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서울에서 열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봉하마을을 출발한 장례행렬이 서울에 도착, 경복궁 앞에서 영결식이 열리는 시간은 오전 11시입니다. 그리고 시청광장에서 30분간 노제를 지내고,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을 마친 다음 산골하여 다시 봉하마을로 돌아가는 그 시간까지 아마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전 과정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미 추모객이 4백만 명이 넘었다는 통계에서 보듯이 전 국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마음 깊이 애도하고 있고, 그러므로 오늘 정말 많은 사람들이 국민장의 전 과정에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 민중의소리 김미정기자
충분히 애도를 하여야겠지요. 전직 대통령이었지만 살아 있는 권력에 의해서 인간적인 존엄함과 자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그는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정치적으로 타살된 것이라는 점에 누구나 공감했습니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울고, 이명박 정권의 안하무인의 이른바 ‘법치’에 분노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 노제까지는 참자'는 호소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오늘 서울광장에는 수 많은 인파가 모여들 것이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이 수배를 당해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말고, 그리고 다음날로 미룰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시청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뜻이 이명박 정권의 억압정치에 반대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죽음에 흘리던 눈물을 닦아야 할 날이기도 합니다.

행동하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은 더욱 강한 공안탄압을 준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전쟁 직전의 군 경계 태세에 들어갔으며, 경찰은 오늘 내일 갑호비상령을 내렸습니다. 오늘 노제가 끝난 다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설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내일 있을 범국민대회에 모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시청광장으로 모이고,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할 날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한 순간의 망설임과 주저함이 대세를 그르치는 일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역사의 순간에는 하루가 1년과도 같고, 열흘이 10년과도 같습니다. 오늘 무기력하게 흩어진다면 검찰과 경찰의 공권력으로 무장한 이 권력에 맞서 다시는 광장에 모일 자유마저 영영 되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두렵습니다. 영결식도 끝나고, 노제도 끝난 다음 실컷 울었다, 그러니 스트레스 풀렸다고 위안하면서 모두 일상으로 돌아갈 사람들이 두렵습니다. 국민의 뜻을 억압하고 국민의 위에서 군림하는 검찰과 경찰을 원래의 자리로 끌어내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엉터리 법과 원칙을 부수고, 민주주의를 되살려내야 하는 투쟁은 이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그 말은 노무현 그에게만 할 것이 아니라, 용산에서 지난 1월 20일 죽어서도 넉 달이 넘은 오늘까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는 용산 철거민들, 그리고 평범한 삶조차도 살지 못하도록 강요당해 죽음을 선택한 채 한 달을 넘기고 있는 택배노동자 박종태 열사의 죽음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해야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열리는 오늘 새벽부터 아침까지 약 2시간 동안 용산 철거민들이 돌아가신 4구역에서는 명도집행이 있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님과 이강서 신부님마저 깡패용역들이 밀치고 깔아뭉개면서 그들은 기어코 명도집행을 해버렸습니다. 용역깡패들의 욕설과 폭력을 경찰이 비호하기는 여느 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람이 죽어나갔고, 법원에서마저 세입자들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제청을 한 재개발지역에서 명도집행을 단행한 것이지요.

이처럼 저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은 국민들이 국민장으로 슬픔에 젖어 있을 때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가차없이 집행됩니다. 부자들과 재벌들, 그리고 이명박 편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관대하기만 한 법치, 반면에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이명박의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가혹하기만 한 법치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그런 법과 원칙을 내세운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죽었고, 용산 철거민들이 죽었고, 박종태 노동열사가 죽었습니다.

죽은 이를 추모하는 일은 눈물을 흘리는 일만이 아닙니다. 죽은 이를 진정 추모하는 일은 죽은 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죽기 전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였다면, 죽은 이마저도 모독하는 정권에 대해 저항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넘어서 억울하게 죽어간 서민들, 노동자들의 죽음까지, 그리고 아직도 장례 못 치르는 억울한 죽음들을 이제 국민들이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는 그들의 죽음 위에서 민주주의를 되찾고, 아니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을 위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향한 행진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민주주의는 가난한 자도, 힘없는 자도 인간의 존엄함을 존중받는, 국가의 폭력이 없고, 법치가 정의 위에 서는 그런 민주주의, 경제적인 불평등이 시정되어 경제사회의 민주화도 이룬 민주주의여야 합니다.

오늘은 항쟁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오늘은 그 시작을 선언하고, 투쟁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 오늘 하루 내내 투쟁하고, 내일은 오후 4시부터 시청에서 열리는 범국민대회로 모입시다.

밖에 나갈 수 없는 저는 오늘 비록 인터넷 생중계로 밖에 보지 못하지만, 내내 함께 하겠습니다.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이 경찰의 강제진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이런 사실을 검찰이 알고도 은폐하고, 조작하였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저는 수배 중에 있지만, 이제 국민들이 평범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일어설 것을 믿기에 저는 오늘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기 위해 연대하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내는 날이 아니라, 이명박 독재정권을 끝장내는 항쟁이 시작된 날로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그 민주주의 항쟁으로 용산 철거민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나서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오만한 권력을 심판하는 항쟁의 날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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