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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 녹두장군이 아닌 ‘녹두꽃’, 125년 전에도 세상을 바꾼 건 약자였다황토현 전투 전율… 선을 넘어선 이현, 전쟁터에서 만난 이강과 자인
장영 기자 | 승인 2019.05.12 12:47

동학농민혁명 125주년을 맞이하는 날 드라마 <녹두꽃>은 황토현 전투를 담았다. 첫 승리이자 본격적으로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그 전투는 처참했다. 분노한 백성들과 그런 그들을 제압하는 것을 사냥놀이 정도로 생각한 관군들의 모습은 묘한 기시감으로 다가온다. 얼마 되지 않은 현대사에도 비슷한 일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녹두꽃>은 전봉준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일반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백이강과 백이현 형제를 통해 당시 상황을 전달하는 방식을 택했다. 왜 <녹두꽃>은 전봉준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까? 거기엔 분명한 작가의 의도가 존재할 것이다. 동학농민혁명은 몇몇 영웅들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라는 확신이다.

분노한 백성을 규합하고 그들이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등의 역할은 전봉준 등 동학 수뇌부가 주도했지만, 당시 수탈과 탄압, 억압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백성들이 주인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녹두꽃>은 특별하다. 녹두장군이 아닌 ‘녹두꽃’에 방점을 찍은 드라마는 그래서 더욱 백성들의 입장에서 그날을 기록하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중인인 아버지 백가와 노비였던 어머니 유월이 사이에 태어난 이강은 동생 이현이 채 씨 부인에게서 태어나기 전까지는 행복했다. 모든 사랑을 독차지하며 도련님으로 컸던 이강은 이현이 태어나자마자 '거시기'로 살아야 했다. 백성들을 수탈하는 악랄한 탐관오리 백가는 그렇게 재산을 모았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백가는 그렇게 악랄하게 돈을 모았다. 이현을 출세시켜 신분상승을 하겠다는 원대한 꿈 때문이었다. 이강과 이현은 드라마 <녹두꽃>의 핵심인물이다.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두 형제가 맞닥뜨린 현실과 대립구도가 핵심이다.

'거시기'에서 백이강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그는 동학군에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백가와 함께 저지른 수많은 악행 때문에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많은 동학군을 구하며 들어가게 되기는 하지만, 그에 대한 불신과 분노 그리고 복수심은 여전히 팽배했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이현은 혼사를 앞두고 징집되어 의병들을 제압하는 관군과 함께 전투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교생안'에 올라온 이는 징집을 피할 수 있지만, 그는 황석주에 의해 징집을 당했다. 백가 때문에 모진 고문을 받으며, 여동생인 명심과 이현의 혼례를 받아들였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백가의 자식과 혼사를 치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게 황석주는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이현을 징집시켜 그가 전쟁통에 사망하기를 바랐다. 여동생을 지키고 백가에게 복수를 하는 최고의 선택이라 그는 믿었다. 친구 전봉준과도 대립각을 키우며 스스로 보수적인 양반 집단으로 돌아간 황석주의 변절은 결과적으로 모진 후폭풍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어 보인다.

징집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현도 알고 있었다. 사또 역시 '교생안' 이름을 확인했는데 왜 징집되었는지 궁금해 했다. 형방인 홍가를 협박해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게 된 이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궁지로 내몬 이가 바로 스승이었던 황석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이현의 변화는 극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저 과보호를 받으며 공부만 하던 그가 일본 유학을 갔다 온 후 달라졌다. 새로운 나라에 대한 갈증도 컸던 그였지만, 그런 그를 더욱 궁지로 내몬 것은 복잡한 집안이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악랄한 가족들 틈 속에서 분노해왔던 이현은 처음으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것은 깨지게 되어 있다. 그의 광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는 점점 괴물로 변해갈 수밖에 없다. 향병으로 징집되어 어쩔 수 없이 적이 되어버린 동학군을 죽인 것보다 그 안에 품은 이질적 가치관이 만든 광기다. 동학군 별동대로 활동하는 이복형제 이강과 맞설 수밖에 없는 운명은 더욱 확고하게 구축되어갔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랑은 피어난다. 그리고 극단적 상황은 그런 사랑을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이강과 자인은 서로 좋아한다. 직접 표현을 하지 못했을 뿐 서로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들의 사랑은 시작부터 불안했지만 결과적으로 행복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현의 사랑이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이 되었듯, 이강과 자인의 사랑은 죽음을 향해 직진하고 있기 때문에 서글퍼진다. 격동기를 살아가는 그들에게 사랑은 사치였으니 말이다. 조선말 부패가 극대화되고, 일본의 침략이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시작된 동학농민혁명은 단순히 탐관오리를 처단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

백성이 곧 하늘인 세상 '인내천'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왕조국가에서 민주주의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혁명이 바로 '동학농민혁명'이었다. '프랑스 시민혁명'이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현재의 프랑스를 만드는 시작점이 되었듯, '동학농민혁명'은 현재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형제의 다른 선택 등 익숙한 공식으로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은 아쉽지만 '동학농민혁명'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은 흥미롭다. 언제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항상 약자들이었다는 극 중 전봉준의 말처럼 세상은 약자들이 바꿔왔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의 변화 모두 약자인 국민들이 자신의 목숨과 바꿔 만든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125년 전부터 시작된 그 정신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바로 '동학농민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장영 기자  mfmc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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