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12월 3일 밤 여의도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는 한 개인의 주도적 판단과 결정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군 요직에 있는 장성들도 사전에 동참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조사 결과 전 보안사령관 노상원 씨는 지난달 정보사 정 모 대령에게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영상을 요약해 예비역 장성 교육자료를 제작하라는 지시를 받고 실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계엄 이틀 전인 지난 1일에는 전현직 정보사령관인 문상호·노상원 씨가 정보사 소속 김모·정모 대령을 만나 “중앙선관위 전산 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계엄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계엄령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부정선거’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계엄 당일 계엄군 병력이 제일 많이 배치된 곳이 선거관리위원회였던 것이 그 증거다. 대통령과 대통령 주위의 일부 극우 인사들,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그 주변에 가짜뉴스 신봉자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부정선거’의 실체를 파헤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것이 계엄령 발령의 주요 목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가짜뉴스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부정선거’가 계엄령 발령이라는 대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가짜뉴스를 이유 삼아 미국 의회에 난입한 사건과 더불어 가짜뉴스의 폐해는 이렇게 치명적이다.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가짜뉴스는 늘 있었지만, 대부분 특정 세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매스미디어를 통해 유포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대표적 사례가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반정부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민주화 세력이 용공이라는 가짜뉴스를 퍼트려 여론을 호도시키는 것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은 사전에 작성된 시나리오에 따라 매스 미디어를 통제해, 일부 불순 세력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면서 국민들이 이에 동조하지 말고 보는 즉시 신고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영향력 있는 매스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뉴스를 가짜뉴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이를 알았다 하더라도 유통할 적절한 매체가 없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대자보, 지하 유인물, 유언비어 등이 등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민에게 알릴 적절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나중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면 이제 더 이상 가짜뉴스도 유언비어도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가 일상화된 민주주의 시대에 오히려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역설적 사태가 발생했다. 가짜뉴스는 단지 매스미디어의 문제가 아니었고 가짜뉴스의 생산자와 가짜뉴스를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연합하여 만든 일종의 사회구성물이라는 것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 것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인터넷 네트워크다.
![[단독] 직원들 사진 들고 쫓아다녔다‥선관위 침탈 전모 (12월 10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화면 갈무리)](https://cdn.mediaus.co.kr/news/photo/202412/311140_217674_655.jpg)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유통되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 가짜뉴스가 더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미시적으로는 네트워크가 소수 권력에서 다수 시민에게 개방되면서 정보의 절대량이 늘어 팩트체크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매스미디어 시절에는 정보가 제한적이었고 데스크의 게이트 키핑이 유지되었기 때문에 특정 사안에 대한 찬반 의견이 균형 있게 보도되어 어느 정도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어느 사안이라도 일방적 보도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자체 제어 장치가 사라지면서 이제 모든 개인은 자신의 판단하에 정보를 취사선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거시적 이유는 자본과 권력의 무한 증식력이 알고리즘을 통해 사람들을 계속 가짜뉴스에 묶어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튜버들을 포함한 미디어 비즈니스의 주체들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고객들의 시선을 통제할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한다. 콘텐츠의 품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단지 다른 사이트로 발길을 돌리지 않게 하는 것만이 중요해진다. 이전 권위주의 시대와 다른 점은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권력이 중심이 되어 가짜뉴스를 유통했다면 인터넷 네트워크 시대에는 자본이 정치를 이용하여 가짜뉴스를 생성 유통한다는 사실이다. 일단 유통된 가짜뉴스는 일종의 확신범을 생산하면서 자기복제 능력을 갖게 된다.
가짜뉴스는 정치사회적으로 부당하게 소외당했다고 느낀 소수가 그럴듯한 스토리들을 연결해 자극적으로 만든 허구에 불과하지만 의외로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가짜뉴스 생산자를 영웅 취급하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 그를 열렬하게 전도한다. 신도의 비중이 사회에서 용인될 수준에 그친다면 별문제 없지만, 규모가 커지고 권력을 행사할 수준으로 올라가면 국가와 사회는 카오스에 빠지게 된다. 이번 계엄령 사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진짜 뉴스보다 속도도 빠르고 전염성도 강한 가짜뉴스를 일거에 치료할 수 있는 백신은 없다.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처럼 이번 사태를 통해 큰 배움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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