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들은, 물론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정치 경험이 없는 대통령이 뭔가 기성 정치와 다른 정치를 펼쳤으면 하는 기대를 가졌을 것이다. 기성 정치가 우리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므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해법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막연한 희망을 다들 가졌을 법하다. 그러나 이 정권의 행보는 새롭다기보다는 구태한 방식으로의 퇴행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가령 대구 서문시장 방문과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에 대해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언론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떨어지는 현상에 대한 처방으로 고안된 일정이라는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억울한 면도 있을 거다. 전날 전남 순천도 가고 경남 통영도 가지 않았는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열린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정치에서 늘 중요한 건 맥락이다. 이게 지역 통합적인 행보로 비춰지길 원했다면 오히려 ‘서문시장 100주년 기념식’ 일정은 넣지 말았어야 했다. 순천은 가뭄 점검과 관광업계 관련 일정이 있었고 통영은 수산인의 날 기념식이 있었다. 그것은 적어도 ‘일’과 관련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서문시장은 선거 유세의 장소이다. 결국 여론이 안 좋으니 지지층부터 챙기겠다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지지율 하락 국면에서 앞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콘크리트’ 지지층에 대한 스킨십부터 챙기는 건 옛날식 정치의 문법이다. 옛날식 문법에 따르는 것 중 최악은 핵심 지지층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거다. 영호남을 아우르는 일정으로 바빴던 대통령은 4.3 추념식엔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대통령실은 ’매년 갈 순 없는 거 아니냐’는 태도인데, 대통령이 이 문제를 각별히 챙기겠다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올해이기 때문에 직접 참석하려 했을 거다.

극우세력의 4.3에 대한 악선동은 극에 달해있는 상태이다. 제주 전역에 ‘공산폭동’ 어쩌고 하는 현수막을 걸어 놓은 것을 보라. 님의 일 보듯 할 게 아니다. 여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마찬가지의 주장을 한 태영호 의원이 지도부 진입에 성공한 상태다. 이런 때일수록 공동체 통합을 위해 대통령이 4.3 추념식에 직접 참석해 ‘그게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대선 때와는 달라진 태도로 마치 슬슬 발을 빼는 듯 한다면 극우세력은 그걸 어떻게 보겠는가? 계속 이래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국민의힘 지도부의 ‘우향우’는 태영호 최고위원의 예에 그치지 않는다. ‘전광훈 세력’에 연일 보은(?)하다 전광훈의 ‘전’도 꺼내지 못하게 된 김재원 최고위원을 보라. 징계 필요성도 제기됐지만 지도부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을 나무라는 듯한 언급이 몇 차례 나오기도 했지만 ‘전광훈 세력’과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걸 ‘우향우’가 아닌 뭐라고 부르겠는가?

현 지도부의 이러한 색깔은 지난 전당대회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전당대회는 ‘윤심’이 그야말로 휩쓴 선거였다. 즉, 여당은 ‘윤심’의 농도를 높이면 높일수록 ‘전광훈’의 존재감도 함께 높아지는 매커니즘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좌표없는 정치가 얼마나 황당한 사태를 초래하고 있는지 여기서 드러난다.

대통령은 국정과 통치, 정치 전반에 대하여 지나치게 쉽게 접근하고 있다. 대통령은 속물주의적 정치관을 갖고 있다. 선거를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한다든지, 복지 전달체계에 대해 말하면서 “옛날에 선거 때 막 돈 쓴다고 그러면 선거자금은 뭐 한 100억을 뿌렸는데 막상 유권자에게 돌아가는 건 10%만 돌아가도 선거에 이긴다”고 한다든지,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외국인들이 고궁박물관에 있는 고려청자를 보러 한국에 오는 것을 뛰어넘어 순대, 떡볶이, 어묵을 먹으러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우리 관광이 성공한 것”이라고 한 것 등을 보면 그렇다.

대통령은 이런 세계관의 연장선에서 전 정권 사람들의 ‘비상식’을 일소하고 그 반대편을 택해 ‘상식’을 회복하는 게 통치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니 일본에는 그냥 ‘이번엔 내가 쏠 테니 다음엔 네가 쏴라’라는 식으로 크게 양보하면 되고, 주52시간제는 ‘주60시간’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손을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지지율 하락은 이러한 접근이 이제는 ‘독’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파국적 대일외교와 이후 국가안보실장의 사실상 경질로 대표되는 수습불가의 국면 및 ‘주69시간 논란’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서문시장에서도 국민을 약탈하는 기득권과 싸우겠다고 주장했는데, 이제 이런 정파 우두머리를 연상케하는 선거 유세식 이야기도 그만할 때가 되었다. 지금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스스로가 기득권임을 인정하면서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야 할 때다. 국민이 지도자를 신뢰하는 때는 지도자가 그야말로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줄 때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처럼 여당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에 대해 “세 번의 체포동의안 설명을 똑같은 기준으로 했다”며 “결과가 달라진 것은 저한테 물으실 게 아니라 안에 계신 의원들께 물으시라”고 말해 스스로 정파적 대립구도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통치는 이제 더 이상 안 된다. ‘윤심’ 전당대회를 정당화하기 바빴던 ‘멘토’라는 변호사마저 쓴소리를 망설이지 않는 이 사태를 직시하라.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장관은 장관답게, 여당은 여당답게 처신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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