔루션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브랜드 네임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한문 고서 번역 플랫폼이 최종 개발되면 꽤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ETRI가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92%의 인식 정확도, 85점의 번역 정확도를 갖는 고서 한자인식 및 번역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나와있다. 인식 정확도는 다양한 서체로 쓰인 한자의 표준 형태를 번역 솔루션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느냐를 판별하는 정도를 말한다. 이 정도면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번역된 고서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정도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솔루션을 많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인식정확도와 번역정확도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선조들 지혜 담긴 고서, 더 쉽게 읽는다…AI 번역기술 개발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선조들 지혜 담긴 고서, 더 쉽게 읽는다…AI 번역기술 개발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ETRI는 보도자료에서 이 솔루션을 통해 “국민들의 한문고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도서관에 소장된 고서와 함께 개인소장 고서에 대한 기록 문화유산 저변 확대와 활용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오는 표현이 ‘접근성’이라는 단어다. 그동안 국민 대부분은 근대 이전 문학이나 역사, 철학서를 읽을 수 없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이후로도 한글로 쓰인 근대 이전 서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우리가 익히 아는 홍길동전, 구운몽, 사씨남정기, 배비장전 등 수십 권과 일부 대하소설류의 장편소설 등이 있을 뿐이었다.

서책은 대부분 한자로 쓰였고 조선 이전은 모두 한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문 공부를 제대로 받지 못하면 고서 독해를 전혀 할 수 없었다. 해방 이후 정부는 대중교육을 실시하면서 한글에 기초한 국어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만들어 한자 교육은 한문 독해로 연결되지 못하고 기껏해야 기초 한자를 암기하는 수준에 머물고 말았다. 이런 정책으로 단기간에 국민 문맹률은 낮아지고 문해력은 상승하는 긍정적 결과는 가져왔지만 근대 이전 문학과 학문에 대한 접근과 이해는 피상적 수준으로 급속히 떨어지게 되었다. 같은 민족이고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근대 이전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고등학교에서 근대 이전 문학과 사상에 대해서 공부할 때 취급할 수 있는 서책은 한글로 쓰인 일부에 국한되었다. 대부분의 교사가 한문독해를 할 줄 몰랐고 따라서 학생들 역시 책 제목 정도만 외우는 수준에서 끝나고 말았다. 그나마 한자 교육도 교육과정 개편 등으로 인해 필수과목에서 제외되면서 기초 한자마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학생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자에서 기원된 한글표기 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어휘사용이 부적절해 벌어지는 해프닝도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일본이 한자와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병행 사용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고대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선조들 지혜 담긴 고서, 더 쉽게 읽는다…AI 번역기술 개발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선조들 지혜 담긴 고서, 더 쉽게 읽는다…AI 번역기술 개발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그렇다고 다시 교육과정에 한문독해를 위한 과정을 포함시킬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럴 때 적절한 솔루션이 등장한 것이다. ETRI가 만든 번역 플랫폼이 한자와 한글로 양분된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의 두 세계를 연결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등장했다. 이 솔루션이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하면 일반인들 모두 근대 이전 세계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원하는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다. 자주 접하다 보면 책 속의 의미들이 현현되면서 근대 이전 조선인들의 삶과 철학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독해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이 아니라 충분히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 그러나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다. 그동안 언어 문제로 사실상 다른 나라였던 근대 이전의 한반도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현재와 이어진다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보도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ETRI 강현서 호남권연구센터장의 멘트가 언급되어 있다. “한자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고서를 쉽게 접해 우리나라 문화기록유산인 고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디 이 멘트처럼 관심 있는 사람 모두가 일차적으로 고서에 대해, 다음으로는 근대 이전 우리 선조들의 삶과 학문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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