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의 끝자락에, 모 대학 교수의 논란이 될 만한 강연 자료가 몇몇 언론에 의해 소개됐다.

파워포인트로 작성된 자료 전문의 내용을 보면 “주요 신문 몇 개 틀어막으면 끝인 줄 아는 노친네들”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9시 뉴스가 방송의 모든 것으로 아는 무지한 노친네들”이라고도 적시되어 있다.

▲ 2008년 5월 29일자 한겨레 10면.
또한, “멍청한 대중을 조작/영합”해야 한다고 적혀 있고, “(대중은) 비판적 사유가 부족”해서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바로 세뇌 가능”하다고도 한다. “인터넷 미디어와 시민단체의 타락을 (혹은 현실화를)최대한 활용, 조/중/동에 꿇던 것 30%만 꿇으면 더욱 확실한 공작효과”라는 주장도 들어 있다.

작년 5월 초 (위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교수는, 문화관광체육부의 홍보 전담 공무원 11명을 대상으로 ‘공공갈등과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한겨레> 보도를 보면, 해당 교수는 “내 주장이나 논점이 아니라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으니 논의해 보자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해명대로라면 그 강연 자료는 일종의 해프닝이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1년을 지나는 동안, 언론계와 정부의 대 언론관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랍니다.”

“용산 참사로 빚어진 경찰의 부정적 프레임을 연쇄살인사건 해결이라는 긍정적 프레임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언론이 경찰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니 계속 기사거리를 제공해 촛불을 차단하는 데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익히 알려지고 사실로 판명된 바와 같이, 지난 2월 초 청와대가 경찰청에 보낸 ‘이메일’의 주요 내용이다. 모 행정관 개인의 돌출 행동이었다는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그려내는 언론 정책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서글픈 지난 1년 역사의 단면이다.

촛불 이후의 언론계-일련의 사건들

1) 2008년 5월 2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인터넷포털 다음에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난 댓글 삭제를 요청한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시작된 날의 일이다. 5월 중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EBS <지식채널e>의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의 결방을 촉구한다.

2) 같은 해 6월,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가 시작되고 KBS 이사직의 사퇴를 거부한 동의대 신태섭 교수가 해임된다. 방통위는 7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의 광고 불매운동과 관련해 다음에 게시된 글들을 삭제 조치시키고, 검찰은 촛불집회를 생중계한 인터넷방송 <아프리카>의 문용식 대표를 구속한다.

3) 7월 17일 제헌절엔 날치기 주주총회로 구본홍씨가 YTN 사장에 임명되고, 8월에 청와대가 KBS 정연주 사장을 해임한 후 대통령실장, 국정원 간부 등이 모여 KBS 대책회의를 개최한다. 10월엔 YTN 사측이 ‘구본홍씨 낙하산 저지 투쟁’ 관련 YTN 노조원 6명을 해고하는 등 33명 징계에 나선다.

4) 해가 바뀌고 올해 1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구속되고, KBS는 자사의 양승동 PD와 김현석 기자의 파면과 성재호 기자의 해임을 발표했다가 노조와 언론계의 반발로 ‘정직’의 조치를 취한다. 2월 법원은, 조중동 광고 불매운동에 가담한 네티즌 24명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5) 3월, 수사당국은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을 소환 조사하고, 다음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네티즌 3명에 대해 조회수 조작 혐의로 자택을 압수수색한다. 그 달 어느 일요일의 아침, 경찰은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등 기자출신 노조지도부 4명을 이들의 자택 등에서 긴급체포한다.

6) 3월 하순,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이 구속된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의 진원지로 지목한 MBC <PD수첩> 제작진 6명에겐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이춘근 PD와 김보슬 PD가 연이어 검찰에 체포된다. 검찰은 MBC 본사 압수수색을 시도하기도 한다.

지난 1년간의, 언론계(포털뉴스 및 게시글 포함)를 둘러싼 주요 사건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2008년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 조사’를 지시했을 때에만 해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 지난 1월 3일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로 만든 '언론' ⓒ송선영
언론 감시자-시민과 기자

정부의 대 언론관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프레스 프렌들리’이다. 좋게 해석하면 언론과 싸우지 않겠다는 말이지만, 언론이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만들고 권력의 일부분으로 편입시키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느 쪽 해석이 타당한가는 이미 입증되었다. 반대자를 회유 또는 탄압한 뒤의 ‘권언유착’이 아니었는가.

지난해의 촛불시위도, 정부 정책에 대한 단순한 반대를 뛰어넘어,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새 정부와 일부 언론 사이의 긴밀한 유착 관계를 고발하고 언론계 및 사회 전체에 경종을 울린 것이기도 하다.

촛불시위 발발 한 달 전, “지금 언론은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권력이 잘못하고 언론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비판하고 있다”며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시민의 참여를 강조한 바가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 관련 토론회에서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 권력과 언론의 관계가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권언관계가 과거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대체로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고 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의식 자체가 ‘권언유착’을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전문가들의 전망은 얼마나 맞아떨어졌을까?

실제로 촛불시위 당시 시민들의 적극적인 고발로, 조선, 동아, 중앙 등의 거대 일간지를 비롯한 몇몇 언론 매체들한테 2008년은 매우 혹독한 한 해였고 상당수의 국민들이 언론 매체들의 성향과 실체를 자연스레 분석·비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숙’의 시간도 찰나일 뿐, 친정부 및 족벌 언론 매체들은 다시 고개를 꼿꼿이 들고 반격에 나서고 있다. 반면 시민의 도움으로 거리에서 싸운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은 매우 어려운 경영 상황에 봉착했다. 정부는 ‘목표’를 향해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

현재 언론과 시민사회 안팎에선 갖가지 얘기들이 나온다. 그 중 하나가, 오는 5월에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등 지도부가 구속되고, 6월에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미디어법이 강행 처리될 것 같다는 예측. 이어 8월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전면 교체되고, 9월에 KBS와 EBS 이사진 교체가 시도된 후, 10월 이후에 공영방송법이 제정된다는 시나리오이다.

이 글 앞머리에서 소개한 모 교수의 강연 자료에서도 (아리송하면서도) 한편으론 공감이 가는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새 정부가 되니까 세상이 30년 rewind(되감기) 된 줄로 착각”한다는 내용의 문구.

언론인 체포 등을 보면 30년 되감기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치 바라보는 수준마저도, 7·80년대의 도마 위에 놓고 보는 사람들이 2009년 4월의 끝자락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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