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과거 음지에서 특정 커뮤니티·세대 중심으로 이뤄지던 혐오가 수면 위로 올라와 확산되고 있다. ‘중국 혐오’ 현수막을 넘어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혐중 시위가 발생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혐오 현수막과 관련해 “계엄 국면에서 중국 개입설 같은 것들이 거론됐고, 건대 앞 양꼬치 거리에서 혐중 시위가 있었다”면서 “특히 혐오의 대상인 중국인들이 있는 곳에서 시위를 했다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 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현수막이 걸린 것이기 때문에 상황이 엄중하다”고 진단했다. 

'애국 현수막 달기' 홈페이지 갈무리
'애국 현수막 달기' 홈페이지 갈무리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이) 예전에는 특정 커뮤니티, 특정 세대, 특정 계층에서 발화됐지만 지금은 계층이나 세대 불문하고 혐오 표현이 일반화되는 상황”이라면서 “특히 중국 혐오의 경우 국민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기도 하고, 정치인들이 조장하는 부분도 있다. 중국인 밀집지역에 직접 가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극우 단체 '자유대학'은 지난 17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양꼬치' 거리에서 행진했다. 이들은 "짱깨", "북괴", "빨갱이는 꺼지라"는 구회를 외쳐댔다. 또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전국에 ’한국인 1등급은 의대 탈락! 중국인 6등급은 의대장학금!‘ ’이대로 가다간 중국의 노예가 된다‘ ’중국 유학생이 잠재적 간첩이라고?‘ ‘비자발급 남발! 중국인이 몰려온다!’ ‘부정선거 도둑 한국, 제2의 홍콩된다’ 등의 현수막을 게재하고 있다. ‘애국 현수막 달기’ 홈페이지에 따르면 22일 기준, 총 719개의 혐중 현수막이 전국에 걸렸다. 누적 현수막은 2261에 달한다. 

홍 교수는 “일반적으로 모든 혐오 표현을 다 규제하는 건 어렵지만 영향력이 많거나 직접적으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그런 영역에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현수막 같은 경우에는 불특정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접하는 매체”라면서 “그래서 조금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정당 이름으로 ‘혐오 현수막’이 게재돼 옥외광고물법의 규제를 피하고 있다면서 “법률이 혐오 표현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나 일반 단체가 (현수막을)걸었다면 옥외광고물법에 의해서 규제가 가능한데 ‘정당활동 차원’이라고 하면 규제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유튜브 영상 갈무리
한겨레 유튜브 영상 갈무리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공공장소에 게시하는 광고물은 지자체의 허가 또는 신고를 거쳐야 한다. 또 인종차별적 내용, 청소년 보호·선도 방해 우려가 있는 광고물은 게시할 수 없다. 하지만 혐중 현수막은 ‘내일로미래로’ 정당의 이름으로 걸리고 있다.

통상적인 정당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 표시·설치하는 경우, 별도의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애국 현수막 달기’는 홈페이지 공지에서 “정당 현수막으로 해야 신고 없이 합법적으로 게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당명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정치권의 경각심이 부족해 규제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기존의 정치권에서 혐오 표현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각심이 많이 부족했다”면서 “관련법을 정비하는 게 부족한 면이 있었다. 현수막 문제뿐 아니라 혐오 표현을 어떻게 할 거냐, 차별은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부분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고 했다.

홍 교수는 “혐오 표현이나 차별에 대한 대응이 미진했던 부분들이 누적되다 보니까 이런 현수막 같은 게 걸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적절한 규제 수단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지만, 규제가 문제를 다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어떤 특정한 표현을 규제하면, 더 교묘하고, 모호한 표현으로 피해간다. 특히 정치인들이 그걸 잘한다. 혐오 표현을 해놓고 '정책이다' '공약이다' 이런 식으로 변명을 하기 시작하면 규제하기 상당히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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