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국민의힘에서 북한 오물풍선 살포와 북·러 밀착을 명분삼아 '핵무장론'이 분출하고 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핵무장론을 띄우자 국민의힘 당권주자와 잠룡들이 호응하고 나선 모양새다. 

핵무장론은 북한의 핵무장을 정당화하는 것은 물론 외교·경제적으로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보수진영이 핵무장론을 거론하는 것은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보수언론에서도 '위험한 도박'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들. 왼쪽부터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나선 후보들. 왼쪽부터 나경원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윤상현 의원,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핵무장론을 중심으로 한 선명성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6·25 전쟁 74주년을 맞은 25일 국민의힘 당권 주자인 나경원 의원은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운을 띄웠다. 나 의원은 '국제정세를 반영한 핵무장', '평화를 위한 핵무장', '실천적 핵무장' 등을 '나경원의 핵무장 3원칙'이라고 내세웠다.  

다른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은 핵무장론은 한계가 있다면서도 "핵무장 잠재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핵무장에 앞서 핵우산 강화"(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핵잠수함과 한미 간 핵 공유협정"(윤상현 의원)등의 주장을 폈다. 

국민의힘 대권 잠룡들 사이에서도 핵무장론 경쟁이 치열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물 풍선을 보면서 우리도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NPT(핵확산방지조약) 10조는 자위를 위해 탈퇴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이제는 결단력이 필요할 때"라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NPT 탈퇴의 권리가 가장 완벽하게 적용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했다. 

갑자기 핵무장론이 국민의힘 주류의 시각으로 자리잡은 배경으로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보고서와 보수언론의 핵무장 촉구를 꼽을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지난 21일 '러북 정상회담 결과 평가 및 대 한반도 파급 영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자체 핵무장 또는 잠재적 핵능력 구비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검토 및 전략적 공론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 6월 25일 사설 유튜브 썸네일
조선일보 6월 25일 사설 유튜브 썸네일

그러자 25일 조선일보는 사설 <막다른 길에 선 韓 안보, 정부硏서 나온 핵무장론>에서 "이제 한국 정부도 핵무장 논의를 더 이상 금기시하지 않아야 한다"며 "당장은 미국이 수용하기 어렵다고 해도 계속 타진해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후세에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북·중·러는 모두 핵을 갖고 있는데 이들 국가와 맞서 있는 한국이 핵이 없으면 "언젠가 문제가 터진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우리 사회는 불감증에 빠져 있지만 객관적으로 심각한 안보 위기"라며 "미국의 핵우산으로 대응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 같은 인식은 미국 조야에서 본격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경제는 26일 사설 <커지는 북·중·러 핵 위협, 우리도 핵무장 공론화할 때>에서 "우리 홀로 북·중·러 핵 강국에 맞서야 하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독자적인 핵 대응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며 "자체 핵무장, 전술핵 공유, 핵 잠재력 확보 등 어떤 형식이 됐건 핵 주권 확보를 위한 공론화에 불을 댕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핵무장론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무너뜨리고 동북아시아 전체를 핵 경쟁 도미노에 빠뜨리며 국제사회의 비난과 미국·중국·러시아의 반발을 사게 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중앙일보는 27일 기사<북·러 밀월에 "한국 핵무장" 분출…'공포의 착시효과'가 부채질>에서 "한·미 동맹이 ‘금기어’로 삼아왔던 핵무장론의 고삐가 풀렸다"며 "이제는 '공포의 핵균형'을 통해 스스로 안보를 지킬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논의이지만, 대가를 간과한 공포의 착시 효과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대다수 핵 무장 지지자들이 핵을 가졌을 때 치러야 할 비용은 간과한 채 감지되는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한 결과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지적"이라며 "‘한국의 핵무장’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는 게 핵심인데, 하나를 보험처럼 둔 채 두 선택지의 병립을 원하는 것 자체가 사실 모순"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핵 보유가 초래할 수 있는 대가를 함께 제시했을 때 핵무장 지지 응답이 대폭 감소한다는 지난해 6월 통일연구원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경제 제재, 한·미 동맹 파기, 안보 위협 심화, 핵 개발 비용 부담, 환경 파괴, 평화 이미지 상실 등 핵 보유로 인해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를 제시하자 핵 보유 찬성 응답이 60.2%에서 36~39%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6월 27일 사설 갈무리 (빅카인즈)
중앙일보 6월 27일 사설 갈무리 (빅카인즈)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분출하는 여당 내 독자 핵무장론, 자제가 바람직하다>에서 "독자 핵무장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핵무장이 겉으론 그럴듯해 보여도 내용 면에선 도박이다.(중략)우파의 표만을 노리고 핵무장론을 들고 나오는 건 위험한 안보 포퓰리즘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앙일보는 "한국이 핵무장을 한다는 건 그동안 쌓아 온 외교의 대의명분(한반도 비핵화)을 하루아침에 폐기하는 셈이라 국제적 위상 추락에 직면할 수 있다.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도 없고, 대북제재를 유지할 근거도 상실한다"며 "특히 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된다. 그럴 경우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중앙일보는 한국의 핵무장이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도를 크게 높인다며 "핵무장이 오히려 안보 불안을 초래하는 역설"이라고 짚었다. 

중앙일보의 이 같은 주장은 야당의 주장과 차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26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구호처럼 ‘핵무장이 국력이다’라는 부질없는 논쟁이 시작됐다며 "참으로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핵무장론은 주장은 할 수 있으나 실현 불가능한 '뻥카'"라고 비판했다. 

정청래 의원은 ▲전시작전통제권은 미국에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미국은 한국의 핵물질 개발과 핵 사용후 재처리를 감시하고 있다 ▲NPT 탈퇴 시 미국의 경제보복이 이어진다 등의 논리를 들어 "미국 동의 없이, 미국 몰래, 한미 원자력협정을 파기하면서, NPT를 탈퇴하면서 가능한 일인가. 지금 '반미'를 주장하나"라고 따져 물었다. 

정청래 의원은 "한국은 대외 의존성이 높고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되지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조차 줄여야 한다"며 "전쟁은 재앙이고 평화가 곧 경제다. 아무말 대잔치, 말 폭탄 하나가 대한민국 경제를 폭망시키는 핵폭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6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정청래 의원 페이스북)

이충재 전 한국일보 고문은 26일 '이충재의 인사이트' 칼럼 <'전술핵' 떠들더니 이번엔 '독자 핵무장론'인가>에서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전술핵 도입을 주장했을 때와 똑같은 장면"이라며 "전문가들은 여론에 편승해 현실성 없는 강경론으로 치닫는 정치 지도자들의 태도는 위험하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한다. 특히 지지층 결집을 위해 안보 문제를 정치에 끌어드는 행태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외교부·국방부 신년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에서 "(북핵)문제가 심각해져서 대한민국이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과학기술로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울경제 [단독]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자체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정작 외신에 "윤석열 대통령은 북핵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말씀하신 것"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준수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공지했다. (관련기사▶윤 대통령, '자체 핵무장' 언급…대통령실은 외신에 "NPT 체제 준수")

이충재 전 고문은 "그간 보수정권 하에서 독자 핵무장론은 일정한 공식이 있다. 북한의 핵위협이 높아지면 보수언론이 먼저 핵무장론을 꺼내고 보수정부와 여당이 뒤따르는 패턴이 일반화됐다"며 "핵 무장이나 핵 재배치는 한국 정부나 보수진영의 의지나 독자적 능력만으로 실행할 수 없거나, 어마어마한 후과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중략)여당 전당대회에서 보수지지층을 겨냥한 정치 공방으로 소모되는 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퇴행적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27일 한겨레 박민희 선임기자는 기사 <북-러 조약 ‘외교 실패’ 뒤 다시 불거진 핵무장론, 현실성 있나>에서 "현실적으로 자체 핵무장은 물론 잠재적 핵능력 보유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왜 핵보유론이 다시 분출했을까"라며 "정부가 러시아와의 외교를 방치해 북러 조약이 체결된 외교실패에서 사람들이 시선을 돌리도록 하고, 보수층을 결집하기 위한 보수층의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이 나온다"라고 했다. 

조성렬 경남대 군사학과 초빙교수(전 오사카 총영사)는 한겨레에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뒤 한-러 관계가 계속 악화되었는데도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계속 ‘한러 관계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잘 관리되고 있다’면서 한러관계를 방치해 왔다”면서 “이제 북러가 조약을 맺자 당황한 보수 세력이 논의의 초점을 핵무장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희 선임기자는 "정치권의 핵무장론은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을 하면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명예교수(한국핵정책학회 회장)는 한겨레에 "한국이 정말로 안보를 위해 핵 잠재력을 보유하려면, 여야가 진지하게 협의를 해 명확한 전략을 만들어 ‘조용한 외교’를 해나가야 한다”면서 “정치권에서 이렇게 핵 보유를 떠들수록 한 걸음도 나갈 수 없고 불리해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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