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2024 노벨문학상을 작가 한강이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저녁부터 울리기 시작한 단체대화방의 알림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멈출 줄 몰랐다. 놀람과 기쁨과 환희와 축하의 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감격이다. 너무 대단하다. 이런 날이 오네. 한강 작가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기억이 난다. 울컥했다. 흥분의 도가니이다. 문학계에 경사났다.’ 등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하고 즐거워했다.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읽었던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채식주의자》를 읽는 내내 체기가 있는 것처럼 명치가 불편했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 ‘영혜’가 어느 날 꾼 꿈이 시발점이 되어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꿈에서 시뻘건 핏덩어리와 피웅덩이 등을 보았다고 말하는 영혜는 냉장고에 있던 고기를 모두 버리고 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영혜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고 가족인 아버지는 육식을 거부하는 그녀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을 취한다. 아버지는 영혜가 어렸을 때 개한테 물리자 그 개를 잡아 그녀에게 먹였다. 영혜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더 강화된다.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고집하는 모습은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억압받는 여성의 저항이다. 초판은 2007년에 발행되었지만, 작품에서 보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성과 억압은 2024년의 지금 현실과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가 고스란히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더 강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회는 변화하고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여성은 억압과 폭력의 대상이라는 점이 안타깝다. 이런 시점에서 《채식주의자》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채식주의자》와 함께 언급되는 소설 《소년이 온다》는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이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자주 가는 동네 카페에서 읽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소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이야기인 줄 몰랐다. 우린 모두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알고 있다. 알고 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른다. 나도 그때 그랬다. 그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다른 지역의 뼈아픈 참극으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날 카페에서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휴지 한 통을 모두 써 버렸다. 카페 손님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도대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소년이 온다》는 영혼의 시선에서 시대를 되돌아본다. 동호라는 소년은 군인에게 학살된 영혼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그곳에 있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 힘들고, 아프고, 슬프고, 먹먹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소년이 온다》를 이야기하는 게 힘들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한 작가 한강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정도였을 것이다. 자료를 수집하고, 그 시대에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 괴롭고, 아팠을 것이다. 작가가 사실을 알게 되고 진실에 접근하면서 받았을 충격이 《소년이 온다》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읽는 내내 힘들었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읽겠다는 사람을 보면 말한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 읽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서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유일하게 다닌 학원이 피아노 학원이었다. 피아노 학원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집의 안쪽은 가정집으로 바깥쪽은 칸막이로 나누어 만든 여러 개의 방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형태였다. 선생님은 주부로 나보다 어린 아들이 한 명 있었다. 선생님은 밝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나는 코피를 자주 흘리던 아이였고, 한 번 코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았다. 그날도 코피가 나서 거실에 누워 있었다. 그날 선생님에게 들었다. 어떻게 이야기가 시작됐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이 해 준 이야기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다. 피아노 선생님은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갔는데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군인이 총을 들고 다니며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하다며 말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슬픔, 분노, 아픔이 남아 있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아무도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었다.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5·18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야기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피아노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알고는 있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던 그때의 일을 들었으니까.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뉴스 기사를 찾아보았다. 다들 축하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사 밑에 달린 댓글을 보고 놀랐다. 날조된 역사를 소설로 썼다는 말들. 가슴이 답답해졌다. 경사스럽고, 기쁜 일이다. 그럼 그냥 축하하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김은희 (필명 김담이) ,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또 “5·18 북 개입” 망언
-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출판사 로비에 놀아나" 한강 노벨상 수상 비난
- 강유정 "노벨상 한강,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작가였다"
- '소년이 온다' 한강, 노벨 문학상 수상
- '남편 오보' 수정 요청이 '이혼' 기사로 돌아오는 현실
- 진실을 향한 언론의 자유
- 한강 작가 '계엄' 발언 쏙 뺀 유인촌 ‘K-공감’
- “80년 광주가 2024년 12월 대한민국을 구했다”
- 한강 “파면은 보편적 가치 지키는 일”
- 출판시장 매출 감소 속 영업이익 증가…단행본 '한강 특수' 톡톡
- 실패담 속에서 길어 올린 글쓰기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