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후보 청문회를 방불케 했던 지난 티비토론은 보수 후보들의 전형적인 안보몰이, 종북몰이가 막 불이 붙은 상태로 종료되었다. 때문에 본래 이번 토론은 좀 더 본격적으로 색깔론이 거세질 것이었으나 호남에 기반을 둔 채, 유승민 후보의 주적 논란에 가세했던 안철수 후보가 역풍의 조짐에 슬쩍 한 발을 뺐고, 당시 토론 후에 언론의 팩트체크를 통해 국방부에서도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보도로 인해 유승민 후보의 북풍몰이는 사실상 힘을 잃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유승민 후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홍준표 후보와 보수의 선명성 경쟁을 벌여야 하는 그로서는 여전히 문재인 후보를 향해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을 근거로 종북몰이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사실 힘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미 민주당에서 반박 자료를 내놓았고, 송민순 전 장관의 주장에 빈틈이 많이 노출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모를 리 없는 유승민 후보가 끝까지 문재인 후보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는 친구들과 강간모의를 했다는 홍준표 후보의 자격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문재인 후보를 공격함으로 해서 유일한 보수 후보라는 위치에 서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였다. 절박했겠지만 그만한 효과를 거뒀는지는 사실 의문이다. 또한 차기정부에 바라는 대북정책에 대해서 거의 70% 가량의 국민이 평화를 원한다는 점에서 유승민 후보의 색깔론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략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그간 쌓은 합리적 보수라는 인상까지 잃은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제3차 대선후보 TV토론회 방송 화면 갈무리

그렇지만 유승민 후보가 잃은 이미지 정도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야 한다. 어쩌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바로 안철수 후보 때문이다. 이번 토론 중 안철수 후보에게서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던진 질문 때문인데, 안 후보는 문 후보에게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라고 물었고, 이어 또 “제가 mb아바타입니까?”라고 물었다.

다짜고짜 물어오는 안 후보의 질문에 문 후보는 잠시 사태 파악을 하는 것 같더니 이내 안철수 후보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맞대응을 했다. “항간에 그런 말도 있죠”라고 응대했다. 그러더니 “아니면 아니라고 본인이 해명하십시오.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십시오, 저 문재인을 반대하기 위해 정치하십니까?”라고 되물었고, 뭔가 석연찮은 표정의 안철수 후보는 “제가 mb아바타가 아니라고 확인해주시는 거죠?”라고 다시 질문을 했고, 문재인 후보는 크게 웃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시청자들은 갑철수와 mb아바타에 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안철수 후보는 알았을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적극적으로 코끼리를 연상하게 되는 인간의 인지 습성을 간과한 안철수 후보의 괜한 말이었고, 스스로 그 두 단어의 함정에 빠지고 만 것이다. 또한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너무도 큰 덤이었다.

제3차 대선후보 TV토론회 방송 화면 갈무리

본래 안철수 후보의 의도는 문재인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방에 대한 공격을 하고자 했던 것이라 이해가 되지만 결과는 의도와 달랐다. 스텝이 꼬인 공격으로 셀프 네거티브가 되고 말았다. 누굴 탓할 수도 없다. 기승전결 안철수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다. 무려 시청률 34.49%을 기록한 티비 토론에서 갑질과 mb아바타라는 이미지를 스스로에게 씌운 자학 공격을 한 것이다. 사실 안철수 후보의 질문은 SNS에서는 많이 회자되는 내용이지만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은 것들이다. 즉, SNS를 하지 않는 유권자들은 모르는 것을 굳이 알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안철수 후보 이미지에 하등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아마도 준비해온 공격수순에서 무언가 빠진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바둑에서 같은 수를 두더라도 순서만 바뀌어도 결과가 딴판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처럼 누군가를 말로써 공격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물며 수순도 꼬이고, 수도 빼먹었다면 결과는 자멸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은 도대체 안철수 후보가 빼먹은 수순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결국 토론 중에도, 토론이 끝난 후에도 포털에는 mb아바타가 아니 mb아바타만 검색어에 남을 정도로 토론을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대선 토론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살골식의 셀프 디스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안철수 후보는 그 한 번의 수로 존재감을 폭발시킨 효과는 얻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유승민 후보의 박지원 대표 관련한 공격에는 “실망이다. 그만 좀 괴롭히라’는 말로 감정 조절에도 실패한 모습을 드러냈다.

대선 D-15 / 3차 TV토론 전문가 평가 (매경 4월24일자 기사)

그렇다 보니 토론 후에 매경 대선티비토론 평가단의 평가에서도 안철수 후보가 압도적으로 워스트로 뽑힌 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이들은 베스트에서는 다소 엇갈리는 선택을 했지만 워스트에서는 다섯 명 중 네 명이 안철수 후보를 꼽을 정도였다. 그러나 토론의 결과가 지지율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안철수 후보나 그 지지자들에게는 매우 낙담스러운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후보들의 주제와 무관한 발언을 전혀 제어하지 못하는 사회자의 문제점과 발언총량제에 대한 개선 및 폐기 이유가 더욱 부각된 토론이었다. 이틀 뒤 JTBC 토론은 이와 다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토론무용론까지 대두되는 상황에서 중앙선관위가 얼마나 이를 탄력적으로 반영해 남은 두 번의 토론 방식을 개선할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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