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시즌이 시작되기 전만 하더라도 한화이글스 팬들은 큰 기대와 희망으로 들떠 있었다. '야신' 김성근 감독이 마침내 지휘봉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1989년 태평양 돌핀스, 1996년 쌍방울 레이더스 등을 통해 '꼴찌 팀의 기적'을 일구어냈고, 2002년 포스트시즌 진출도 어려워 보이던 LG트윈스를 한국시리즈에 올려놓고 우승 일보직전까지 갔었던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커리어 중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SK 와이번스를 리그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놓고 이른바 'SK왕조' 시대를 구축하였다.

그의 업적만 놓고 보면, 2008년 이후 좀처럼 포스트시즌 근처는커녕 최하위권에 허덕이던 한화이글스에게 충분히 구세주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을 수 있었다. 지휘봉을 잡자마자 그는 특유의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팀 전력과 기강을 바꿔놓는 시도에 돌입한다. 이에 구단에서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FA시장에서 배영수, 송은범, 권혁 등을 대거 영입한다. 한화이글스의 전지훈련 소식은 온통 포털 사이트의 스포츠 섹션을 도배했으며, 마치 다른 구단은 전지훈련을 실시하지 않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김성근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한화이글스 구단의 지명도는 전국구 구단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동안 연고지역 팬들의 우직한 보살응원은 트레이드마크처럼 자리잡았지만, 연고지 팬들의 관심을 넘어 한화이글스는 전국 야구팬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2015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이글스는 매 경기를 포스트시즌에 임하듯이 전투적으로 응전하였다. 그 과정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 근성의 야구가 팀 컬러로 자리잡았고, 이는 팬들을 중독시키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런 이글스 야구의 중독성에 빗대 '마리한화'라는 신조어가 탄생하였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2015시즌 이글스는 메르스라는 돌발 변수로 인해 관중이 급감하던 KBO리그의 구세주 역할을 하였다. 이글스 경기가 펼쳐지는 날이면 홈이든 원정이든 가리지 않고 구름관중이 몰려 다녔다. 2015시즌 전반기를 5위로 마칠 당시만 하더라도 이글스의 포스트시즌 진출은 낙관적으로 보였다. 김성근 매직이 드디어 이글스에게도 전파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2015시즌 후반기부터 이글스는 거짓말 같은 추락을 반복하였다. 이글스 전력을 지탱하던 강력한 구원투수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권혁, 박정진 등 2015시즌 전반기 내내 이글스 마운드를 지키던 주축 투수들이 후반기 들면서 급격한 컨디션 저하 및 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매 경기 총력전을 쏟아 부은 결과의 후유증이었다.

아쉽게도 정규시즌 마지막 날, 이글스는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의 고배를 들었다. 그러나 바로 직전 시즌 승패마진이 무려 -28에 달하던 팀이 불과 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다툴 정도로 변모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그나마 김성근 감독이었기에 이 정도 선전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위안을 삼는 목소리가 비판의 목소리를 덮었다.

2015시즌 종료 직후, 스토브리그에서 이글스 구단은 또 다시 큰 손으로 변모하였다. FA 시장에서 마무리 정우람과 전천후 요원 심수창을 영입하였다. 두 선수를 영입하는 데 120억원 가까이 투자하는 통 큰 면모를 보였다. 권혁, 박정진, 윤규진 등이 힘겹게 지키던 구원 투수진이 더욱 탄탄해지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또한 시즌 후반기에 가세해 특급 선발투수의 활약을 보인 로저스와 재계약에 성공했고, 메이저리그 출신 강타자 로사리오도 영입하면서 공격력도 강화했다. 여기에 집권 2년차를 맞이한 김성근 감독이 팀 전력 파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잠재력을 가진 신진급 투수들의 성장도 기대되었다.

한화 이글스 투수 정우람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2016시즌이 시작되자마자 이글스는 개막 2연전에서 홈팀 LG트윈스에 2경기 연속 연장 끝내기 패배를 당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패배 과정이 너무도 유쾌하지 못하였다. 개막전에서는 4-0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4-5로 역전패를 당했는데, 투구수가 57개에 불과하던 선발투수 송은범을 3이닝만 던지게 하고 강판시키면서 줄줄이 구원투수들을 투입했는데, 그 과정에서 권혁이 2이닝, 정우람이 3이닝을 책임지면서 개막전부터 구원투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반면에 당시 LG 트윈스는 선발투수 소사가 초반에 4실점하면서 부진했지만 94개의 공을 던지면서 6이닝을 책임졌다. 당연히 나머지 구원투수들에게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했다.

김성근 감독의 조급증은 개막 2차전에서 더욱 심각하게 발생하였다. 신인 유망주 김재영을 과감하게 선발투수로 투입하였다. 사이드암 김재영은 시범경기에서 호투를 거듭하면서 이글스 마운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마치 김성근 감독이 조련하여 돌풍을 일으켰던 1989시즌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의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한화 이글스 투수 김재영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러나 그런 기대는 2회말 LG트윈스 공격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김성근 감독은 마운드에서 가차 없이 김재영을 내렸다. 경기 초반임을 감안하면 충분히 믿어보고 맡길만했는데 김성근 감독은 개막 2연전을 마치 한국시리즈 2경기 대하듯이 임하였다. 갑작스레 경기 초반에 구원으로 등판한 좌완 김용주도 제구력 난조를 보이면서 아웃카운트 한 개도 잡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순식간에 1이닝 사이에 유망주 투수 2명이 자신감을 잃게 되는 가장 안 좋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경험이 일천한 신진급 투수들에게 최대한 부담을 덜어주지 못할망정 가혹하리만치 사지로 내몬 김성근 감독의 투수 기용은 결국 시즌 내내 자신을 옥죄는 '독'이 되었다. 그 경기 이후로 김재영이나 김용주가 중용되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44경기 레이스의 불과 두 번째 경기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설령 경기를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당시 선발투수였던 김재영에게 최소 5이닝 아니면 투구수 90개까지 맡긴다는 계산으로 경기에 임했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법이 뇌리를 맴돌게 하였다. 김용주도 마찬가지다. 경기 초반 박빙의 상황에서 김용주에게 마운드를 맡긴 자체가 무리수였다. 그 두 명의 투수가 그렇게 미덥지 못했다면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한 장민재를 선발투수로 올렸어야 했다.

한화 이글스 투수 권혁 [연합뉴스 자료사진]

모든 투수기용이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들에게 중심축이 맞춰져 있다 보니 이글스 마운드는 시즌 내내 믿고 맡길 수 있는 권혁과 송창식에게 과부하가 집중되었다. 결국 두 투수 모두 8월을 기점으로 전열에서 이탈하였다. 과연 김성근 감독이 자주 쓰는 표현대로 투구폼의 문제였을까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거의 모든 경기에 등판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등판하기 전에 심리적인 준비 및 불펜에서 몸을 푸는 과정 모두가 투수의 심신에 부담을 주게 된다.

최근에 비교적 빠른 나이에 은퇴를 결심한 SK 와이번스의 좌완투수 전병두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성기였던 2009시즌 혹사당하지 않았냐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당시 자신의 컨디션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투수코치가 괜찮냐고 물어보면 늘 등판할 수 있다고 대답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이 더 크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에 어떤 선수가 감독의 질문에 과감하게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더군다나 팀의 승패가 걸린 상황에서 기본적인 책임감이 있는 선수라면 당연히 무리를 해서라도 등판을 감행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오기 전에 감독이 먼저 선수의 몸을 생각해서 등판하겠냐는 질문 자체를 던지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더군다나 김성근 감독의 리더십은 이른바 철의 장막을 연상하게 할 만큼 절대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 코치들도 쉽게 직언하지 못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전병두가 쉽사리 마운드에 오르지 않겠다고 대답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렇게 치밀한 계산을 중시하는 김성근 감독이었다면 전병두의 투구 간격을 알아서 조정해주는 것이 이치에 맞았을 것이다. 이번 시즌의 권혁과 송창식도 마찬가지이다. 가급적 연투를 줄이거나 연투를 했다면 확실한 휴식기간을 보장해주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안쓰러울 정도로 권혁과 송창식은 마운드에 매일 출근도장 찍듯이 올라섰다. 더군다나 두 선수는 팀내 베테랑급 투수들이다. 베테랑으로서의 책임감은 그들을 자연스레 마운드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이 오게 만든 자체가 김성근 감독이 매니저로서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인 아닌지 되묻고 싶어진다.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9월 20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경기에서 패한 뒤 홈팬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제는 김성근 감독의 혹사에 대한 인식이다. 오히려 대한민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혹사당하고 있지 않느냐는 궤변으로 자신에 대한 논란을 피하였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가 너무도 자명하였다. 그렇게 힘차게 공을 뿌리던 권혁과 송창식의 몸에 이상이 왔다는 것만으로 그들은 혹사당한 것이 맞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김성근 감독은 혹사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실현이 되지 않는다고 오기로 밀어 붙인다면 더 큰 화를 낳게 되는 것이다. 권혁과 송창식은 몸이 재산이고 전부인 존재들이다.

이글스 야구는 2년 사이에 근성의 야구로 팬들을 매료시켰다.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는 두 시즌 연속 홈관중 65만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홈관중 40만명 돌파도 힘겨워 하던 이글스로서는 불과 2년 만에 구단의 이미지를 변모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젠 원정경기에서도 가장 많은 관중을 몰고 다닌다. 김성근 야구의 효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으로 부작용이 너무 커 보인다. 기대했던 유망주의 성장은 더디고 베테랑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는 심화되고 있다. 이글스 마운드의 평균연령은 2014년 27.2세에서 2016년 30.9세로 높아졌다. FA를 통해 권혁, 배영수, 송은범, 정우람, 심수창 등 30대 초중반에 접어든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고 이들이 마운드의 주축으로 활약하는 데 따른 현상이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김성근 감독의 계약기간은 내년까지이다. 과연 김성근 감독이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구단도 효율적인 투자가 필요함을 느꼈을 것이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이후 FA로 영입한 선수들 중 제 몫을 한 선수는 냉정히 따지면 권혁이 유일하다. 84억원을 받은 정우람은 시즌 초반 무리한 연투로 인해 점점 성적이 추락하면서 몸값에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지 못하였다. 배영수는 계약 첫 해 4승에 그쳤고, 올 시즌은 부상으로 개점휴업했다. FA 계약 직전 2년 연속으로 7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송은범은 34억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이후 평균자책점을 6점대로 내리는 성과(?)만 거두었다. 심수창은 2015시즌 롯데에서 기록한 수준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그 성적이 과연 4년 동안 13억원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30대 초중반의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는 과정에서 이글스는 20대 초반의 마운드 유망주들을 대거 유출하였다. 만약 김성근 감독이 내년에도 지휘봉을 잡는다면 진정으로 이글스 구단을 위해 어떻게 공헌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베테랑 선수들에만 의존하면서 신진급 선수 육성을 사실상 등한시했는데, 김재영, 김용주, 김범수, 정대훈 등의 신진급 선수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할 것이다. 야수 부문도 마찬가지이다. 김성근 감독의 머릿속에는 36살의 이양기가 여전히 유망주로 자리하고 있다. 올해 영입한 김주현과 같은 포텐셜이 풍부한 선수들을 키워내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올 시즌 넥센이나 LG가 새로운 얼굴들을 대거 키워내면서 성적까지 동반 상승하는 사례를 보면서 김성근 감독도 변화를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올해 선발과 구원에서 새롭게 떠오른 신재영, 김세현 (이상 넥센), 김지용, 임정우 (이상 LG) 같은 선수들이 이글스에 있었다면 과연 올 시즌 같은 활약을 보일 수 있었을까에 대해 고민해보면 답은 쉽게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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