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사고가 발생했고 만 19살이었던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지금 구의역 내선 9-4 고정문의 ‘너의 잘못이 아니야’라는 문구는 청년의 죽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공구 가방에 고스란히 남은 컵라면을 두고 청년의 어머니는 “차라리 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라며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 이후 1년이 지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작업현장에서 다쳤거나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

지난 5월 1일 이날은 노동절로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로 지정되어 있지만,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작업도중 크레인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하청노동자 6명이 사망하였다.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게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이 지난 4월 정의당 노회찬 의원 등을 중심으로 발의되었지만, 이 법안이 제정되고 시행되기 전까지 많은 노동자들은 위험한 작업현장에서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1주기를 맞아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을 찾아 강변역 방면 9-4 승강장 스크린 도어 옆에 추모 메시지들이 부착돼 있다. Ⓒ연합뉴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5월 12일, 경상북도 군위에 있는 양돈장에서 정화조 청소하는 일을 하던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두 명이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당일 오전에 양돈장에서 축사의 돼지를 이송하는 작업을 했고, 사업주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이송 후 돼지의 분뇨가 쌓여있는 정화조를 청소할 것을 지시했다. 분뇨정화조의 경우 원래 기계와 호스를 동원하여 분뇨를 흡입 및 제거해야하는데 사건 당일 기계가 고장이 나 이주노동자들에게 수작업을 하도록 지시한 것이다. 심지어 아주 기초적인 장비인 마스크 등 안전보호도구가 지급되지 않았고 결국 이주노동자 두 명이 작업도중 황화수소로 추정되는 유독가스에 질식하여 사망한 것이다.

실제로 현장을 방문한 지역 활동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겨운 냄새로 인하여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경찰 조사과정에서 사장은 네팔이주노동자에게 마스크를 착용했다고 거짓진술을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망사고가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돼지의 생존을 위해 이주노동자들은 일을 계속 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구지방노동청에서는 자체적인 현장조사를 마친 이후, 양돈장에서 밀폐공간 작업시 준수사항 및 안전교육 미준수 등 19개 산업안전법을 위반했음을 확인하였고 이에 따라 사업주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을 계획하고 있다. 한편 대구경북지역 이주단체들로 이루어진 대경이주연대회의에서는 대책회의를 열고 노동청 관계자 면담 추진 및 유가족 초청, 장례절차, 보상 문제 등에 관해 논의를 하고 있다. 이후 유가족이 귀국하는 대로 장례식 등을 진행하고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안전과 관련된 제반조치, 농업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재발방지대책까지를 요구할 예정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이 비단 이 양돈장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제의 양돈장이 속해있는 대구경북지역의 이주노동자 중 27.9%가 산업재해 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37.9%가 본인이 알아서 치료비를 부담했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절반 가까이는 일하다가 다치면 산재를 인정받고 무료로 치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돼지농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월 여수화재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기고했던 [제2의 여수화재참사 막기 위해 기억해야 할 것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30여 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단속과정뿐만이 아니라 산업재해 등 작업현장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은 한해 평균 1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 자살, 교통사고,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사망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는 더욱 많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법무부, 노동부 등 어느 정부부처에서도 이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실태조사나 통계조차 없는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번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이주노동자들은 각각 92년생, 93년생이었고 작년에 구의역에서 사망한 청년노동자는 불과 97년생이었다. 언제까지 젊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꿈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땀 흘리며 일하던 작업현장에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어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더불어 하루 빨리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하여 노동자들의 산재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작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직후 열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원인규명과 대책촉구 기자회견, 세 번째 하청노동자 사망, 더 이상 죽이지 마라>에서 유가족 어머님이 절절하게 호소했던 영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많은 죽음들이 그렇듯 그 당시에는 충격과 슬픔으로 다가오다가도 어느새 일상 속에서 잊고 살다가 이렇게 문득 다시 떠오르곤 한다. 더 이상 죽음이 없는 안전한 노동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한 발짝 더 나가는 것이야말로 구의역 1주기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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