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둘러싼 논란을 본격적으로 정치권과 연결지어 비판하기 시작했다. 정의연 출신 인사들이 정·관계 곳곳에 포진해 청와대와 여당도 비판하기 어려운 '정치 세력'이 됐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정구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아내라는 단독보도를 냈다. 정 비서관이 건강상의 문제로 최근 사의를 표명한 것에 대해서는 정의연 논란 관련 '청와대 거론 사전차단설'을 이유로 들었다.

이와 함께 조선일보는 '운동권 시민단체'가 정치권에 포진해 문제해결에는 눈을 감은 채 '분노 비지니스'를 하고 있다고 썼다. 위안부 운동 30년 역사의 본질이 훼손시키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조선일보 5월 28일 <정의연 사무총장은 현직 靑비서관의 부인>

조선일보는 28일 온라인과 지면에 <[단독]정의연 사무총장은 현직 靑비서관의 부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한경희 정의연 사무총장이 정구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의 아내라는 단독보도다.

조선일보는 "정 비서관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여권 핵심 인사들과 두루 가깝다.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승진설도 있었지만, 최근 건강상 이유를 들어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이를 두고 '정의연 사태의 불씨가 청와대로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한 사전 조치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썼다.

이어 조선일보는 "청와대와 여당의 '정의연' 감싸기는 정의연 관련 인물들이 여권 곳곳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며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 이미경 코이카 이사장,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 비서관 등이 정의연의 전신인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출신 인사들이라고 문제를 삼았다.

조선일보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된 정대협 활동을 발판 삼아 200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속속 진입한 것"이라면서 "정치권에선 '정의연은 사실상 여성 정치인들의 참여연대 격'이란 말도 나왔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정대협(정의연) 활동이 여권에서 '여성 운동의 상징' 처럼 받아 들여지고, 출신 인사들의 활발한 정·관계 진출로 정의연의 존재감이 더욱 커지면서 청와대·여당도 비판하기 어려운 정치세력이 됐다는 분석"이라고 했다. 정치권 어디에서 이런 말과 분석이 나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사진=연합뉴스)

청와대는 이날 즉각 해당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전형적 허위보도이자 악의적 보도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서면입장에서 "조선일보의 이러한 허위보도는 일일이 헤아리기조차 힘들 정도"라며 "한국 언론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윤 수석은 정 비서관을 지난해 자신이 직접 추천해 영입했으며, 애초 올해 4월까지만 근무하겠다는 조건이 있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약속대로 지난달 그만둘 예정이었지만 비서관 일괄 인사가 예정돼 있어 저의 요청으로 사직 시기를 늦췄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의연 논란이 불거지기 이전인 4월에 정 비서관의 사퇴가 예정돼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어 윤 수석은 "조선일보는 지난 18일에도 그야말로 조선일보식 허위보도를 했다. 군 장성 진급 신고식을 연기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군에 불만이 있어서 행사를 취소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며 "또 지난 4일에는 4·15 총선의 사전투표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고 비판했다.

윤 수석은 "어떻게 이런 터무니없는 허위사실이 버젓이 신문에 실릴 수 있는지 의하하다. 시중 정보지에나 등장할 법한 내용이 종합일간지에 보도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라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정 비서관 역시 이날 입장문을 내어 "분노도 아깝다. 어떻게든 청와대를 끌어들이려는 허망한 시도가 측은하고 애처로울 뿐"이라고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정 비서관은 "건강이 안 좋은 상태로 들어왔고, 업무에 지장을 느낄 정도의 불편함이 있어서 지난 4월 사의를 표시했다"며 "만류가 있었고, 다른 인사요인과 겹쳐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그게 전부"라고 했다.

정 비서관은 조선일보의 '청와대 거론 사전차단설'에 대해 "터무니없는 소설"이라며 "4월에 5월에 일어날 일을 예견해야 한다. 나는 그런 능력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정 비서관은 "정의연 사무총장이 아내인 것은 맞다. 숨겼던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내세운 적도 없다"며 "아내가 정의연 일을 한지 2년이 가까워 오는데, 남편이면서 후원회원이 아닌 걸 이제서야 알았다. 그게 미안하다"고 했다.

조선일보 5월 28일 <[양상훈 칼럼] '無자본 특수법인'들의 분노 비즈니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이날 칼럼에서 '운동권 시민단체'라는 '無자본 특수법인'들이 '분노'를 영업무기 삼아 문제해결은 외면한 채 정치권력이 됐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정의연'이라는 것이다.

양 주필은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이 바뀌고 정착되면서 정치 무자본 특수법인은 거의 사라지거나 약화됐다. 그 자리를 대신 메운 것이 이른바 '시민 단체'"라고 했다. "무엇을 폭로한다거나, 불매운동을 한다거나, 반대 시위를 한다거나, 수사를 유도하는 등의 '힘'"을 시민단체의 '영업 무기'라고 했다.

양 주필은 "운동권 시민 단체가 촉발하는 분노는 민주당의 선거 승리를 돕고, 민주당 정권은 다시 시민 단체를 돕는 '순환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며 "정의연이 전형적 사례"라고 했다. 양 주필은 "정의연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부하고 대중의 분노를 일으켰다. 정의연은 종전의 40배에 달하는 국고보조금과 누구도 못 건드리는 '성역'이라는 보답을 받았다"며 "그 성역 속에서 그런 돈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이는 일종의 비즈니스처럼 보인다"고 했다.

양 주필은 "미선·효순 사건, 광우병 사태, 세월호 사태, 사드 사태 등이 모두 분노의 소재가 됐다"며 "문제가 해결되면 분노가 사라지기 때문에 곤란하다. 진상 규명은 끝이 없어야 한다. 지금 3차인 세월호 진상 규명위는 필요에 따라 4차, 5차로 넘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와 칼럼은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등 보수진영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천 전 수석은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의연을 "법 위에 군림한 이익 추구 집단"이라고 비난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해결안인 '사이토안'이 좌초된 것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입장과는 달리 문제해결을 원치 않았던 정의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천 전 수석은 "사이토안은 위안부 (피해자)에게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윤씨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배제된 '사이토안'과 같은 안에 대해 이용수 할머니도, 고 김복동 할머니도 강경하게 반대 입장을 펼친 바 있지만, 천 전 수석은 개인이 받은 '인상'만을 가지고 정의연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사실상 매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같은 논리를 정의연을 비롯한 시민단체 전반에 확대적용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의해결과 위안부 운동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과거 보수정권에서 추진했던 위안부 문제 해결안에 대한 비판을 상쇄하고, 이른바 '진보 시민단체'의 문제를 현 정권의 도덕성 문제와 연결지어 비판하기 위한 논리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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