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노동시간 유연화에 찬성해 온 주요 보수언론이 한 주 최대 80.5시간(7일 근무 기준, 6일 기준 69시간)까지 일하게 하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추진 과정 비판에 나섰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반발 여론이 들끓자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라고 입장을 급선회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사흘 연속 노동시간 제도 개편의 보완 필요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입법예고까지 마친 정부안을 대통령이 몰랐다는 양 물러서 혼선을 빚는 '졸속 행정'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서 영상물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앞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일자리창출 우수기업 최고경영자(CEO)초청 오찬에서 영상물을 시청한 뒤 박수치고 있다. 앞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조선일보는 17일 사설 <근로 시간 개편, 일정 기간 시험 실시로 효과와 부작용 점검해보길>에서 "고용부는 일이 많을 때 몰아서 하고 쉴 때 제주도 한 달 살기도 가능한 제도라며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공짜 야근'도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근로시간만 늘어나는 현실성 없는 얘기라는 반발이 일었다"며 "특히 현행 산업재해 관련 고시는 '주 최대 64시간 근로'를 과로 인정 기준으로 삼는데 이를 넘는 근로 시간 허용이 지나치다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윤 대통령은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 세대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제도를 보완하라고 했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청년은 물론 30·40대 워킹맘, 은퇴를 앞둔 중장년층 등 다양한 연령대들의 근무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라며 "대기업·공기업 사무직 위주인 MZ세대 노조 위주로 의견을 들을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노동시간 제도 개편안의 '정책 실험'을 제안했다. 조선일보는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의 경우 본격적인 추진에 앞서 시험 실시를 통해 효과와 부작용을 점검한 전례가 적지 않다"며 "시험 실시 결과 이 제도가 전체적으로 실효적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면 전면 수정해야 한다. 정부는 이 정책의 영향을 받는 근로 집단을 골고루 포함한 사업장을 고르고 이들을 대상으로 정책이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현장 검증해 보기 바란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같은 날 사설 <주 52시간제 둘러싼 정책 혼선 걱정된다>에서 "정부가 공식 발표하고 입법예고까지 한 정책이 이렇게 혼선이 빚어져도 되는가"라며 "대통령실과 부처의 정책 조율 과정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6월에도 노동부 장관이 공식 발표한 근로시간 개편 방향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고 부인해 혼선이 빚어졌고,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받았었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중앙일보는 "지난 70년간 유지된 ‘1주 단위’의 근로시간 규제는 획일적·경직적인 낡은 제도란 비판을 받았다. (중략)현장의 합리적인 보완 요구는 받아들이되, 주 52시간제 개선책의 기본 틀까지 흔들어서는 안 되겠다"며 "주 최대 근로시간 상한을 너무 낮추면 제도 개선의 취지 자체가 모호해질 수 있다. (중략)52시간제 개선이라는 노동개혁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선 안 된다"고 했다. 

15일 동아일보 정임수 논설위원은 <[횡설수설]‘주 69시간’ 열흘도 안돼 ‘발표→재검토→보완’>에서 "이번 개편안은 불쑥 나온 게 아니다. 대선 때부터 대통령이 진두지휘해 온 노동개혁 1호 정책이며,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주 69시간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며 "지금까지 뭐하다가 이제야 의견을 청취하고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건지 의아할 뿐이다.(중략)근로시간 유연화를 두고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노동개혁의 시계가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들린다"고 했다. 

민주노총 청년 활동가들이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열린 근로시간 기록·관리 우수 사업장 노사 간담회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를 향해 주69시간제 폐기를 촉구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같은 보수언론의 논조는 이전과는 차이가 있다. 동아일보는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자 7일 <주 52시간제 유연화… 노동자 ‘일할 선택권’ 늘리는 길>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동아일보는 "경직적으로 운영되던 주 52시간 근무제의 유연성을 높여 기업의 인력 운용을 쉽게 하고, 노동자에겐 근로시간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안"이라며 "근무일 사이 연속휴식 11시간을 보장할 경우 최장 주 69시간, 11시간 연속휴식이 아닌 경우 64시간 근무가 가능해진다. 추가되는 연장근무 시간은 1.5배의 휴식시간으로 저축해 뒀다가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12월 20일 <이정식 장관 "주69시간은 선동일뿐…내달초 노동개혁안 낼 것">이라는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래노동시장연구회 발표에 대한 노동계·정치권의 '주 69시간 노동' 비판에 대해 "돈은 그대로 받고, 근로시간은 줄고, 선택권은 확대되는데 어떻게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특정주에 69시간 하면 나머지 주에는 그만큼 연장근로가 줄어든다"며 팩트로 확인하면 거짓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지하에서 바깥으로 끄집어내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최근까지 '주 최대 69시간제'에 대한 비판을 "좌파 선동"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지난 2018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주당 노동시간을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처리하자 사설에서 "지금 영세기업들은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런데 또다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충격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국경제연구원은 52시간 제한 이후 기업이 생산량을 유지하려면 연 12조1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고 추산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12월 15일 사설 <근로자들 원하는 ‘추가 근로’, 근로자 위해 없앤다는 이상한 나라>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부담과 부작용을 덜어주기 위해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시 도입한 ‘주 8시간 추가 연장 근로제’의 폐지 시한이 올 연말로 다가왔다"며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이 이 제도가 끝나는 연말 이후에도 주 8시간씩 추가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거대 야당이 연장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3월 15일 <>
경향신문 3월 16일 <제동 이어 ‘60시간’…노동부 ‘멘붕’> 갈무리

한편, 윤 대통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 보완지시로 노동시간 개편 정책이 혼선을 빚는 상황에 대해 언론 일각에서는 졸속 행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본질적으로 사용자가 원할 때 몰아서 노동자에게 일을 시킬 수 있도록 해 난맥상이 예견된 정책을 현장 의견수렴도 없이 윤 대통령 의중에 따라 설계한 정부·여당의 책임이 거론되고 있다. 

경향신문은 17일 사설 <성난 여론에 갈팡질팡 주 69시간제, 졸속 행정 책임 물어야>에서 윤 대통령이 사흘 연속 제도보완 지시를 내린 데 대해 "당혹스럽다"며 "윤 대통령이 후보 때부터 ‘일주일 120시간 노동’을 거론해온 것을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마치 이 정책을 자신은 몰랐던 것인 양 노동부에 보완을 지시하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중요한 노동 정책을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하는 등 가볍게 접근하는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면서 "윤석열 정부는 처음부터 당사자인 노동계 의견은 배제한 채 노동시간 개편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8월 교육부로 하여금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내놨다가 반발에 황급히 취소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현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은 본질적으로 대기업 편들기에 노동시간 연장"이라며 "정부는 노동시간 개편안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정책 혼선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사설 <‘주 60시간 상한 캡’은 또 무슨 근거로 계산한 건가>에서 "국민의힘에서는 ‘주 64시간 상한 캡’을 얘기하더니, 하루 만에 4시간이 오락가락했다"며 "노동자의 건강은 물론 생명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 규정을 마치 고무줄처럼 멋대로 늘였다 줄였다 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보기 드문 정책 난맥상의 가장 큰 책임은 아무 기준과 근거도 없이 노동시간 개편을 밀어붙인 윤 대통령에게 있다. 고용노동부와 국민의힘은 노동현장의 실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 의중을 따르기에 급급했다"며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선택권·건강권·휴식권의 보편적 보장’이라고 자화자찬했고,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청년을 위한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극찬했다. 그 호언장담을 떠올리면 지금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다"고 썼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