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조선일보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등을 거론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이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일종의 물타기로 방통위원장·권익위원장의 경우,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임기를 법률로 보장받는다는 점을 간과한 셈이다.
조선일보는 9일 기사 <한상혁·전현희·홍장표…文정부 기관장 69%, 임기 1년 넘게 남았다>에서 공공기관 370곳 중 기관장 임기가 1년 이상 남아있는 곳이 256곳에 달한다며 "새 정부가 올 연말까지 임명할 수 있는 공공기관장이 전체의 14.3%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문제는 이들 공공기관장 가운데 상당수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철학과 대척점에 서있다는 점"이라며 한상혁 방통위원장, 전현희 권익위원장, 홍현익 국립외교원장,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 등을 거론했다.

조선일보는 "과거에는 정권이 바뀌면 기관장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문화가 있었지만, 블랙리스트 이후로는 자진 사퇴를 거론하는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는 한 중앙부처 공무원의 발언을 전하면서 "이번 정부 들어 김용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등이 사의를 표명했지만 그 외의 공공기관장들 사이에서는 ‘버티기 기류’가 감지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에 대해 민주언론시민연합 이력을 거론하며 '정치 편향성'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한 위원장이 공동대표로 취임한 이후 민언련이 문재인 정부 탈원전 비판 기사 등을 '나쁜 보도'로 선정하고, 친정부·좌파 성향 매체를 '좋은 보도'로 선정했다는 근거를 달았다. 전현희 위원장에 대해서는 '정권권익위'라는 국민의힘 비판을 전하며 '공정성'을 문제삼았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이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의 명단을 파악했고, 여권 일각에서는 "기관장 임기를 '3년'으로 못 박을 것이 아니라 '3년 이내'로 고쳐야 한다"는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3년이다.
조선일보는 "새 정부는 우선 기관장 임명이 이뤄지지 않은 곳부터 인선하면서 그 외의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엄정한 경영평가 등을 시행한다는 계획"이라며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영실적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기관장에 대해서는 해임을 건의할 수가 있다. 앞서 감사원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성과가 미흡한 기관에 대해 평가와 감독을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조선일보의 논조와 잣대가 달라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019년 2월 21일 조선일보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현행법상 공공기관 임원의 임기는 2~3년으로 보장돼 있는데, 정치적 이유에서 중도 사퇴시키는 것은 위법성 소지가 크다"고 보도했다.
2019년 서울동부지법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했을 때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청와대가 낙하산을 내리꽂는 것은 '관행'이어서 고의(故意)나 위법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을 것이라는 기각 사유 역시 법이 아니라 정치"라며 "공공기관 임원 임기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고 임원을 공모할 때는 적법 절차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2월 18일 사설 <사실로 드러난 환경부 블랙리스트, 다른 부처도 다 밝혀질 것>에서는 "검찰 수사에서 환경부가 전(前) 정권 시절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들을 쫓아내려고 표적 감사를 했음을 보여주는 문건들이 나왔다고 한다"며 "블랙리스트 문제로 많은 사람이 감옥에 가 있다. 현 정권 책임자들도 당연히 감옥에 가야 한다. 다음 정권 때가 아니라 지금 감옥에 가야 법이고 정의"라고 했다.
이 밖에 조선일보는 <남이 하면 '블랙리스트' 내가 하면 '체크리스트'>(2019.02.21), <靑 낙하산에 면접 답안지 미리 보여준 환경부, 채용 사기와 같다>(2019.02.28), <검찰이 헛손질한 '靑 블랙리스트', 특검 세워 전모 밝혀야>(2019.04.27), <자신들은 '블랙리스트' 아닌 '체크리스트'라더니 징역형>(2021.02.10), <38개월 뭉갠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文 검찰의 범죄행위>(2022.03.29) 등의 사설을 통해 공공기관장 임기 보장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 조선일보의 논조는 달랐다. 2008년 3월 6일 조선일보는 사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는 사람들>에서 "정권 교체란 사람의 교체이다. (중략)그것이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결정한 국민의 뜻"이라며 "그런데도 노무현 정권 때의 일부 인사들은 자유민주국가의 이런 당연한 이치를 배우지 않은 모양"이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전임 대통령에게 정치적 하수인으로 기용돼 국민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권력자에게만 봉사했던 이들이 새삼스레 기관의 독립성을 들먹이고 임기를 거론하는 일은 참으로 몰염치한 짓"이라고 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언론정책의 경우 전 대통령은 미운 놈 꿀밤 주고 이쁜 놈 떡 하나 더 주는 작전을 밀고가기 위해 새로운 기구를 만들어 국민 세금으로 특정 신문들의 판매까지 도왔다"면서 "공중파를 전리품인 양 움켜쥐고 권력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이들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공직의 진퇴(進退)가 불분명한 이들은 재임 중에도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 청와대는 "전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의 사퇴가 여의치 않을 경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이전 정권 기관장들은 정부 업무보고에 참석하지 말라" 등의 발언을 해 언론에 보도됐다.
2008년 7월 국회 공기업특위에서 강만수 기재부장관은 '이명박 정부가 공기업 사장들에게 일괄사표를 종용했냐'는 질문에 "정치적 재신임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배국환 기재부 2차관은 '기재부 공무원이 전화를 걸어 사표제출을 요구했냐'는 질문에 "공공기관 운영위원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임명권자가 바뀌었는데 재신임 절차를 밟겠느냐고 물은 적 있다"고 답했다.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산하 단체장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퇴진을 요구했다. 유 장관은 "끝까지 자리에 연연해 한다면 재임 기간 어떤 문제를 야기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013년 5월 박근혜 정부 고위관계자는 머니투데이에 "국책은행 등을 포함해 주요 공기업 사장들로부터 사표를 제출받을 예정"이라며 "시점은 박 대통령이 미국 순방에서 돌아온 이후가 될 것이고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통위원장은 방통위설치법에 따라 3년 임기가 보장된다. 독임제 부처의 장관과는 달리 언론기관인 방송을 규제하는 합의제 기구의 장으로서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임기를 보장할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권익위원장은 '직무상 독립과 신분보장'을 규정한 부패방지권익위법상 3년 임기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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