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조회 논란이 야당의 정치공세 수단으로 활용되는 모양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공수처를 향해 "미친 사람들 아니냐"라는 거친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26년 검사생활 경력을 가진 윤 후보가 과거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권한을 적극 활용했으며 입법기관인 국민의힘은 제도 개선을 막아선 전력을 감추기 어렵다. 문제는 제도개선이라는 얘기다.

'윤석열 수사팀장' 국정농단 특검, 통신조회 220만 건

2017년 3월 6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검팀은 90일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관련 자료를 배포했다. 99페이지에 이르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수사결과' 자료의 서문에 박영수 특검의 일반 현황이 기재돼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16TB(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증거 이미지를 수집했다. 이 중 특검이 추출한 증거 파일은 9.1TB(PC 등 저장매체 5.3TB, 모바일 3.8TB) 가량이다. 특검팀은 모바일 관련 자료를 빠르게 검색하기 위해 웹기반 검색 시스템인 MIDAS(Mobile Integrated Data Analysis System)을 운영했다. 이를 통해 특검팀은 모바일기기에서 산출한 4700만 건의 정보를 분석했다. 특히 특검팀은 통신사실조회요청 자료 220만 건과 메신저 송·수신내역 3600만 건에 대한 검색·수사를 진행했다. 윤 후보는 박영수 특검팀 수사팀장이었다. 역대 최대규모 특검팀의 방대한 수사자료와 결과물에 대다수 언론이 '숫자로 본 특검'이란 제목을 달아 의미를 부여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3월 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윤석열 수사팀장(왼쪽)과 박영수 특검. (사진=연합뉴스)

수사기관의 통신조회는 '통신자료'와 '통신사실확인자료'로 구분된다. '통신자료'는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수사기관이 수사 대상자의 인적사항을 이동통신사에게 요청해 제공받은 자료를 말한다. 법원의 허가(영장) 없이 제공받을 수 있다. '통신사실확인자료'는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 정보를 말한다. 상대방 전화번호, 통화 일시와 시간, 인터넷 로그기록, IP 주소, 발신기지국 위치추적 자료 등이 해당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자료를 바탕으로 윤 후보의 검찰총장 재직시절(2019년 7월~2021년 3월) 검찰의 통신조회 건수를 계산한 결과, '통신자료' 조회는 282만 5668건으로 집계됐다. 검찰의 통신자료 조회를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9년 하반기 98만 4619건 ▲2020년 상반기 100만 3245건 ▲2020년 하반기 83만 7804건이었다. 같은 기간 검찰이 법원 허가를 받아 조회한 '통신사실확인자료'는 총 17만 8588건이다. (관련기사▶윤석열의 자가당착, 검찰총장 당시 국민사찰 300만 건?)

'내가 하면 수사, 남이 하면 사찰이냐'는 시민사회 비판과 한겨레 등 언론보도가 이어지자 윤 후보는 지난해 12월 30일 "민주당 기관지임을 자인하는 물타기 기사"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같은 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공수처 통신조회 논란 현안질의에서 국민의힘 간사 윤한홍 의원은 "검찰이 2019년 하반기부터 2020년까지 처리한 사건이 330만 건이 넘는데 그거 처리하면서 통신조회를 282만 건 했다. 비교할 것을 비교하라"며 "국민들을 속이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통신조회 건수를 전체 처리사건 수로 나눠 비교하는 방식이 타당한지, 매년 수백만 건에 달하는 수사기관의 통신조회 관행은 문제가 없다는 것인지, '국정농단 특검' 때 이뤄진 220만 건 통신조회도 '사찰'에 해당하는지 등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과기정통부 자료에는 수사기관 문서 1건당 통신조회 건수도 적시돼 있다. 검찰과 공수처를 비교할 수 있는 2021년 상반기 자료를 보면, 검찰은 문서 1건당 평균 8.8건의 통신조회를 했다. 검찰은 6만 7720건의 문서에서 59만 7454건의 통신조회를 했다. 반면 공수처는 문서 1건당 평균 4.7건의 통신조회를 했다. 공수처는 29건의 문서에서 135건의 통신조회를 했다. 윤 후보가 총장 재직시절 검찰의 문서당 통신조회 수는 ▲2019년 하반기 평균 10.2건 ▲2020년 상반기 평균 10.9건 ▲2020년 하반기 평균 9.9건 등이다. 통신조회를 필요로 하는 사건에서 검찰이 공수처보다 2배가량 많은 통신조회를 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은 올해 하반기엔 공수처의 통신조회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검찰의 모든 수사 사건과 고위공직자 수사를 전담하는 공수처 사건을 단순비교하기 어렵다.

수사기관의 통신조회가 관행이라는 점은 윤 후보와 그의 배우자 김건희 씨 통신조회 내역에서도 확인된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가 '공수처 야당 사찰'이라며 밝힌 두 사람의 통신조회 내역을 보면 윤 후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4회, 공수처 3회, 인천지검·서울시경찰청·관악경찰서 각 1회 등으로 나타났다. 김 씨에 대해서는 서울중앙지검 5회, 공수처와 인천지검 각 1회 등으로 집계됐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차라리 서서 죽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고발사주' 의혹 피의자다. 피의자에 대한 통신조회는 수사의 기본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30일 국회 법사위 회의장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 의원들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를 사찰 의혹이라며 공수처 해체 및 김진욱 공수처장 사퇴를 주장했다. (국회사진기자단=연합뉴스)

새누리당, 전기통신사업법 개정 국면 때 "수사 못한다" 반대

2015년 11월 18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조회 관행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 논의를 진행했다.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영장주의에 입각해 실시할 수 있도록 하고, 조회 시 제공사실과 요청자 등을 이용자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찬성했다.

그러나 여당이었던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은 "수사를 못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당시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았던 박민식 전 새누리당 의원은 "수사 실무상 실태를 보면 이것(통신자료 조회)까지 영장을 하게 되면 수사를 못 하게 된다"며 "그런 이유 때문에 통신사실확인자료나 감청의 문제는 통신비밀보호법에 규정하고, 그것보다 중요성이 낮은 이런 정도의 개인정보에 관한 것은 전기통신사업법에 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덕광 새누리당 의원은 "저는 국세청 조사국에서 개인정보에 관한 자료도 제출 많이 받아 조사해봤는데, 국가기관이 일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제한하는 것도 문제"라며 "국가의 고유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우리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박 전 의원은 윤석열 캠프 기획실장을 거쳐 현재 윤석열 국민의힘 선대위 총괄특보단 내 정무특보로 활동하고 있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통신조회는 가입자 조회일 뿐, 하다보면 몇백 개 나와"

2017년 10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현 국민의힘 의원)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경·군이 자신의 비서 손 모씨와 배우자에 대한 통신조회를 했다며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홍 대표가 '사찰' 의혹을 제기한 검찰청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당시 지검장은 윤 후보였다. 서울중앙지검은 기자들에게 "수사대상자와 여러차례 통화한 전화번호가입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다 그 중 1명의 이름이 손모 씨라는 사실만 확인했다"며 "홍 대표 비서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구체적인 통화내역 확인을 한 바 없다"고 말했다.

같은 해 10월 23일 열린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윤 지검장에게 홍 대표의 사찰 주장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특히 노 의원은 손 비서의 이름은 확인해놓고 그가 홍 대표 비서라는 사실은 확인하지 않은 채 덮었다는 서울중앙지검 답변에 의문을 표하며 "그런 통신조회는 왜 하냐"고 따져 물었다. 이른바 '저인망식 통신조회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만약 저인망식 수사가 아니었다면 손 비서를 수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윤 지검장은 "통신조회는 통화내역이나 실시간 위치 추적하는 통신조회(통신사실확인자료)도 있다"며 "이것은 그런 통신조회가 아니고 어떤 혐의자 또는 혐의자성 참고인에 대해 법원의 영장을 받아 통화내역을 조회했는데 그 상대방이 수십 명, 수백 명이 나오면 그 중의 한 사람으로서, 전화번호가 쭉 나오면 이 전화번호의 가입자가 누구인지 가입자 조회(통신자료)를 말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2017년 10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등검찰청·서울중앙지방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업무보고를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윤 지검장은 "통화내역을 (확인)하다보면 보통 번호가 몇백 개가 나온다"며 "저희가 조회를 하고 나서 가입자 확인이 되면 그 가입자가 어떤 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의료보험공단 등에 직업을 확인한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자세하게 들어가고 그 몇백 명 가입자를 전부 일일이 전화해 '왜 통화했느냐',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윤 지검장은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봤다. 그러나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것은 없었다"며 "지금 밝힐 수는 없지만 수사 중인 사건과 이분이 어떤 관련이 있을지 봤는데 특별한 정황은 없었다"고 했다. 윤 지검장의 답변내용은 "사건과 수사 특성상 피의자 등 사건관계인의 통화 상대방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통신자료 확인이 불가피했다"는 공수처의 공식입장과 비슷하다.

한편, 당시 조선일보·중앙일보·문화일보 등 주요 보수언론은 통신조회는 수사의 수단일 뿐 특정인 사찰로 보기 어렵다는 '팩트체크'성 기사를 게재했다. 조선일보는 2017년 10월 11일 기사 <[팩트체크]홍준표가 말한 '통신조회'는 번호 주인 확인>에서 "결론적으로 통신자료조회는 통신 수사의 한 수단일 뿐 특정인을 겨냥한 사찰로 단정 짓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고 썼다. 이어 조선일보는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 통신자료조회가 남발될 경우 통신비밀·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은 있다"며 "법조계에선 '정치권이 사찰 공방으로 몰고 가기보다 남용 가능성을 막는 방안을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2017년 홍준표 "통신 사찰" 주장에 보수언론 팩트체크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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