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스포츠'는 무엇입니까? 스포츠를 잘 '하고' 싶은 마음 만큼이나 스포츠를 잘 '읽고' 싶다는 욕구가 큰 시절입니다. 하는 스포츠와 보는 스포츠의 경합속에서 그만큼 스포츠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지만, 보다 정밀하게 스포츠를 읽고 싶다는 욕심이 못내 간지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때 마침, 야구도 끝나고 이제 무슨 재미로 사냐라는 분들을 위해, <미디어스>에서 보다 풍성한 스포츠 읽기를 위한 고품격 교양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체육교사이자 스포츠사회학자인 미디어스의 필진 남상우씨가 전공자의 전문성으로 그리고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총동원하여 "스포츠 지식문화사"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 꼼꼼하게 따라 읽다 보면, 분명 내년 봄 당신의 스포츠는 훨씬 풍성해질 겁니다. <편집자주>


인종에 따른 스포츠에서의 포지션 차별 현상 읽기

피부 색깔은 스포츠 종목에서의 포지션을 결정할 수 있을까요? 황당한 질문 같지만, 실질적으로 보면, 피부색에 따라 포지션이 결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종목 내 포지션 차별현상은 미국의 농구나 미식축구, 야구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걸 스포츠사회학자들은 스태킹(stacking)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연구하여 왔습니다. 이 글은 특정 인종에 따라 스포츠 종목뿐 아니라 종목 내 특정 포지션에 나타나는 차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양상을 보여주는가를 간략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스포츠에서의 인종스태킹

스태킹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요? 사실, 이걸 우리말로 적확하게 번역하기가 조금 애매합니다만, 한 연구자의 정의에 따르면 그렇답니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집단의 선수가 팀 스포츠의 특정 포지션에서 과도하게 많이, 혹은 과도하게 적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죠. 일종의 더미현상, 혹은 누적현상 쯤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체육과학연구원의 고은하 선생의 경우, 이에 대해 ‘인종적 포지셔닝’ 혹은 ‘인종에 따른 차별적 배치’ 등의 개념규정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주기도 하셨는데, 어찌되었든 그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미국의 스포츠에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례를 살펴보죠. 혹시 여러분은 TV로 MLB(미국프로야구)를 시청하시면서 투수나 포수 중 흑인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요즘에는 라틴계나 동양계 투수/포수가 많이 진출해 백인만 보이지는 않지만, 흑인은 역사적으로나, 현재나 매우 드물게 나타납니다. 대표적으로 몇몇 흑인투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이 인지되지 못하고 있죠.

1998년도의 자료를 보면, MLB의 투수의 경우 흑인, 백인, 다른 인종의 비율이 0.5:7.8:1.7 정도로 나타났습니다. 요즘에는 라틴계나 아시아계 쪽 비율이 조금 늘었고, 흑인 쪽도 10년 전보다는 늘었을 것이라 예측해볼 수 있겠지만, 투수나 포수와 같은 소위 야구에서의 ‘핵심 포지션’에 흑인이 배치되는 경향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고, 그러한 차별적 경향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의견입니다.

물론, 야구의 경우 이러한 종목 내 포지션 차별현상이 단지 인종차별에 근거한 것 만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미국프로야구에서 1975년 이후로 흑인선수의 참가비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플로리다 대학의 조사 결과가 그러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2005년 메이저리그 흑인선수의 비율이 8.5%로 1980년대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흑인들이 농구나 미식축구와 같은 분야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스포츠 종목 중 또 하나가 미식축구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 바로 쿼터백과 센터입니다. 이유는, 바로 미식축구에서 공을 주고받는데 있어 그 총사령관 역할을 이 둘이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백인들이 주로 그 포지션을 소화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가령, 한 연구에 따르면 2003년 미식축구에서의 포지션 별 인종비율은 쿼터백의 경우 백인이 75%을, 흑인이 25%를 차지했고, 센터의 경우 백인이 83.3%인 반면, 흑인은 16.7%였습니다. 10명 중 8명은 백인이 종목 내 요직을 차지한 것인데요, 뭐, 이 수치도 많이 올라간 것입니다. 1970년대에는 단 1%였습니다. 한 명도 없었던 적도 있었으니까요.

뭐, 이렇게 숫자로 표현하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네요. 다음의 그림을 보면 미식축구와 야구에서 인종 간의 배치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검은색이 흑인, 회색이 라틴계 및 아시아계, 흰색 부분이 백인을 의미합니다.

▲ 왼쪽은 미식축구에서의 인종비율을, 왼쪽은 미국프로야구에서의 인종비율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미식축구는 라틴계나 아시아계가 거의 없이 흑인과 백인 간의 비율로 양분되지만, 야구의 경우 회색으로 덧칠해진 부분이 라틴계 및 아시아계입니다. 투수와 포수에서 흑인이 현저하게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종에 따른 포지션에서의 차별적 배치 현상은 미국만의 상황은 아닙니다. 영국도 마찬가지로 크리켓이란 스포츠를 통해 이러한 인종차별적 배치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크리켓도 현재 잉글랜드나 호주, 뉴질랜드,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선수들 간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백인과 비(非)백인 사이의 중요 포지션에 대한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인종 간의 차별현상이 ‘복잡한 작전’을 요하는 전략 중심의 스포츠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위, 머리 쓰는 위치와 몸을 쓰는 위치에 따라 인종의 배치가 달리 나타난다는 것이죠. 농구나 축구 같은 스포츠는, 이견이 있기는 하겠지만, 야구와 미식축구 혹은 더 나아가 골프에 비해 전략적 개입, 즉 머리 쓰는 일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신체적 우월성이 더 요구되죠.

이러한 경향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흑인은 ‘머리 쓰는 스포츠’로 정의되는 곳에서는 백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나타나고, 반대로 ‘선천적인 신체능력’으로 정의되는 스포츠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돋보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장에 인종적 차별배치인 ‘스태킹’의 근원적인 발생원인이 있습니다.

포지션의 인종적 차별배치: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처럼 인종에 따라 종목 내 포지션 배정에 왜 차별이 발생할까요? 혹자는 기본적으로 흑인이 백인에 비해 참가 인원 자체가 적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필요하지만, 충분한 지적은 아닙니다. 야구의 경우에만 맞는 말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식축구는 그렇지 않거든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죠.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해보겠습니다.

스포츠에서 포지션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개인의 적성, 신체적 조건, 환경적 맥락 등이 총체적으로 고려되어 결정됩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그 포지션은 누가 결정할까요? 바로 코치입니다. 코치가 소위 ‘배치(disposition)’하는 것이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코치가 인종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더 원초적으로는 그 코치의 인종이 뭐냐는 것을 따져봐야 합니다. 물론, 대부분이 백인입니다.

스포츠에는 중심성(centrality)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목의 포지션에 중요도가 다르다는 이론이죠.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야구의 경우 투수, 포수, 2루수와 유격수를 중요 포지션으로 간주하고, 미식축구는 쿼터백과 센터를, 농구에서는 포인트 가드 등이죠. 일반적으로 게임을 조율하며 ‘힘쓰고, 몸을 주로 쓰는’ 그런 쪽 말고, ‘머리를 잘 굴려야’ 하는 포지션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포지션을 소화하려면 일단, 머리가 좋아야 합니다. 미국 스포츠, 특히 야구나 미식축구에서 이처럼 포지션의 인종적 차별배치가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코치가 주로 백인이라는 점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인이 흑인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적 배치가 지속되는 것이죠. 벨 커브(Bell Curve)이론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게 사람이 가지는 유전적 지능수준이 일정 부분 인종에 따라 예상된다는 그런 건데요, 이러한 이론적 틀이 스포츠 분야 내 지도자나 선수들 사이에서 아주 완고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이론적 사고를 비꼬아 스포츠 분야에서 다시 만든 용어가 바로 볼 커브(Ball Curve)죠.

어떤 분은 그렇게도 말씀하시던데요. 왜, 야구경기를 보면 방송 할 때 방송분량의 90%를 투수와 포수를 중심으로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TV화면에서 흑인이 계속 나오는 것을 대다수의 백인 시청자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포수와 투수를 백인으로 쓰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죠. 그것이 결국 고착화되어 구조적으로 투수와 포수는 대부분이 백인으로 채워졌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근거는 없지만, 과거 미국 사회 내 인종차별에 대한 완강한 관념이 있었음을 이해한다면, 그리 허황된 얘기도 아닌 것 같습니다.

종목 내 차별에서 더 큰 차별로: 흑인 감독 혹은 흑인 구단주?

많은 이론가들이 스포츠에서의 인종 스태킹 현상에 우려를 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것이 더 큰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는 것이죠. 흑인 선수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데, 주요 요직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흑인은 리더십이 떨어지고, 더 큰 조직을 운영해 나갈 만큼 영리하지 않다”라는 사고방식을 고착화시켜 은퇴 후 감독이나 구단주 등의 더 큰 요직으로 배치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혹시 NBA(미국프로농구), MLB, NFL 등, 미국 3대 메이저 스포츠에서 흑인감독을 보신 적이 있나요? 손에 꼽습니다.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흑인선수 스스로의 노력부족인가 사회구조적인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논란이 있습니다만, 주류는 바로 선수 시절 중요포지션의 경험부족과 그러한 경향성이 만연된 분위기가 흑인선수들 스스로에게 더 큰 요직으로의 진출을 좌절하게 하는 ‘자기-선택(self-selection)’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역할모델이 없으면 지레 포기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이는 우리의 경우도 있죠. 우리는 인종적으로 다양하지 않기에 남성 대 여성의 성별에 따라 나타나는데요. 특히 스포츠에서 여성 지도자가 부족한 이유가 “그들이 남성에 비해 잘 못 가르치기 때문”이란 능력중심의 사고방식과 더불어, 많은 여성지도자가 부족하기에 여자선수들이 보고 배우며 따라갈 역할모델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스태킹 이론이 한국스포츠에 던지는 질문

인종적으로 ‘단일’하다고 믿는 우리에게 과연 이러한 외국의 ‘스태킹 이론’이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뭐, 지금이야 인종적으로 단일민족을 표방하는 우리지만, 앞으로 다민족 국가로 갈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스포츠 참가에 대한 이러한 인종적 관심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그건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야”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인종과 민족에 기반을 두고 벌어지는 차별만큼 감내하기도 힘든 일이 없음을 이해한다면, 꼭 그렇게 외면할 일도 아닌 듯싶습니다.

스태킹 이론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과 그에 관련된 현상은 이미 농구 분야에서 희미하게나마 드러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종목 내의 포지션 ‘차별’이 아닌 ‘기피’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문제죠. 가령, 초등학교에서 농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선배는 이와 관련한 몇몇 황당한 경험을 한 바 있다 합니다. 그 경험은 한 마디로, “요즘 애들 센터 시키려고 하면 학부모가 먼저 발 벗고 나서 뜯어 말린다”는 거죠. 학부모 뿐 아니라 애들도 아주 정색을 합니다. “센터 아니면 죽음을 달라”가 아니라 “센터 시킬 거라면 죽음을 달라”, 뭐, 이겁니다. 일종의 센터 혐오증입니다.

왜 이런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이미 프로농구 시장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그 포지션을 대부분 ‘센터’로 점유해버렸기 때문이죠.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한국농구 시장도 개방되어 외국인 선수들이 유입되는 시점에, 그것이 가지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이것이 하부구조로 내려와 포지션에 대한 기피현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오죽하면 “토종센터”란 말이 나와 그들이 외국인 센터를 상대로 벌이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겠습니까?

▲ 중앙일보 관련기사

언론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짚은 바 있습니다. 중앙일보 강인식 기자는 고교와 대학농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고교농구선수 센터 25명과 대학의 25명 각각 10과 18명이 “외국인 선수와 경쟁하기 어려우므로 외곽 포지션으로 옮겨야 한다”고 답변했다 합니다. 이미 대학의 선수스카우트 관계자들은 “골밑 선수는 특급 선수가 아니면 대학에서 쳐다도 안 본다”고 말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등학교 수준에서부터 센터를 시키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죠.

만약 다른 종목에서 외국인 선수의 허용을 더 확대할 경우, 이와 같은 종목 내 포지션 차별과 기피 현상은 우리에게도 심각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짚어봤던 스포츠에서의 스태킹 현상은 앞으로 우리에게도 다양한 스포츠 종목 내 포지션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오늘 다루었던 인종문제와 더불어 “스포츠에서의 운동선수들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참고문헌>

Coakley, J.(1998). Sport in society(6th Edition). New York: McGraw-Hill, 257쪽.

Margolis, B., & Piliavin, J. A.(1999). “Stacking” in major league baseball: A multivariate analysis. Sociology of Sport Journal, 16, 16-34.

Woodward, J.R.(2004). Professional football scouts: An investigation of racial stacking. Sociology of Sport Journal, 21, 356-375.

Malcolm, D.(1997). Stacking in cricket: A figurational sociological reappraisal of centrality. Sociology of Sport Journal, 14, 263-282.

Hall, R.E.(2001). The ball curve: Calculated racism and the stereotype of African American men. Journal of Black Studies, 32(1), 104-119.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