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윤석열 대통령은 갑자기 현실을 깨달았다는 듯한 태도이다. 며칠간 말을 줄이던 대통령실이 연일 반성을 말하고 민생을 말하는 걸 보면 그렇다.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이 실제로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 정도 격차로 질 줄 전혀 몰랐다는 얘긴데, 이해할 수 없다. 대개 사람들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일반 국민보다 더 많은 정보를 쥐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갖 수단을 쥐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도 여의도 관계자는 물론 대다수 언론이 예상했던 일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둘 중 하나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았거나, 간신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했거나.

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의 메시지는 마치 후자를 가리키는 듯하다. 대통령은 여당과 정부 관계자들을 이런저런 자리에 모아 놓고 민생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했다. 중동 순방을 떠나면서도 그렇게 강조했다. “내가 듣겠다”는 게 아니라 “너희들이 들으라”는 건 언뜻 ‘유체이탈 화법’처럼 들리는데, 이게 이해가 가능한 거의 유일한 방식은 “듣고 나에게 전해달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고 전제하는 거다. 다시 강조하는데 이것은 선거 패배와 관련한 메시지다. 즉, 선거 지고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너희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전해주지 않은 탓에 이렇게 됐다”고 하는 것처럼 들린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가 2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가 21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하며 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그렇다면 대통령은 신문도 안 읽고 방송도 안 보는가? 대통령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그동안 언론의 숱한 지적은 뭐가 되는가? 직접 보지 않더라도 참모가 정리한 자료는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일을 하는 참모가 없다면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고, 그런 일을 하는 참모가 언론의 비판을 일부러 보고 자료에서 누락했다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니 인사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이유가 뭐가 됐든 참모들이 민생을 살피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대통령실의 대대적 인사 개편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총선 준비한다는 얘기 외에 나오는 얘기는 없다. 선거 후폭풍을 직접 감당해야 하는 여당만 인사니 혁신위니 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윤심 전당대회’를 주도해 여당을 지금의 이 상태로 만든 용산 권력은 책임의 범주에서 발을 쏙 빼고 있다.

‘윤심 전당대회’를 참모들이 주도했는가? 김태우 후보의 출마를 가능케 한 사면을 참모들이 하자고 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보면 선거 패배는 참모들이 민생을 소홀히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대통령의 오기와 고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은 책임인 것이다. 그러니 남에게 민생을 챙기라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시킬 때가 아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그렇잖아도 유권자는 궁금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대통령이 그간 해온 말들은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말인가? 대통령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지적을 ‘공산전체주의’ 등 불순세력의 흔들기 정도로 폄훼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념”이라고 말하게 된 원본에 해당하는 생각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게 궁금한 이유는 대통령과 여당이 말하는 반성과 혁신이 그러한 것에서 결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꾸 현장으로 가서 목소리를 들으라는데, 현장이 어디 멀리에 있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그간 등한시하던 것들을 하면 된다. 사회적 소외 계층을 만나고, 여러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고, 야당의 대표를 만나고, 외국이 아닌 국내 언론을 만나 그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면 된다.

선거 결과를 두고 대통령이 “국민은 무조건 옳다”라고까지 했다면, 이러한 일은 당연히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당 분위기를 보면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이준석, 유승민 같은 자기네 당 소속 사람들도 포용을 못하는데 무슨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는가.

선거 직후 인사로 실망을 자초한 여당은 혁신위원장 카드로 반전을 도모하려는 분위기다. 하지만 혁신위원장에 과도한 권한이 쏠리면 지도부가 곤란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김기현 대표가 정치권 밖 인사를 고집하면서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조선일보가 이러한 일을 사설로 비판할 정도였다. 이런 가운데 23일 실제 외부인사인 인요한 교수가 혁신위원장 내정자로 발표되었다. 인요한 교수는 훌륭한 인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뭘 기대할 수 있을까? 백약이 무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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