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박대형 기자]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국가 주요 전산망이 마비된 가운데 언론은 "재난 상황에도 멈춰선 안 될 행정시스템이 마비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사태"라고 입을 모았다.

중앙일보는 "정부는 민간기업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 엄벌을 외쳤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 민간기업을 질책할 입장인지 되묻게 된다"고 했고, 한겨레는 "국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화재 현장을 찾아 서로 '네 탓' 공방만 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태는 ESS의 위험성을 재확인해줬다. 원전 수명 연장에 소극적인 현 정부가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며 '탈원전'과 연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행정안전부 산하 국정자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전자정부 업무 시스템 647개가 일제히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24, 모바일 신분증, 인터넷 우체국 등 주요 행정서비스가 멈춰서면서 전국적으로 큰 혼란이 빚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중요한 기간망은 외부적 요인으로 훼손될 때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이중 운영 체계를 당연히 유지해야 하는데 그 시스템 자체가 없었다는 게 놀랍다. 3시간 안에 복구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는데 이틀이 다 되도록 복구가 안 되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국정자원 화재 사태를 '탈원전'과 연결했다. 조선일보는 29일 사설 <국가 전산망 마비, 재생에너지 무분별 확대에 보내는 경고음>에서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며 '초대용량 배터리'인 에너지저장장치(ESS)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번 사태는 ESS의 위험성을 재확인해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ESS 없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은 포수 없이 투수만 늘리는 것과 같다"며 "신규 원전 건설, 기존 원전 수명 연장에 소극적인 현 정부가 이번에 현실을 깨닫는다면 그나마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를 시작으로 이번 국정자원 화재 사태로 인해 ESS 주민 수용성이 크게 낮아져 재생에너지 확대 계획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보도가 이어졌으나, 원전 정책을 이어붙인 언론은 조선일보가 유일하다.

중앙일보는 <세계 최고라더니…불 한번으로 드러난 디지털 정부 민낯>에서 "디지털 정부의 심장 역할을 하는 이런 기관의 기능이 배터리 화재 하나로 무너진 것은 국가 위기 관리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음을 보여준다"며 "정부가 자랑해온 '유엔 인정 우수 전자정부'의 민낯이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SK텔레콤이나 KT, 롯데카드 등의 개인정보 유출 등 민간기업의 사고가 터질 때마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 엄벌을 외쳤다. 이번 사태를 보면 정부가 과연 민간기업을 질책할 입장인지 되묻게 한다"며 "오히려 민간기업들은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이후 삼중화 체계를 도입하는 등 대응을 강화했다. 민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정부가 정작 스스로는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국정자원' 화재로 국가전산망 올스톱… 이게 대한민국 맞나>에서 "국가 전산망에 이상이 생겼을 때 보완하는 이중화(백업) 체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고 한다"며 "3년 전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서버 분산, 실시간 백업 체계 구축 등의 대책을 강도 높게 요구해 놓고는 정작 국가 전산망 관리는 손놓고 있었던 셈"이라고 했다.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위해 소방,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위해 소방,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는 <'정부 디지털 심장부' 마비, 정보기술 강국 맞나>에서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이중적 태도"라며 "정부는 3년 전 카카오 먹통 사태가 발생하자, '(정부 시스템은)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실시간 백업된 자료로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카카오 사태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정치권도 힘을 합쳐야 한다. 국가 안보에는 여야가 따로 없지 않나"라며 "하지만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은 28일 화재 현장을 찾아 서로 '네 탓' 공방만 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국정자원 화재 현장에서 책임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지난 정부가 배터리 서버 이중화 작업을 제대로 못하고 예산 수립을 미흡하게 한 탓이라고 했고 국민의힘은 정부의 위기 대응 능력 부실로 사고가 터졌다며 이 대통령과 윤호중 행안부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향신문은 <정부 전산망 마비, '이중화' 안 된 경위 규명해야>에서 "국가 주요 시설에 불이 난 것도 문제지만 대형 재난에도 멈춰선 안 될 행정 시스템이 마비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사태"라며 "화재뿐 아니라 최근 SK텔레콤·KT·롯데카드 등에서 보듯 서버 해킹도 빈번해지고 있다"며 "주요 전산 시스템의 안전 관리에 대한 실효적이고 종합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화재 원인과 이중화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를 철저히 규명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은 물론"이라고 했다.

한국일보는 <화재 하나로 셧다운, 이게 '최고 디지털 정부' 전산망>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화재 하나로 정부 전산망이 모조리 '셧다운'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번 사고는 '디지털 정부'의 부끄러운 민낯을 보여준다"며 "국민 불편 최소화를 위해 조속한 복구에 최선을 다하되, 화재 원인부터 국가 전산망 관리 구조, 그리고 재발 방지책까지 총체적 점검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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