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행안부)가 올해 보조금 49억원을 지원하는 공익활동지원사업 대상에서 ‘촛불시위 참가 단체’ 6곳이 제외되면서 ‘촛불 죽이기’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이 2월 한달 동안 비영리 민간단체에 무더기로 등록하고 이번 사업에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뉴라이트 단체 비영리민간단체에 무더기 등록…왜?

행안부는 이번 사업 공모 마감일을 2월 27일까지로 정했는데 상당수의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이 2월 1일부터 27일에 걸쳐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했다. 이번 사업의 선정 대상이 ‘중앙행정기관에 등록한 비영리민간단체’로 한정되면서 요건을 갖추기 위해 무더기 등록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이들 단체는 모두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비영리 민간단체가 아니었던 단체가 사업 공모 마감일인 27일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하고 사업에 선정된 경우도 있다.

<민중의소리>가 이번 행안부가 발표한 ‘비영리민간단체 2009년 공익활동 지원 사업결과’와 2009년 3월 31일까지 등록한 비영리 민간단체 현황을 비교 분석한 결과 2월 1일부터 사업 공모 마감일인 2월 27일까지 비영리 민간단체에 등록한 단체는 24곳으로 나타났다.

이중에는 예비역대령연합회(대표 신영철), 국민행동본부(대표 서정갑), 시대정신(대표 안병직) 등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이 상당수 포함됐다.

특히 공모 마감 당일인 2월 27일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단체는 자유대한지키기국민운동본부(대표 박세직) 등 3곳으로 나타났고, 2월 17일부터 27일까지 등록한 단체는 2월 한 달 간 등록한 단체 24곳 중 19곳에 달했다.

또한 4개 단체는 해당 중앙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했는데, 모두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4개 단체 대부분은 선플달기국민운동본부(대표 민병철) 등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단체들이다.

24개 단체 중에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 중인 4대강과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제로 한 사업을 내건 단체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포럼 푸른한국(대표 박성수)은 4대강 살리기 정책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사업을, 늘푸른희망연대(대표 차미숙)는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비전 실현을 위한 국민참여 및 전국 순회행사를 사업으로 제출했다.

24개 단체가 지원받는 보조금은 총 8억9200만원으로 전체 지원금(49억) 중 약 5분의 1에 해당된다.

결국 상당수 뉴라이트, 보수단체들이 포함된 24개 단체가 무더기로 2월 한 달 간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고 사업에 선정되면서 행안부의 졸속, 부실 심사 의혹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불법시위를 주최·주도하거나 적극 참여한 단체’, ‘구성원이 소속단체 명의로 불법 시위에 적극 참여하여 집시법 위반 등으로 처벌받은 단체’에 대하여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기로 한 규정으로 6곳 단체들이 제외됐지만 관련 의혹이 있는 뉴라이트 단체가 사업에 선정돼 형평성 논란도 예상된다.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대표는 2004년 열린 ‘국가보안법 사수 국민대회’에서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4월 징역 1년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국민행동본부는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사업선정일(09.5.1)로부터 최근 3년 이내 불법폭력 집회·시위참여 전력에 대해서 적용하기로 했다’는 규정이 있긴 하지만 불법폭력 집회 시위에 참여한 시점을 경찰 등 공권력이 규정한 불법 집회 시위에 참여한 것으로 볼 것인지 불법 집회 시위 혐의로 사법처리가 된 기준으로 볼 것인지 모호하다.

행정안전부의 ‘행정적 실수’로 보이는 대목도 발견됐다.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되지 않은 단체가 사업에 선정돼 이름을 올린 것.

이번 사업에 선정된 한국EPA협회, 청계, 한국건강관리협회 등 3곳은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현황에서 찾아볼 수 없다. 행정안전부가 비영리 민간단체에 등록한 단체명과 사업 선정 단체명을 달리 표기해 ‘행정적 실수’를 했거나 자격요건이 없는 단체를 사업에 선정했는지 해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까다로워 조건 갖췄을지도 의문

이에 더해 사업 공모 마감일에 쫓겨 중앙행정기관에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한 흔적이 드러나면서 이들 단체가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에 명시된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조건을 과연 충족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각 중앙행정기관의 심사내용을 살펴봐야 하겠지만 급작스럽게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회칙이 있어야 하고, 1년 공익활동의 실적과 회원수 100명 이상을 보유하고 전년도 사업계획서와 결산서, 회의록,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않는다는 입장 등 갖춰야 할 조건이 까다롭다”며 중앙행정기관의 졸속·부실심사 의혹을 제기했다.

사업 취지 자체부터 잘못됐다

상당수 뉴라이트 계열 단체가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되면서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이 이들 단체를 위주로 지원하고 소통하는 결과로 나올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시민사회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비영리민간단체에 등록한 단체는 ‘고유번호증’을 부여받게 되는데, 고유번호증은 여러 기관들의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자격증’으로 통한다. 예를 들어 고유번호증이 없으면 단체 명의의 통장을 개설하는 것도 어렵고, 단체 명의로 책을 출판하고 싶어도 출판사로부터 고유번호증 제출을 요구받는다.

처음부터 이번 사업의 취지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실제 진보진영 시민사회단체 10곳은 행안부가 이번 사업을 공모할 때 사업 유형을 ‘100대 국정과제’,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통합과 선진화를 지향하는 신국민운동’ 등 정부 홍보 차원의 내용으로 못박자 응모 자체를 포기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오광진 팀장은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의 취지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라는 등 국가가 민간단체에게 자율과 독립을 줘 위탁하는 개념인데 이번 사업은 그런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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