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보수언론과 정치세력은 자신들과 반대편에 있다고 여겨지는 정치세력을 ‘반헌법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자신들은 ‘반헌법적’인 존재들과 대립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 헌법을 수호하는 세력을 자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권을 이런 방식으로 공격하여 정권을 잡았다. 대한민국 헌법정신, 법치주의, 공정과 상식 등의 표현이 전부 이와 비슷한 용법으로 사용됐다.

헌법 정신을 지키자는 것은 좋다. 그런데 살다보면 간단해 보이는 법 조항을 적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만큼 현실이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되는 때가 많다. 이런 때에 특정 사안이 헌법 정신을 훼손한 것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나? 우리 제도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하도록 한다. 그게 헌법정신이며 법치다. 그런데 법무부 장관과 여당은 헌법재판소의 권위를 매우 적극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이걸 어떻게 봐야 하나?

국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나오는 23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국회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이 정당했는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나오는 23일 오전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 처리 과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온 직후 헌법재판소 판결을 ‘존중한다’면서도 공감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개인의 소회로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에 나온 발언은 문제다. 한동훈 장관은 “다섯 분의 취지는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회기 쪼개기, 위장 탈당 입법을 해도 괜찮은 것으로 들리기 때문”, “다섯 분의 재판관들의 의견대로 검수완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각하한 것에 대해서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헌법적 질문에 대해 실질적 답을 듣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는데, 과연 법조인의 발언인지 의심이 되는 수준이다.

첫째, 헌법재판소의 결론은 국회 법사위의 논의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의결권이 침해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회기 쪼개기, 위장 탈당 입법을 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소위 진보 성향이라고들 평가하는 ‘다섯 분’으로 좁혀서 보더라도 그 ‘다섯 분’ 중 한 명인 이미선 재판관이 절차적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론이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한동훈 장관의 주장은 사실왜곡이다.

둘째, ‘검수완박의 문제점에 대한 실질적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판단할 영역이 아니다. 헌법에 의거해 어떤 권한이 어느 기관에 있는지 등을 판단할 뿐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 대목에서 ‘영장청구권을 근거로 검사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리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확하게 결론내렸다. ‘다섯 분’의 의견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각하’라는 형식을 들어 “실질적 판단을 하지 않았다”, “헌법적 질문에 대한 실질적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하는 한동훈 장관의 주장은 역시 사실왜곡이다.

보수언론은 민변, 우리법연구회 성향의 재판관들이 편향적 판단을 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 내용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말하고 있다. 우리법연구회 타령은 역사가 오래되었다. 참여정부 때부터의 프레임이다. 그런데 이 재판관들이 각자 논리가 없는 주장을 펼친 게 아니다. 나름의 논리가 다 있다.

절차적 문제가 있었던 법사위 소속 국회의원들도 본회의의 법안 심의 의결에 참여했다. 형식적으로 보면 앞서 잘못된 절차를 통해 발생한 문제의 실질은 여기서 바로잡을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한 실제 상황과 맥락을 무시하고 헌법재판소가 단지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국회가 처리한 법안의 효력을 무효로 하는 일이 일상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잖아도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때다. 처리한 법안의 내용이 위헌이 아님에도 헌법재판소가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거 미디어법 처리 때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전례가 없는 판단도 아니라는 거다. 이 대목에서 문제제기를 하려면 차라리 입법부에 대한 확실한 우위를 갖도록 헌법재판소의 위상 강화를 말하는 게 맞다. 그러나 정권과 여당이 그런 주장을 할 마음은 없어보인다.

이러한 사실에도 ‘네 분’은 상식적인 분들이고 ‘다섯 분’은 이상한 분들이라는 주장을 고수한다면 결국 진보성향의 법관은 헌법재판관이나 대법관 추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보수 일색의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바람직한가? 애초에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나누어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특정 편향이 부각되는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보다는 5대 4든, 4대 5든 여러 입장이 반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은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민변, 우리법연구회 타령은 하나마나한 얘기에 불과하다.

검사 출신인 법무부 장관, 판사 출신인 여당 대표, 법조인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이 정권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주장을 계속하는 것일까? 권한쟁의심판 청구는 한동훈 장관이 주도했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면 그건 어떤 면에선 창피한 실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어떻게 보면 헌법재판소를 흔드는 여당의 황당한 태도는 한동훈 장관의 체면 손상을 방어해 최고 권력에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는 거다. 그러나 계속 이런 식이면 그거야말로 헌법 정신의 파괴이고 법치의 훼손이라는 점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도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더불어민주당의 당시 대응에 잘못이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했다. 사과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침소봉대하거나 아전인수 해서도 안 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가 검사의 수사권을 완전 박탈하는 것도 권한상 가능하다’고 한 것이지, 검찰 수사권 축소가 옳았다거나 잘했다고 한 게 아니다. ‘거봐라, 검수완박이 옳았잖느냐’라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적 책임은 책임대로 지고 검찰 수사권 축소가 이런 방식으로 된 게 현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 보완할 것이 있다면 보완을 해야 한다. 정부도 위법 논란을 부르는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입법절차를 거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야당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서로 손가락질 하며 반헌법적 세력이니 검찰독재니 핏대 세우는 아무런 영양가도 없는 드잡이질은 제발 좀 그만 했으면 하는 게 대다수 유권자들의 생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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