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카르텔'로 지목한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 이종호)가 국정감사에서 여야 모두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자료제출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윤 대통령 발언 전 편성한 R&D 예산안을 제출하지도, '카르텔'로 지목된 R&D 사업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우수한 평가를 받은 재난대응·기후위기 R&D 사업 예산이 대폭 삭감된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11일 세종시 과기정통부 청사에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2024년 주요 R&D 예산 배분 조정안' 제출을 요구했다.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지난 6월 국가 R&D 사업 예산 배분 조정안을 마련했다. 해당 조정안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6월 30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돼야 했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카르텔' 발언이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조정안 재검토에 착수해 8월이 돼서야 신규안을 발표했다. 국가 R&D 예산의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과기정통부가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작성한 조정안 초안이 필요하다는 게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이다.
국민의힘 소속 장제원 과방위원장은 "장관이 답변해달라. (야당)의원들이 말했던 정부 원안, 그것에 대한 자료제출이 전혀 안 된 것인가"라고 물었다. 하지만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금 의원들이 자료요청한 건수가 7천여 건이 되는 상황이다. 그것을 다 맞춰서 (제출)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동문서답식 대답을 내놓았다.
장제원 위원장은 "아니, 7천개 말고 과기정통부에서 만든 R&D 예산 초안을 말하는 것"이라며 "의원들이 얘기한 예산안, 그게 제출 안 됐나"라고 물었다. 이에 이종호 장관은 "주요한 부분은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장제원 위원장이 거듭 "아니, 지금 야당 의원들이 말하는 그것을 원하는 만큼 제출이 안 되는 이유를 말해보라"고 묻자 이종호 장관은 비로소 "그런 자료는 저희가 기재부와 협의하는 내부 검토자료로, 이전에 그런 걸 제출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또 장제원 위원장은 "야당 의원들이 원하는 수준을 과기정통부가 인지는 하고 있나. 제출을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이종호 장관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게 뭐 조사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자료를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리는 부분도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국정감사 이전부터 해당자료의 제출을 과기정통부에 요청했다.
과방위 민주당 간사 조승래 의원은 "과기정통부가 작년 가을부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심사를 거쳐 회의에 올리려 했던 최종안이 정리된 게 있다. 그 안과 부속서류를 달라는 것"이라며 "과기정통부가 현장에 있는 분들과 몇 개월 간 논의를 거쳐 검증하고 검토한 최종안인데, 최종 심의·의결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카르텔 얘기하면서 이 사달이 벌어진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또 조승래 의원은 "그 안과 8월 통과된 안을 비교했을 때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인지 비교할 수 있을 것 아닌가"라며 "다 알고 있으면서 이상한 말을 하냐"고 질타했다.
장제원 위원장은 출연연 예산 내역, 글로벌 협력 R&D 예산 내역 등 민주당이 제출을 요구한 자료는 어차피 향후 국회 예산심의 국면에서 다뤄져야 한다며 과기정통부에 제출을 요구했다. 이어 장제원 위원장은 "제가 좀 자료제출 요구를 하겠다"며 "제가 관련협회나 단체가 수요조사를 기획하고, 그 단체에서 기획을 한 사람이 과제를 수행한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OO부 A협회', 'OO부 공동연구기관', 'OO부 B기술원' 등으로 왔다"며 "이거 왜 못 밝히나"라고 따졌다.
장제원 위원장은 "기업보조금 R&D 관련해 'OO부 작은기업', 'OO부 기술력이 낮은 기업', 이게 자료인가. 누가 이 자료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가"라며 "이런 기업이나 협회를 밝혀야 그 카르텔이 파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제원 위원장은 유사주제로 여러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는 D사, R&D 지원금으로 친족끼리 부당한 내부거래를 한 OO사 등을 거론하며 "OO 이거 다 전부 채워달라. 알겠나"라고 주문했다.

이종호 장관은 삭감된 R&D 예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은 과기정통부가 지난해 10월 작성한 'R&D 투자 우선순위 의견'을 바탕으로 재난·기후위기 관련 R&D 사업 예산 삭감 문제를 제기했다.
고민정 의원은 "(최고등급)S등급이더라도 감액되는 사례가 있었다. 22년에는 14%, 23년도에는 16% 감액됐다"며 "그러나 24년도에는 37%나 S등급을 삭감했다. 왜인가"라고 물었다. 이종호 장관은 "내부에서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다"고 답했다.
이에 고민정 의원은 "뭘 삭감했느냐. 지진·해일과 같은 해저재해 발생예측, 조기경보 시스템 시범 구축 예산은 무려 80%나 삭감했다"며 "갈수록 지진발생은 늘어나는데 이건 왜 삭감한 건가"라고 물었다. 이종호 장관은 "그 부분은 미처 살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고민정 의원은 "무려 80% 삭감이 됐고 S등급인데 장관이 파악도 못하고 있나.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 토대 마련하는 차원의 해양육상대기 탄소순환시스템 R&D 사업을 33% 삭감했다"면서 "A등급은 말할 것도 없다. 미세먼지저감기술 같은 것도 70%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이종호 장관은 "정밀하게 검토했고, 실질적으로 효과가 없는 부분이 굉장히 있다"며 "사회재난 관련해서도 핵심적인 부분, 민생·공공의 안전에 관한 부분은 유지를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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