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보수정치권과 언론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매몰돼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을 '메신저 공격'으로 맞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한 SBS를 '정권매체'라고 낙인 찍었다. 국민의힘은 18대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해 정치인 불법사찰의 큰 피해자가 될 수 있지만 박지원 국정원장과 여당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8일 SBS는 국정원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18대 여야 국회의원 299명 전원에 대한 사찰을 벌였고, 그 문건이 국정원에 보관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문건의 존재를 자신이 직접 확인했다며 문건이 만들어진 시점을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로 특정했다. 고 권 전 민정수석은 2009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재임했고, 당시 국정원장은 원세훈 씨다. 이 관계자는 문건의 존재를 여야에 모두 알렸다고 했다.

SBS 보도와 관련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2009년 18대 국회의원 전원과 법조인, 언론인, 연예인, 시민사회단체 인사 등 천여 명의 동향을 파악한 자료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민정수석실이 검찰, 국세청, 경찰 등으로부터 정치인 관련 신원정보 등을 파악해 국정원이 관리토록 요청한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오래전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덮어놓고 갈수는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 정보위원장인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MBC'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18대 국회의원 전체, 특히 친박계 의원들에 대해 아주 낱낱이 조사하라는 지시"라며 "언론계나 법조계 부분도 나와 있고, 폭넓게 불법사찰이 진행됐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 조선일보 16일자 사설 갈무리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선거용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정원이 불을 지피고 여당대표까지 바람잡이로 나서는 것을 보니 뭔가 거대한 정치공작이 진행되고 있는 건 아닌지. 마침 국정원장이 박지원 전 의원"이라며 "사실 본인은 억울해 할 수도 있지만 박지원 원장은 '정치적 술수의 대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서슬퍼런 임기초반의 적폐청산에도 드러나지 않던 문건이 선거 직전에 짠 하고 등장했다. 그것도 익명의 국정원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려서"라며 "이것은 국내정치 개입 정도가 아니라 선거를 위한 정보기관의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2010~2011년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정보위원장을 역임했다.

정 전 위원장이 '선거용 정치공작'을 주장하는 배경 중 하나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박형준 예비후보로 이목이 쏠리는 상황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정무수석 등 요직을 거친 인물로, 해당 의혹제기 이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한 박 후보 반응 역시 '선거용 정치공세'라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KBS는 16일 <[단독]국정원은 '박형준 보고 사찰 파일' 실체 공개할까>에서 박 후보가 청와대 홍보기획관이던 시절 국정원의 시민단체 사찰 문건을 보고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2018년 9월 KBS가 입수해 공개한 국정원 사찰 문건 중 일부에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한 환경단체와 교수 등을 상대로 벌인 불법사찰의 내용이 서술돼 있는데, 이 문건의 특이한 점은 사찰내용을 보고받는 청와대 주요책임자들의 직함이 함께 기술돼 있다는 것이다. KBS보도에 따르면 2009년 7월, 2010년 3월 내용에 '청와대(홍보기획관) 보고', '청와대 (정무.민정.국정기획수석) 보고' 등의 문구가 적시됐다. 박 후보는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관련 보도를 한 SBS를 '정권매체'로 낙인 찍었다. 조선일보는 16일 사설 <12년 전 국정원 문제 왜 들추나 했더니 부산 野후보 공격용>에서 "이 갑작스러운 일은 정권 매체의 보도로 시작됐다. 이후 여당이 경쟁적으로 의혹을 키우고 있다"며 "정권이 채널A 사건을 만들어내던 과정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안 나왔던 자료가 지금 이 시점에 등장하고 여당이 기다렸다는 듯 이를 쟁점화하고 있다. 뭔가 석연치 않다"며 "정권 매체 보도의 출처는 ‘국정원 고위 관계자'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하더니 국정원이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돌연 조선일보는 '색깔론'을 꺼내들었다. 조선일보는 "현재 국정원은 본연의 임무인 간첩 잡는 일, 대북 정보 수집은 사실상 포기했다"며 "북한이라는 세계 최악의 폭력 집단과 대치 중인 나라가 대공 수사 역량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그런 국정원이 여당의 선거에 손발을 맞추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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