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홍열 칼럼] 지난 26일 오후 8시경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을 통해 국가 정보 시스템이 그동안 얼마나 취약한 물리적 환경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시스템이 다운되자 바로 국가적 카오스가 발생했다. 온라인 시스템이 마비돼 행정 서비스 접속이 차단되면서, 국민들은 예상치 못한 불편과 혼란을 겪었다. 주민등록, 건강보험, 세금과 같은 필수 행정 절차가 멈추자 국민들은 생활 전반에서 차질을 빚었고, 기업 활동 또한 일정 부분 중단되었다. 디지털 전환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상황에서 이번 화재는 단순한 물리적 사고가 아니라, 곧 국가적,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국가 네트워크가 셧다운되는 순간 발생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크고 복합적이다. 행정 서비스는 물론이고 의료, 교육, 금융 등 국가와 국민을 연결하는 거의 모든 영역이 직격탄을 맞는다. 예컨대 신분 증명이 불가능해지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어려워지고, 자격 증명이나 행정 처리가 지연되면 사회적 활동 자체가 막혀 버린다. 금융기관도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연동되어 있어 일부 거래가 지연되거나 불가능해진다. 단순히 인터넷 접속 장애가 아닌, 사회적 권리 보장과 일상적 안전망이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사건은 네트워크가 정보 기술적 편의가 아니라 국가 운영의 핵심 기반임을 다시금 각인시켰다.

9월 3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4일차 현장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9월 30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감식 관계자들이 4일차 현장 감식을 준비하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은 국가 네트워크의 셧다운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저소득층과 고령층은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망을 통해서만 행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 네트워크 외에 다른 대체 수단이 거의 없는 이들은 시스템이 멈추자, 일상 업무 처리조차 불가능해지고 생활 전반이 정지된 듯한 타격을 받았다. 예를 들어, 국가 네트워크가 복구될 때까지 복지 수당, 의료보험 처리, 취업 관련 행정 등과 같은 사회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공공 서비스에 의존하는 취약 계층에게 이번 화재는 생존과 직결된 위기로 다가온다. 

반면 중산층 이상 계층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다. 우선 이들은 국가 행정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취약 계층에 비해 높지 않다. 이들은 국가 전산망 이외에도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나 복수의 네트워크 경로를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있었다. 기업 네트워크 시스템을 활용해 업무 차질을 최소화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일정 정도 지연은 감내할 수 있는 자원도 존재했다. 같은 화재 사건을 겪었지만,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피해의 크기와 체감 강도가 달라졌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결국 국가 네트워크의 부실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부담을 전가하는 구조적 불평등을 강화한다. 

국가가 네트워크의 완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가 네트워크는 단순히 행정 편의를 제공하는 수단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공재이자 사회 안전망이다.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서비스가 보장될 수 있도록 이중화된 시스템, 신속한 복구 체계, 지속적 점검과 보완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물리적 기반 시설의 안전 강화와 사이버 보안 역량 확충은 선택이 아닌 의무에 가깝다. 이러한 시스템적 보완 없이는 언제든지 이번과 같은 대규모 장애가 반복될 수 있고 그 피해는 취약 계층의 삶의 질을 더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중단된 정부 전산망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센터에 IC주민등록증,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 등 일부 민원사무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화재로 중단된 정부 전산망에 대한 복구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30일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센터에 IC주민등록증, 모바일 주민등록증 발급 등 일부 민원사무 중단 안내문이 붙어 있다(연합뉴스)

기술이 발전할수록 계층 간 기술격차는 더 커진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이전 기술보다 더 큰 격차를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생성형 인공지능의 고도화는 인공지능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격차를 유발한다. 디지털 격차는 바로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국가는 이 디지털 격차를 완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안정적인 국가망이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취약 계층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물리적 네트워크의 안정성은 격차 완화의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정부가 정보 네트워크를 경제사회적 안전망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은 단순한 관리 부실을 넘어선, 사회경제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네트워크는 단순한 기술 인프라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와 사회적 신뢰를 떠받치는 구조다. 국가의 책임이 미흡하면 결국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피해는 늘 가장 약한 계층에게 집중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물리적·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는 것과 동시에, 국가가 국민 전체를 위한 디지털 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네트워크의 안정성은 곧 민주사회에서 국가의 기본 책무이자,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존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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