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를 논하는 이런저런 얘기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는 생각뿐이다. 어쩌다 이런 답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선 두 가지 차원의 비판이 가능하다. 첫째, 과연 이 방향이 맞느냐는 거다. 둘째, 이 방향이 맞다고 해도 협상이 제대로 되었냐는 것이다. 한미일의 밀착이 북한 중국 러시아의 핵무장을 포함한 더 노골적인 군사활동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전자에 해당한다. 핵협의그룹의 전략자산 전개 논의에서 한국의 의견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반영될지 모르는데 핵 개발 카드를 너무 쉽게 내준 것 아니냐는 논리나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 보조금 관련 논의는 완전히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은 후자의 얘기다.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환담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미국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출발에 앞서 공군 1호기 기내를 돌며 동행 기자들과 환담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정치권, 일부 언론은 이 얘기를 다 뒤섞어서 한다. 얻은 게 별로 없다는 지적엔 “방향은 맞다”고 하고,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는 지적엔 “누구 편이냐, 중국 북한에 갖다 바치자는 거냐” 한다. 여당의 정책위의장은 “민주당은 빈 수레다 하고, 친민주당 방송과 일부 패널들이 가세해서 방미 성과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지만”이라고 했는데, 성과가 미흡하다는 지적은 보수언론을 통해서도 제기되었다.

조선일보는 4월 27일자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란 제목의 사설에서 “결국 핵 협의 그룹 창설을, 한국 핵무장과 전술핵 재배치 포기와 맞바꾼 모양이 됐다”, “워싱턴 선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 핵 무력화보다는 한국 핵개발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경제적 성과가 아쉽다는 지적 역시 거의 모든 언론을 통하여 일반적으로 제기된다.

이런 지적에 답을 하고 성실히 설명하는 게 대통령실과 여당의 의무일 텐데 남 욕하기 쉬운 방식으로만 대응하려고 한다. 보수언론도 여기에 호응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양이원영 의원이 SNS에 이상한 얘기 썼다가 지운 걸 며칠째 물고 늘어진다. 그게 중요한 대목이라서라기보다는 욕하기 좋은 소재라서일 것이다.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고 이에 답을 하기보다는 그저 이런 식이니 보는 사람들도 다들 그런 수준의 얘기가 논의의 전부인 줄 안다. ‘개딸’과 ‘태극기’가 양쪽 진영의 대표선수로 간주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반지성주의니 뭐니하는 대통령이면 이런 와중에도 정치의 중심을 잡아야 할 텐데, 그럴 마음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현실인식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방미 전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이거는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게 그렇다.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대통령은 방미 일정 중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와 나눈 대담에서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서는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는데, 누가 그렇게 주장했는가?

오히려 ‘제3자 변제’라는 틀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조차 한일정상회담의 접근법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대통령은 이런 의문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건 외면하고 상대편 비난하기 쉬운 대목만 골라 반론하는 걸로 자기 정당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4월 26일자 사설에 “그간 해외 순방 등 외교 무대에서 각종 실언 논란이 벌어진 데는 매사를 정치적으로 바라보며 외교 현장에까지 그런 시각을 투영한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가 있었다”라고 썼다. 같은 맥락의 지적이다.

이런 모습은 방미 일정 중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전체주의 세력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부정하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인 양 정체를 숨기고 위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런 은폐와 위장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게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현실의 어떤 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나 ‘인권운동가’를 자처하는가? 푸틴, 시진핑, 김정은이 그랬는가? 오히려 이들은 민주주의나 인권의 어떤 부분을 노골적으로 공격하지 ‘운동가’를 자처하지 않는다. 자칭 독립운동가 시절의 김일성이나 볼셰비키 혁명을 말하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오늘날의 국제정치 구도와는 관계없다.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를 자처하는 전체주의자’는 정확히 공화당이 민주당 정권 시절 오바마 행정부를 공격한 논리였다. 우리로 치면 색깔론이다. 즉, 이번 대통령 연설의 위 대목은 미국인이 보기에도 그런 현실인식이 표현된 대목으로 이해됐을 것이다. 잘한 일인가?

대통령은 가짜뉴스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말했는데, 오늘날의 정치뉴스에선 오히려 ‘상대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가짜뉴스’가 심각한 문제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를 ‘가짜뉴스’라고 불렀던 도널드 트럼프의 사례를 보라. 이러한 태도는 숙고와 논의가 필요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진짜냐 가짜냐’의 1차원적 논란에 의도적으로 가둬놓는다는 점에서 진정한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대통령의 발언에서 드러나는 태도는 ‘상대의 주장을 가짜뉴스로 규정하는 가짜뉴스’와 어떤 본질을 공유한다. 정파적 대립과 상대편에 대한 반격만이 본질이며 토론에 의한 합의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믿는 정치관의 표출인 것이다. 이런 시각이 국제정치를 향한 외교안보 전략에도 그대로 녹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권은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는 것이다. 그러나 최상위 차원의 이익이 치열하게 오가는 국제무대에선 그런 구호조차도 이해에 종속된다. 미국이 무언가를 해줬다면, 해준 이유가 있는 거다. ‘쿼드’의 일원이라던 인도가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를 보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국내정치에서 할 일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야 대통령은 ‘플레이어’의 한 명으로 있을 수 있지만 국내정치에선 ‘국가 지도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방미 성과를 야당과 공유하고 설명하라는 요구를 언론이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전정권’과 ‘친민주당’을 말하면서 반격하고 들이받으면서, ‘사실상 핵공유’, ‘느낌적 핵공유’라는 억지를 부리고 우기며 정신승리하는 리더십은 이제 버려야 한다. 정직하고 겸허하고 담백한 태도로 언론과 정치권의 요구에 진지하게 응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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