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고등법원이 '고발사주' 사건 고발장과 '판박이'로 팩트체크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고발장에 대해 '다르다'고 판단했다. 문제의 두 고발장은 토씨까지 동일하게 작성됐다.
또 서울고법은 검찰의 고발사주가 실제 있었다고 하더라도 공소권 남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을 했다. 국민 누구나 고발할 권리를 갖고, 검사는 기소권을 갖는다는 법리를 적용한 결과다.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조직적으로 고발장을 발주해 고발이 이뤄지는 사건을 수사·기소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고발사주 사건은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인 지난 2020년 4월 3일과 8일,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리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손준성 검사가 김웅 국회의원 후보를 통해 미래통합당에 범여권 정치인들과 '검언유착' '김건희 주가조작' 의혹을 보도한 기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넘겼다는 의혹을 말한다. 당시는 2020년 21대 총선 법정 선거운동기간이었다.
'미래통합당 판박이 고발장'은 2020년 4월 8일 고발사주 사건 고발장과 2020년 8월 미래통합당의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 고발장이 토씨까지 유사하다는 의혹을 말한다.
23일 미디어스가 서울고법 형사 6-3부(이예슬·정재오·최은정 부장판사)의 최강욱 전 의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아들 허위 인턴확인서 발급 관련 허위사실공표 혐의) 유죄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재판부는 "김웅이 조성은(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전달한 고발장 초안 내용과 미래통합당의 실제 고발 내용은 주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라고 했다.
재판부는 "고발장 초안에는 '피고인이 자신의 법률사무소에서 조국 전 장관의 아들을 일하게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턴으로 일하게 하였다'는 부분이 고발 대상으로 특정되어 있다"면서 "반면 구 미래통합당의 실제 고발 내용은 고발대리인(전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의 참고인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발급한 인턴확인서의 진위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부분만 고발을 하는 것이고, 정경심의 아들 조 모씨가 고등학교 때에 피고인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부분까지 고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한 피고인은 2020년 4월 1일자 팟케스트 오디오 생방송에 출연하여 이 사건 발언을 하였고, 위 생방송 동영상이 사후적으로 축소 편집되어 2020년 4월 2일자 유튜브 동영상으로 업로드 되었다"며 "고발장 초안에는 축소 편집된 유튜브 동영상이 발언매체로 특정된 반면, 구 미래통합당의 실제 고발 내용은 최초 방송인 '팟빵 팟캐스트 오디오 방송'을 발언매체로 특정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미래통합당 고발장을 보면 "정경심의 아들 조 모씨가 피고발인의 법무법인에서 인턴활동을 한 사실이 없음에도 허위 인턴서를 작성하였는바, 피고발인의 인터뷰 내용은 허위사실이다. 피고발인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목적으로 방송, 통신 등의 방법으로 국회의원선거 후보자인 피고발인에게 유리하도록 피고발인의 행위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공표했다"고 적시돼 있다.
미래통합당 고발장은 "걔는 고등학교 때부터 (인턴을)했어요"라는 최강욱 전 의원 방송 발언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정경심의 아들 조 모씨가 고등학교 때에 피고인의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인턴을 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부분까지 고발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전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의 참고인 진술과 배치된다.

언론에서 고발사주 사건 고발장과 미래통합당 고발장은 '판박이'로 팩트체크됐다. 2021년 9월 6일~8일 KBS <[단독] ‘고발 사주’ 넉달 뒤 실제 고발장과 판박이>, 한겨레 <“31줄 조사·토씨까지 닮아” 고발 사주 의혹 ‘판박이 고발장’ 보니>, 한겨레 <[단독] 3개의 판박이 ‘최강욱 고발장’…당 공식조직 개입정황 나왔다>, MBC<[단독] 당이 준 고발장 초안도 '판박이'‥이준석 "진상 파악"> 등 복수의 보도를 통해 검증이 이뤄졌다.
KBS는 "'피고발인의 지위 등'이 '피고발인의 지위와 경력'으로 바뀌었지만, 이어지는 항목 대부분이 같은 내용"이라며 "최 의원이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사회자와 묻고 답했다는 내용, 허위사실공표죄를 두고 특정해 인용한 2013년 판례, 그리고 고민정 의원을 거론한 점, 괄호 안에 넣은 일부 표현 등 모두 같다. 단어나 문구를 극히 일부 달리한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KBS는 "두 고발장 모두 최 의원이 출연한 '유튜브 방송을 57만 명이 시청했다'고 했는데, 실제 고발이 이뤄진 시점에서의 조회수는 91만여 명으로, 차이가 있다"며 "고발장 결론 부분 역시, 문구 하나만 빼면 나머지가 완전히 같다"고 했다.
한겨레는 "두 고발장은 31줄에 달하는 범죄사실이 조사와 토씨까지 거의 동일하게 작성됐다. 이어진 38줄에 달하는 관련 판례 부분 역시 보고 쓴 수준으로 유사했다"며 "특히 2013년 대법원 판례, 당시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가 텔레비전 토론에서 최 의원과 유사한 질문을 받고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답변을 회피했던 사례와 비교한 것까지 판박이였다. ‘향후 피고발인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면’이라는 표현이 ‘실제 투표 결과 피고발인은 당선되었습니다’로 차이를 보였을 뿐"이라고 보도했다.
MBC는 미래통합당 법률자문위원이 당무감사실에서 받았다는 고발장 초안과 고발사주 사건 고발장을 비교하고 "고발장의 세부 내용을 비교해보면 최강욱 의원의 틀린 주민번호나 57만 명으로 기재된 유튜브 조회 수, 그리고 인용 판례는 물론, 결론 단락의 문장까지 통째로 보고 베낀 듯 흡사하다"며 "'필요합니다'가 '필요하다'로 '바랍니다'가 '바란다'로 바뀐 정도"라고 보도했다.

'고발사주 있었어도 공소권 남용 아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가사(가령) 손준성이 고발장 초안 작성에 관여하고 김웅, 조성은을 통하여 구 미래통합당에 고발장 초안을 전달함으로써 구 미래통합으로 하여금 고발장 초안에 기초해 이 사건 고발장을 제출하도록 사주했다고 하더라도, 검사가 고발을 근거로 수사를 개시하고 수사를 진행한 다음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공소를 제기한 이상 고발장 제출 경위만을 들어 공소권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의 법적 근거로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34조 제1항),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형사소송법 제246조), '검사는 형법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공소를 제기하지 아니할 수 있다'(형사소송법 제247조)를 제시했다.
서울고법 재판부는 "공소권 남용에 해당하려면, 손준성이 실질적으로 수사개시 및 기소 결정을 하고, 담당 주임검사는 손준성의 지시에 따라 형식적으로 수사권 및 공소권을 행사해 피고인에게 실질적 불이익을 줌으로써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판결대로라면 검찰이 사건을 특정해 고발장을 만들어 발주하고, 이후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와 기소가 진행되더라도 구체적인 지시·이행 관계가 증빙되지 않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최강욱 전 의원 변호인은 검찰총장의 지휘·감독을 받는 손준성 검사가 실질적으로 수사개시·기소 결정을 했기 때문에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수사개시와 기소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법 재판부는 '검사동일체 원칙'이 2004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폐지됐다며 최강욱 전 의원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발사주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2020년 2월 대검은 스스로 '검사동일체 원칙은 살아있다'고 강변했다. 당시 대검은 '검사동일체 원칙이 폐지됐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주장에 대해 "검사동일체 원칙이 법전에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원칙임은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2020년 1월 31일 윤석열 검찰총장은 상반기 검사 전출식에서 "검사는 검사동일체원칙에 입각해서 운영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책무는 바뀌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최강욱 전 의원 허위사실공표 사건 2심 재판부는 손준성 검사 고발사주 사건 2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 6-1부, 정재오·최은정·이예슬 부장판사)와 동일하다. 최강욱 전 의원 2심 재판은 지난 2022년 6월 고발사주 사건에 대한 사실관계가 규명될 때까지 심리를 중단하기로 결정됐다가 지난 4월 재개됐다. 최강욱 전 의원은 고발사주에 의한 표적·편파 기소가 이뤄졌다며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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