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버스커 버스커의 그 유명한 ‘여수 밤바다’라는 노래의 일부분이다. 여수를 떠올리면 대부분 이 유행가를 흥얼거리거나 여수엑스포, 여수 향일암, 여수돌산 갓김치 등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지로만 기억을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7년 2월 11일,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가 발생하였다. 이중으로 된 쇠창살 안에 갇혀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쳤지만 외국인보호소 직원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이 뒤늦게 구출에 나섰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후였다. 그렇게 10명의 이주노동자가 불에 타거나 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고 17명이 중상을 당했다. 그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아가고 있다.

2017년 2월 10일,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정문 앞에 조촐한 분향소가 차려졌다. 10년 전 억울하게 사망한 이주노동자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당시 활동했던 공동대책위 동지들과 각 지역의 이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식 및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한 시간 가량의 기자회견을 마친 후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장의 안내를 받아서 10년 전 화재참사가 일어난 현장에 직접 들어가게 되었다. 현장으로 올라가는 순간에도 곳곳에 보이는 쇠창살과 보안장치, 멀찍이 보호소 안에서 우리를 애처롭게 쳐다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눈빛에서 이곳은 외국인 “보호”시설이 아닌 “구금”시설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2017년 2월 10일 진행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 기자회견>

화재가 발생한 3층에 도착하니 널찍한 공간에 도서관과 행사시설로 사용하는 강당이 있었다. 이곳이 화재 참사가 발생해서 10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현장이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공기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강당 내를 둘러보다가 이곳에서 10년 전 화재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어떠한 표지판이나 기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현장에서 추도식을 마친 이후 여수출입국관리소장에게 이 공간에서 화재참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릴 수 있는 내용을 부착해 달라고 요구했고 빠른 시일 안에 조치를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후에는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의무실과 운동장 등을 방문하였다. 시설은 깔끔해 보였지만 이 넓은 시설에서 1명의 의사와 2명의 간호사가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가 있을지, 운동장은 얼마나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한편 보호소 안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그 누구도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았는데, 혹여 안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생겨서 인권위 등에 진정을 넣더라도 어떤 직원이 인권침해를 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시간 관계상 모든 시설을 다 둘러보진 못하고 보호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함께 기자회견을 했던 지역 활동가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향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눴다. 각 지역마다 있는 주요한 보호소와 출입국관리사무소 내 보호시설에 주기적인 방문과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미 아시아의 친구들(http://www.foa2002.or.kr/)에서는 경기도 화성보호소는 격주로 방문하고 있는 중이었다. 청주와 여수 보호소도 지역에 있는 단체들과 협의를 해서 여수참사 10주기를 기점으로 너르게라도 네트워크를 구성해보면 어떠한지에 대한 의견이 오고갔다.

바로 그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 신속 탄핵을 위한 15차 범국민 행동의 날이 열린 광화문 광장에서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가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여수참사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알리는 유인물도 1000부 가량을 배포하였다. 특히 당일 촛불집회 사전대회에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이 직접 무대에 올라서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지 생생한 현실을 발언하자 많은 박수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할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인간 사냥하듯 무조건적으로 강제단속하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폭력은 멈추지 않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3년 이후 지금까지 30여명 이상의 이주노동자가 단속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중에 몇 가지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2004년

11월 부천에서 나이지리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출입국단속반이 쏜 ‘마취총’에 맞아 기절한 채 연행

2005년
10월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4층에서 중국 여성노동자 떨어져 사망

2006년
2월 수원출입국관리사무소 6층에서 터키노동자 코스쿤 셀림 떨어져 사망
4월 부천에서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던 인도네시아 노동자 누르 푸아트씨 추락사
5월 중국동포 장풍 씨 창원의 한 공장에서 단속 피하려다 2층에서 떨어져 뇌사

2007년
1월 전남 해남에서 중국노동자 여풍산 씨(32)가 단속반을 피해 도망치다 심장마비로 사망
2월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일어난 화재로 10명의 이주노동자 사망 (여수화재참사)
11월 발안의 외국인교회에 출입국단속반 난입하여 이주노동자 2명 중상입음

2008년
1월 중국인노동자 권씨가 단속과정 중 8층 높이에서 추락사
4월 남양주 단속과정 중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3층에서 추락
8월 부산에서 중국 노동자 작홍근씨 단속중 추락하여 중상
11월 마석 성생가구공단과 연천 청상농장 출입국 경찰 합동단속으로 130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연행당하고 수십여 명의 이주노동자 부상을 입음

2010년
10월 서울 가산동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 T씨가 출입국 단속과정에서 추락사

2011년
11월 김포시에서 단속과정 중 중국인 노동자 H씨 심장마비로 사망

2012년
3월 동해시에서 단속과정 중 중국인 노동자 허씨 단속을 피해 바다에 뛰어들어 사망
11월 부산 기장군에서 단속과정 중 옹벽에서 추락한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중상을 입은 후 사망

2013년
10월 29일 대구출입국이 구미의 한 업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16명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여성 이주노동자 한 명이 실명, 골절상 등을 입음

2016년
3월 경북 경주시 내남면 A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던 중국 미등록 여성 이주노동자가, 합동단속반을 피하다 높이 5m 담벼락에서 떨어져 발목뼈가 부러져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음

바로 며칠 전인 2월 14일, 경남 김해 한림면의 한 공단식당에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점심 식사 중이던 이주노동자들이 채 음식을 다 먹기도 전에 무조건적으로 연행해가는 모습에 놀란 한국인 노동자들이 밥이라도 먹게 해달라고 했지만 출입국 직원은 묵묵부답이었다. 직원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라는 요구에도 제대로 답변을 하지 않고 정 궁금하면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정보공개청구를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식당 주인은 사전에 동의도 받지 않고 막무가내로 들이닥친 출입국직원들을 보다 못해, 밀어내면서 쫓아내기에 이른다.

10년 전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출입국직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도망칠 것을 우려하여 보호소 철문을 열지 않아서 10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여수참사에서 용산 철거민들의 억울한 죽음과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참사가 재현되는 것은 우연이었을까? 여수참사 10주기를 맞이하여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안전해지고 있는 것인지, 그 안전은 누구의 안전인지, 국가공권력은 어떠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 진지하게 곱씹어보았으면 한다.

박진우_ 2012년부터 이주노동조합의 상근자로 일을 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어서 언젠가는 이주아동 대안학교 선생님을 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을 한 지 5년이 되어가지만 부족한 외국어실력 탓인지 가능한 한국어로만 상담을 하고 있다.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에 다음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무엇을 하더라도 스스로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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