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말하는 프로그램 '편성'과 '편집'은 도대체 뭡니까?"

"경영에서 편성과 편집을 제외하면 자칫 월급 주고 빌딩 관리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포괄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개별 프로그램을 '넣어라', '빼라', '옮겨라' 하는 것은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다."

프로그램 편성에 관한 사항은 방문진 권한도 아닌데, 왜 김 이사장을 포함해 한나라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 편성 문제를 가지고 엄 사장을 협박하느냐는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에, 김 이사장은 '편성과 편집도 경영에 포함된다'고 밝힌 것이다. 지난 8월27일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그는 "언론사 사장에 인사권, 편성권이 없으면 어떻게 언론사를 경영할 수 있나?"고까지 했다.

이런 발언들이 어떤 연관 고리 속에서 나오지를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 방송문화진흥법에 따르면, 방문진의 권한은 MBC 경영 관리 감독, 방송문화진흥자금 운용 관리, 방송문화 발전과 향상을 위한 연구 학술 사업, 기타 공익 목적의 사업 등 네 가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프로그램 편성과 편집에 관한 것은 없다. 방문진법은, 방문진이 방송편성에 개입할 수 있는 어떠한 규정도 두고 있지 않다. 방송법 제4조 제2항은 "누구든지 이 법과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이에 비춰보면, 방송 편성도 경영의 일부이니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 차원에서 방송 편성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편성과 편집은 경영에 포함된다?

그런데 현 정권이 MBC에 대해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이른바 정부 정책에 비판과 사회고발, 비리 추적 등과 같은 저널리즘 기능이다. 방문진은 이에 대해 개입할 근거가 없다. 그러자 찾아낸 게 바로 편성과 편집도 경영에 포함된다는 논리다. 그러면 편성과 편집을 포함하는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 소홀을 '경영 실패'로 규정해 엄 사장 해임을 밀어부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들 나름대로 논리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 이사장이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에 대해 "개별적 프로그램에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에 발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도 다른 이사들과는 달리 이런 정도의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노회함'은 김 이사장에게 있다고나 할까.

김 이사장에게 묻는다. 개별적 프로그램의 편성에 관여하지 않는 당신의 '편성'의 실체는 무엇인가? '편성 전략'을 말하는가? 방문진이 MBC의 바람직한 '편성 전략'을 짜는 곳인가? 아니면 편성의 일부를 이루는 '광고'의 편성을 뜻하는가?

편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정치공세

김 이사장은 "MBC의 경우 일부 프로그램의 조작, 날조된 내용을 유포해 국민들의 불안을 조성했음에도 경영진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확인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좋다.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러나 조작, 날조됐다고 단정해 놓고 하는 건 곤란하다. 그건 '부당 전제'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들의 항의처럼 '아직 법적으로 결정된 바 아무 것도 없다. 그렇게 미리 단정해 놓고 자체 진상조사를 왜 따로 하지 않았느냐고 물아세우는 건 경영 관리 감독을 빙자한 '정치 공세'일 뿐이다.

김 이사장은 학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편성이 경영과 무관할 수 없음은 언론학계나 언론계에 발을 담가본 사람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편성도 경영의 일부이니 경영을 책임지는 사장이 편성에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경영으로부터 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방송법은 노사가 함께 편성규약을 제정해 공표하도록 했고, 방송편성책임자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부당전제에 해당하는 '조작', '날조'를 빼면, 현재 한나라당 추천 방문진 이사들이 펼치는 정치 공세는 편성과 편집의 자율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