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최근 국가행정망 마비 사태는 많은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든 국가적 불행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국가적 불행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안이함이다.
많은 언론이 지적하듯 이미 2022년에 데이터센터 화재로 인한 카카오톡 장애 사태가 벌어졌고 2023년에는 새올행정시스템 전산망이 마비된 일이 있었다. 이 두 사례는 하나의 결론으로 모인다. ‘디지털 정부 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화재 등 사고로 인한 전산망 마비 사태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긴급히 예산을 투입해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드러난 사실들을 보면 정부는 오히려 예산을 축소했고, 이를 핑계로 서버 이중화 등의 대책을 실효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서버와 배터리를 밀집된 상태로 있을 수밖에 없는 공간에 뒀다. 배터리 사용연한 10년이 경과돼 교체 권고가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

야당은 행안부 장관의 사퇴를 주장한다. 사안의 파장을 고려하면 야당으로서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다만 전후사정을 살필 필요는 있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한 지 반년도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장관 사퇴를 요구하려면 이 사태에 이 정부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를 먼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단지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점만으로 새로운 정부의 장관 사퇴를 요구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의 대비를 했어야 할 주체는 윤석열 정권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도 예산 삭감 등의 책임 역시 피해갈 수 없다. 이런 사정이 있는데 이재명 정부만 비난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국민 입장에선 직전까지 여당이었던 정당이 이번 사태에 겸허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클 것이다.
다만, 동아일보의 30일 보도에 따르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측이 애초 배터리 전원을 끄고 이전 작업을 진행했다고 밝힌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소방청 화재 상황 보고서를 보면 화재 신고 접수 이후 3시간 가까이 배터리에 전원이 공급되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경찰이 전동드라이브 등 사용 여부도 조사 중이라고 했는데, 이는 배터리 이전 작업이 규정대로 진행되지 않았을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사정과 관련해서는 현 정부의 책임도 논해볼 여지가 있다. 동아일보는 배터리 이전 작업이 제조사가 아닌 입찰을 통해 선정된 영세 업체가 맡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고 있는데, 과연 이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많은 국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끼친 국가적 재난에 대해 여야가 합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논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인사들은 장관 사퇴 요구를 넘어 중국인 음모론에 편승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 개시와 관련 모종의 정보 은폐를 위해 누군가 화재 사건을 일으킨 것이라는 음모론이 유통되고 있는데, 이를 의식한 발언이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나경원 의원은 수차례 SNS를 통해 이번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의 신원 확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무비자 입국 연기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김민수 최고위원은 중국인 관광객의 입국으로 범죄와 전염병 감염의 우려가 증대된다는 사실상의 인종주의적 발언을 내놓았다.
이들의 이런 발언은 글로벌 기준으로 봐도 극우정치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즉, 이들은 극우정치를 요구하는 지지층을 만족시키는 정치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국민의힘 내에서 소수에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위의 차이는 있지만 이재명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을 친북, 친중으로 몰고 현안의 모든 비판을 ‘독재’와 연결짓는 방식으로 전선을 확장해가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이러한 시도는 극우포퓰리즘적이라고 할 만한데, 물론 당장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지방선거에서 이런 전략은 처참한 성적표를 받게 되는 원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이 이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이전 정권들에 대한 학습효과가 우선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 내내 해봤더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 발짝 더 들어가보면, 이 역시 전략의 효과를 실제로 계산해 본 결과라기보다는 국민의힘의 현실을 반영한 자기기만적 진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즉, 윤석열 정권을 거치면서 국민의힘은 이렇게 하는 것 외의 정치 방식을 망각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은 수권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일 수 있다. 국가행정망 마비라는 국가적 재난을 앞에 두고도 극우화로 치닫는 국민의힘의 오늘은 바로 이 점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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