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의 여왕> 마지막 회를 보고 시청자들은 허무했을지도 모른다. 첫 회부터 집요하게 추격하던 하완승의 첫사랑 현수 살해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가 싶더니 결국 밝혀진 살인범과 사주범 뒤에, 거대한 또 다른 사건의 그림자가 드러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전력질주해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겨우 한 정류장에 도달했다는 '사인'을 받고 망연자실했을지도 모른다.

모호한 엔딩? 아니 시즌 2를 향한 원대한 떡밥

KBS 2TV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하지만 '미드(미국 드라마)'나 '영드(영국 드라마)'를 다수 시청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엔딩 방식에 익숙할 듯하다. 극 초반 시작되었던 사건, 하지만 정작 눈앞의 사건을 해결하고 보니 그 사건은 진짜 거대한 음모의 시작에 불과했다, 뭐 이런 식 말이다. <셜록> 등의 시리즈에서 낯익게 등장했던 이 구조는 나선형으로 시리즈를 거듭하며 진범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다. <멘탈리스트>와 같은 드라마는 '레드 존'이라는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무려 시즌6을 달렸다.

결국 <추리의 여왕>이 단 한 차례 16부작 드라마라면 이런 식의 엔딩이 허무하다 못해 시청자에게 모욕을 준 셈이지만, 그게 아니라 시즌제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면 '큰 그림'을 향한 영리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마지막에 선글라스까지 장착한 현수와 '그림자'의 조우라니! 이보다 더한 시즌 2의 떡밥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추리의 여왕>이 던진 모호한 엔딩, 그리고 다음 시즌을 향한 여운만으로 이 드라마의 시즌제를 기대하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추리의 여왕>이 지난 16부작 동안 보여준 연출, 연기, 그를 통해 구현된 캐릭터들과 서사들이 16부작 한 차례로 마무리 짓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기 때문이다.

2009년 종영된 <몽크> 시리즈가 있다. 자동차 사고로 아내를 잃은 후 후유증으로 강박증을 겪는 탐정 몽크(토니 샬호브 분)와 그의 전직 동료 형사들, 그리고 몽크의 비서로 채용되지만 거의 동반자적 역할을 하는 나탈리(트레일러 하워드 분) 등에 의해 '해프닝'으로 시작하여, 강력 사건 해결로 마무리되는 <몽크>는 탐정물이지만 한편의 소동극처럼 진행된다.

오래 함께하고 싶은 캐릭터들, 그리고 그 분위기

KBS 2TV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추리의 여왕>을 보면 그 시절 <몽크>가 떠오른다. 요리에는 젬병이지만, 사건만 일어나면 궁금증을 참지 못해 프라이팬이 타는 줄도 모르고 뛰쳐나가는 아줌마 탐정 유설옥(최강희 분). 그녀를 아줌마라 무시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그녀의 공간에 오면 촉이 좋아진다며 그녀의 주위를 맴도는, 그리고 그 누구보다 그녀를 믿어주고 그녀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달려가는 하완승(권상우 분). 이들이 빚어내는 불협화음의 하모니는 유쾌하고 따스한 콤비 플레이어다.

돌땡이라 부르지만 자신을 믿어주는 그를 의지하고, 아줌마라 부르지만 그 누구보다 그녀의 의견을 따라주는 이 언밸런스한 조합은 강박증 탐정과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피는 비서 겸 '왓슨 뺨치는' 조력자 나탈리 못지않은 명조합인 것이다. 아줌마와 형사, '사랑'이 개입되기 힘든 이 조합은 16부 동안 그 어떤 사랑의 주인공들보다 설레게 하며 시청자들을 이끌었다. 특히나 그간 우리 드라마들에서 복수의 역동성을 끌고 가는 캐릭터나 성공담의 주인공으로서의 여성 캐릭터의 존재 외에, 남성에 의해 그 존재감이 증명되지 않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줌마 탐정 유설옥의 존재는 그저 16부로 퉁 치기엔 너무도 아까운 캐릭터다.

그렇게 캐릭터 자체로도 시즌제를 바라게 되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기대가 되는 건 모처럼 자신들에게 맞는 옷을 입은 최강희와 권상우이다. 어느덧 중견 연기자가 된 두 사람. 하지만 최강희의 전작 <화려한 유혹(2015)> 신은수 역은 연기 변신이었지만 끝까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고, <메디컬 탑팀(2013)>의 권상우는 그의 단점을 더 부각시켰을 뿐이었다. 그러던 두 사람에게 찾아온 유설옥과 하완승, 그 두 캐릭터는 모두 그간 최강희가 해오던 그 통통 튀는 귀여움과 권상우의 허허실실한 자연스러움을 연장시킨 캐릭터다. 그런데 그 잘하는 캐릭터를 다시 하는 두 사람에게는 이전에 보지 못한 안정감과 자연스러움이 보강된다. 그건 아마도 각자가 아니라, 권상우와 최강희가 '합체'된 시너지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건 주인공들만이 아니다. 빈번한 등장에도 불구하고 늘 아쉬웠던 이원근의 매력이 모처럼 빛을 발한 것도 '홍소장'의 캐릭터였고, 신현빈 역시 같은 케이스다. 하완승+우경감 조합의 활약이 아쉬울 정도로 박병은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다. 특히 배방서에서 밀려난 완승 등이 배방 2동의 마트와 도시락 가게를 거점으로 수사를 펼쳐나가며 동네 주민들과 협업하여 범인을 잡는 수사 방식은 발군이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그렇듯 파출소 직원, 동네 주민 한명 한명, 등장했던 인물군 모두가 '기억되는 캐릭터'로 남긴 <추리의 여왕>은 그래서 마지막 회 배방 2동을 부감하는 장면에서 오랫동안 정든 곳을 떠나는 아쉬움이 느껴지듯 그런 '인간미'를 살려낸다. 그저 주인공만이 독주하고, 그 주변 인물들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장식으로 작동하던 미니 시리즈와 달리, 마치 주말 가족드라마처럼 등장한 그 누구라도 존재감을 드러냈던 배방 2동 '어벤져스' 수사팀의 활약이 계속 보고 싶은 것이다.

캐릭터만이 아니다, <추리의 여왕>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때론 ‘이게 드라마야 영화야’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인상 깊었던 연출이다. 한창 꽃이 피는 배방 2동을 배경으로 그 꽃 속에서 설왕설래하는 두 주인공을 비롯하여, 그들은 물론 주변인물들이 출몰하는 곳은 그곳이 갯벌이든 시체가 던져진 개울이든 그 어느 곳이든 '예술'적 성취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추리하는 '어두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배방 2동과 도시락집, 설옥이네 집 등의 '동네의 아기자기함과 따스한 정서'가 조합되어, <추리의 여왕>만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셜록> 등의 명드를 떠올리면 주인공 못지않게 그 드라마의 그 분위기가 기억되듯, <추리의 여왕>에는 바로 그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라 할 만한 정서가 정립되었다.

물론 많은 장점만이 있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빠른 사건 전개가 아니면 채널이 바로 돌아가는 상황에서 등장하는 캐릭터, 배경과 분위기까지 챙겨가며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가는 <추리의 여왕>의 가장 큰 단점은 수사물이라기에 늘어지는 진행 속도였다. 물론 애시청자들은 그 조차도 <추리의 여왕>만의 매력이라고 하지만, 그 '느린' 속도는 8% 내외의 시청률이라는 결과로 시즌제의 발목을 잡고 만다. 물론 <추리의 여왕>의 낮은 시청률을 꼭 전개 방식의 문제라 볼 수는 없다. 연애 이야기가 아닌 아줌마 탐정이라는 생소한 캐릭터의 활약상은 중장년층이 채널 주도층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없는 약점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웰메이드'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추리의 여왕>을,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는(?) 새 시대의 공영방송 덕택에 다음 시즌에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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