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배경을 두고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정부는 이 문제가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에 대한 보안 관련 문제가 이유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핵무장론이나 비상계엄 선포와는 관계가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후 언론은 미국 에너지부 감사관실이 미 의회에 제출한 반기보고서를 근거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보고서를 보면 아이다호 국립연구소의 계약직 직원이 수출이 금지된 원자로 설계 소프트웨어를 소지하고 한국행 항공기에 탑승하려다 적발돼 해고된 사실이 업무성과로 거론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부 감사관실은 조사 결과 외국 정부와 소통이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데, 여기서 ‘외국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를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맥락상 ‘외국 정부’는 민감국가로 지정된 한국이거나 미국과 적대하는 중국 등을 의미하는 것일 거다. 만일 ‘외국 정부’가 한국이라면 원자로 설계도를 빼내려고 한 주체가 한국 정부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가 기밀을 빼내려고 했다면 엄청난 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강력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외국 정부’가 중국 등이라면 적어도 한국이 미국의 경쟁국가로 기술이 유출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해진다. 이는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하기보다는 관리 강화 등 한국과의 외교적 협조를 통해 해결할 사안이다. 그런데 이를 이유로 민감국가로 지정했다면, 그리고 그 과정을 한국 정부가 알 수조차 없었다면, 적어도 한국 정부를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판단을 미국이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외교 정책상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역시 윤석열 정권의 사실상 자체 핵무장론이나 최근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 등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가늠해보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을 포함한 윤석열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지속적으로 핵 능력의 고도화를 주장해왔고 바이든 정권은 이를 의식하여 워싱턴 선언을 통해 확장억제를 강화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핵 타령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러한 상황에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미국의 신뢰를 상실하는 데에 결정적 계기가 됐을 수 있다. 미국은 사전에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니 민감국가로 지정하는 데 있어 한국 정부가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미국의 비확산 기조를 거슬러 사실상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고, 통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바깥으로 나가려고 한 정부를 어떻게 믿겠는가?
이런 때에는 한국 정부가 신속히 안정을 되찾을 것이며 설익은 핵무장론도 주장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집권 세력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첫째는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를 정당화하는 비합리적 주장과 선을 긋고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도록 하는 것이다. 둘째는 대권주자 개인의 지론이 어떻든 이번 대선에서는 적어도 핵무장을 연상케 하는 얘기는 꺼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그에 소속된 대권주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거부하는 강성 지지층에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이 헌법재판소의 결론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음에도 울림이 없는 것은 당의 전반적 대응이 이들과 선을 긋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해서다.
가령 오세훈 서울시장의 경우 TV조선에 출연해 헌법재판소의 선고가 애초 예상보다 늦어지는 데 대해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으로 보나 늦어지는 걸로 보나 기각 쪽 두 분, 각하 쪽 한 분 정도 계시지 않겠나”라고 했고, ‘탄핵 찬성파’로 분류되는 것에 대해 “일단 탄핵소추를 통해 헌재의 사법적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이라는 취지였다”며 “탄핵 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명백하게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는 행보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경우 여당 인사들이 무책임하게 핵무장론을 거론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 “제가 주장한 건 일본과 같이 농축, 재처리 기술을 확보해서 핵무장 직전까지인 핵 잠재력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불필요한 언급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주장 역시 핵 능력을 고도화 하자는 주장으로서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 원칙적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굳이 민감국가 문제가 거론되는 이 시점에 ‘내 말이 맞다’는 취지로 할 주장이 아닌 것이다.
여러모로 볼 때 국민의힘은 유권자의 선택을 다시 받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실제 선택을 다시 받기도 어려운 상황인 걸로 보인다. 자신들도 그걸 알기 때문에 더욱 강성 지지층의 함정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이번에 탈출하지 못하면 다음 번에는 더 깊숙한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미 겪은 일이니 모를 리도 없을 것이다. 뻔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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