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직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을 계기로 학교판 ‘악성 민원인’에 대한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치권은 이런저런 입법 조치를 서두르고 있다. 이른바 ‘교권 침해’ 사례를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한다거나 합법적 생활 지도 활동에 아동학대죄 적용을 배제하는 등의 내용이 언급된다.

당장의 어려움을 경감하기 위한 법적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거기서 그칠 게 아니라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돌아보도록 해야 한다.

가령 학교판 ‘악성 민원인’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일부 교사들이 공개한 법조인 학부모의 자기 과시 사례에서도 느껴지는 것인데, 기득권층의 경우 자기 자식을 마치 자신들이 생산하고 소유한 ‘명품’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이 ‘명품’은 세계적 콘테스트에 출품돼 우열을 가릴 예정이다. 하나의 흠집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인식에서 학교는 ‘명품’에 대한 유지 보수 관리를 위탁 받은 하청에 불과하다. 학교는 일선 교사에게 관리 책임을 다시 아웃소싱한다. 이게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갑질’이 정당화되는 기득권층의 세계관이다.

문제는 공교육이 이런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어쨌든 누구든 차별없이 평등하게 교육받는 공간이 아닌가. 앞서의 세계관은 지역적으로 고소득층이 집중돼 있는 공간에서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교사들이 교육열 높은 특정 지역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문제는 그러한 지역에서만 발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20일 오전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 등굣길 학생이 헌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20일 오전 서초구 한 초등학교 앞에 등굣길 학생이 헌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명품’과 관계없는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요즘에는 다수의 학부모들이 맞벌이를 한다. 아이를 돌볼 시간은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도 교육과 보육의 책임은 최종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학교 생활을 충실히 하도록 해야 하는데, 아이의 말만 들어선 학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그런데 마침 인터넷의 발달로 ‘초연결사회’가 이미 만들어지지 않았는가? 카카오톡 등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교사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런데 ‘카톡의 세계’는 공과 사의 경계가 흐릿하다. 그러다보니 교사의 온갖 개인적 면모가 평가의 소재가 되고 훈계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거다. 이런 일은 이미 일반화 돼있다.

즉,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경쟁원리와 이에 따른 각자도생의 세계관, 오로지 개인에 책임 지우는 양육의 문제에 더해 이런 일들로 발생하는 모든 부담과 책임을 일선 교사에게 떠넘기는 시스템 자체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런 구조에서 교사들은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책임을 추궁받기만 하는 존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보면 일단 가능한 것부터 제도 개선에 나서더라도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지는 데까지 정치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나 ‘진보 교육감’ 책임론을 언급하는 정부 여당의 태도는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이상만을 추종하며 현실을 외면해 나타난 부작용 정도로 문제를 다루려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이른바 ‘교권’과 학생의 ‘인권’을 대립항으로 놓고 접근하는 이러한 인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령 학생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과거의 교실을 생각해보자. 그때도 사회 시스템의 모순을 일선 교사에게 떠넘기는 일은 일반화돼 있었다. 다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류의 이데올로기로 권위주의적 대응이 가능했을 따름이다. 그러한 권위주의적 대응 수단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이미 결론났다. 이번 사태의 해결책으로 그 당시로의 한 발짝 후퇴를 제시한다면, 다시 교실에서의 학생 인권침해가 문제가 될 때는 어떻게 할 건가? 다시 한 발짝 전진하는 것인가?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다시 되돌아오는 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 해결책인가?

정부 여당이 해결책이 아닌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일은 결국 정치적 이념적 대결구도를 상정하지 않고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인권만 강조하다 이 사달이 났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은 수해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은 얼마 전 환경부를 질타하며 “물관리 업무를 가져갔으면 예방을 제대로 하라”고 했다. 주무부처를 질타할 수 있지만 굳이 “물관리 업무를 가져갔으면”이라는 전제를 붙인 것은 전 정권에서 시행된 물관리 일원화를 겨냥한 것이며, 환경부가 ‘안전’보다는 ‘환경’에 방점을 찍고 치수 업무를 해온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라는 언론의 해석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사실에 근거한 것인가? 환경부로 물관리 업무가 일원화 됐어도 관련 업무는 국토부 출신들이 도맡고 있다. 또한 이번에 오송지하차도 참사의 원인이 된 미호강과 같은 지방 하천의 경우 지자체에 관리를 위임한 상태다.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경우라면 지방 하천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상태다. 이는 국토부가 치수 업무를 담당하던 시절에도 그러했다는 게 언론의 설명이다. ‘환경’과 ‘안전’의 대립구도로 볼 문제는 전혀 아닌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일부 언론과 대통령실은 이런 구도에 기댄 악선동에 가까운 주장까지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단체가 미호강 준설을 반대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는 식의 조선일보 등 보도를 대통령실 관계자가 직접 언급한 게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의 보조금을 회수해 재난 대응에 쓰겠다고 발언한 다음 날인 19일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보조금으로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잘못된 의사결정을 부추겨온 환경단체를 비롯한 이권 카르텔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는 것”, “궁평2지하차도 침수는 인재이며 경직된 공직사회뿐만 아니라 보조금을 받은 환경단체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기 어렵다”라고 주장한 걸로 돼있다.

그런데 20일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당시 환경단체들의 주장은 미호강을 놀이공원 등으로 개발하는 방안에 반대한 것일 뿐 ‘준설’을 문제삼은 바 없고, 오히려 “미호강 수질 개선 다음으로 추진해야 할 것은 수량·친수공간 확보가 아니라 홍수 완화를 위한 저류 공간 확보”라고 주장하며 홍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걸로 확인됐다. 최소한의 사실관계도 없이 대통령실 관계자가 앞장서서 ‘가짜뉴스’를 살포한 셈이다.

정권의 이런 태도는 결국 수해를 고리로 해서 ‘4대강 사업 명예회복’ 등을 노리는 정치적 행보로 해석할 수 있는데, 앞서 교육 문제까지 포함해 좀 더 넓게 본다면 특정한 이념적 접근을 반복하는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이상이 아닌 실질’이라는 식의 냉소적 체념적 세계관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학생 인권만 강조하고 교권을 외면했다, 환경만 강조하고 안전을 도외시 했다, 가짜평화를 주장하며 스스로 힘을 약화시켰다는 등의 주장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과학 대 괴담’ 구도와 무슨 문제제기만 하면 ‘가짜뉴스’와 ‘선동’이라고 반응하는 태도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

종합하면 결국 ‘전 정권은 이상을 앞세운 이념으로 접근해 망친 문제를 우리는 실용적 실질로 접근해 성공을 거둘 것이다’란 주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구도를 더 확대하면 이 정권이 생각하는 통치란 정치적 타협이나 합의를 이뤄내는 이상이라기보다는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더 먼저이며,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것보다 법을 적용할 대상을 실용적으로 선택하고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더 먼저이다. 즉 정치보다는 법, 법보다는 주먹 즉 곤봉이 앞서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관념이야말로 특정한 이념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으면 한다. 세상 만사를 이념적으로 재단하고 편향된 이념으로 정당화 하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이권 카르텔을 비호하는 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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