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는 걱정한 만큼의 피해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관행적 일본 의존에서 벗어나 국산화 추진으로 국내 중소기업들이 쉽지 않았던 기회를 얻게 되는 망외의 성과가 주목받고 있다. 어쩌면 일본으로서는 대기업들의 일본 의존도만 파악하고, 한국 중소기업들의 기술과 근성은 미처 알지 못한 계산 착오가 있을 수 있다.

아직 한일 경제 전쟁의 결말을 논하기는 이른 시점이지만, 과연 일본이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클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베 정권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었지만 여전히 개헌을 추진하기에는 불충분한 상태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일본 불매운동의 여파로 일본 중소도시의 관광산업에 불황을 초래하고 있어 점점 사회 문제화되고 있다.

일본·미국, 수출규제 틈타 '공격적 투자'…"기술패권 전쟁"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애초 일본 수출기업들의 매출 감소를 무릅쓰면서까지 감행했던, “한국의 가장 아픈 곳”이라던 반도체 핵심소재의 수출규제는 카미카제의 효과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참의원 선거가 끝났음에도 아베 정권은 우리나라에 대한 보복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한술 더 떠서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아무래도 일본 아베 정권의 속내는 정치적 이유 말고도 더 있음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국의 반도체 기업에 타격을 주려 했던 일본의 또 다른 목적이 있음이 밝혀졌다. 19일 JTBC는 <뉴스룸> 2부에서 이 부분을 집중해서 보도했다. 일본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에 맞춰 매우 공격적인 반도체 산업 투자에 돌입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사실 30년 전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일본이 독점했었다. 1990년 세계 반도체 매출 순위에 일본 기업들은 1, 2, 3위를 차지했고, 10위 안에 6개 기업의 이름이 올랐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2018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일본 기업들이 차지했던 매출 상위 그룹은 한국의 삼성과 SK하이닉스로 바뀌었다. 일본 기업들의 이름은 10위 안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일본·미국, 수출규제 틈타 '공격적 투자'…"기술패권 전쟁"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일본으로서는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절치부심 노리지 않았을 리 없고, 아베 정권은 정치적 이유와 더불어 경제적 이득까지 노린 양수겸장의 전략을 세운 것이다. 결국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오래 거래해왔던 한국 기업들의 발목을 잡으려 한, 매우 비열한 수법이다. 경제는 또 다른 전쟁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의 원칙 하에 이루어지는 세계 시장에서 이런 전략은 역시나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 있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일본 기업과의 거래가 꺼려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일본의 또 다른 문제는 그런다고 우리나라에 빼앗긴 반도체 산업의 아성을 되찾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일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들의 구조상 현재 상황이 전혀 타격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일본을 따라잡기 숨 가빴던 과거와 달리 일본을 추월하고 있는 한국이 순순히 물러설 리는 만무하다. 삼성 등 한국 대기업들이 이번 기회에 완전한 탈일본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은 곧 국내 중소기업은 물론 다른 나라들을 통한 대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출규제 전 치밀한 전수조사…일 우익 '반도체 부활' 속내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그런 가운데 일본은 19일 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다. 이에 21일 베이징에서 열릴 한일 외교장관 회의를 앞두고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오히려 삼성의 탈일본화를 교묘하게 방해하기 위한 미끼를 던지는 것이라는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반도체 산업 부활이라는 일본의 욕망을 이미 알게 된 이상 일본에 대해서는 어떤 방심도 금물인 것이다.

아베에게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한다. 도쿄올림픽이 기회라면 그를 둘러싼 방사능 문제, 다시 말하자면 후쿠시마의 재건 여부는 위기일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 방송사들이 보도하고 있는 후쿠시마 인근의 방사능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한국을 쳐 반도체 산업을 부활시키겠다는 야심은 성공한다면 엄청난 기회겠지만 하필 상대가 삼성이다.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에서 또 하나의 위기이다. 그리고 일본이 만만히 봤던 한국 중소기업들의 저력은 일본이 계산에 넣지 못한 추가적 위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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