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2016시즌 여자프로농구(WKBL) 부천 KEB하나은행의 돌풍을 주도했던 첼시 리의 혼혈선수 신분을 둘러싼 의혹이 결국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이 났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15일 지난해 한국계 선수 자격으로 KEB하나은행에서 뛰었던 미국인 첼시 리가 제출한 본인과 아버지의 출생증명서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는 첼시 리에 대해 미국 사법당국에 진술 청취를 위한 형사사법 공조를 요청하고, 답이 올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하는 한편 역시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은 첼시 리와 구단 측 에이전트들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여자농구 KEB하나은행 첼시 리 Ⓒ연합뉴스

현재 WKBL 규정엔 부모 또는 조부모가 한국 사람이면 해외동포 선수로 토종 선수와 같은 자격을 부여하는데, 첼시 리의 경우 조모가 한국인으로 인정되어 국내 선수 자격으로 뛰게 된 케이스다.

첼시 리가 KEB하나은행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첼시 리의 혈통을 의심하는 다른 구단들과 언론을 통해 많은 말들이 나왔지만 KEB하나은행은 첼시 리가 제출한 플로리다주 명의의 본인 출생증명서, 미국 국무부 명의의 부친 L씨 출생증명서, 친할머니로 주장한 한국인 이모씨의 사망증명서를 근거로 적극적인 소명 작업에 나섰고, 이를 WKBL에서 받아들임에 따라 첼시리 문제는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첼시 리가 대한농구협회와 대한체육회의 추천을 거쳐 특별귀화 추천 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법무부 국적심의위원회의 검토 과정에서 서류 위조가 의심되는 정황이 드러났고, 첼시 리의 혈통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그리고 검찰의 수사 결과 첼시 리의 혈통 내지 신분과 관련된 서류가 조작됐음이 밝혀진 것.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첼시 리가 제출한 본인 출생증명서 상의 아버지 L씨는 실존 인물이 아니며, 일련번호도 사망증명서에 사용되는 번호로 드러났다. 또 부친 출생증명서로 제출한 서류도 미국에서 당시 사용되던 양식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여자농구 KEB하나은행 첼시 리 Ⓒ연합뉴스

이번 첼시 리 사태는 검찰의 수사로 인해 명확하게 그 실체가 드러났지만 이미 일부 농구인들 사이에서는 첼시 리가 결코 혼혈선수가 아님이 공공연하게 인정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첼시 리가 제출한 서류상에 아버지로 되어 있는 인물과 한국인 할머니 사이에 모자 관계가 규명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했다.

WKBL은 첼시 리와 그의 에이전트, 그리고 KEB하나은행 측이 제출한 서류가 ‘사실임’을 전제로 첼시 리의 혼혈선수 신분을 인정했다. 첼시 리 측에서 제출한 서류가 사실임을 WKBL 차원에서 철저히 검증하지 못하고 ‘사실임을 전제로 인정’이라는 희한한 결론을 내린 것.

첼시 리의 입단 과정에서 관련 사실관계와 설류를 철저히 검증했다면 이와 같은 희대의 사기극은 불가능했다. 시즌 개막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제기된 의혹에 대해 다시 한 번 검증을 해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WKBL은 그 기회마저 날려버렸다.

WKBL의 어정쩡한 일처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지난 시즌 WKBL 타이틀 스폰서였던 KEB하나은행의 입장과 그 존재가 첼시 리에 대한 검증이 허술하게 이뤄진 배경에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첼시 리의 혈통 위조는 사실로 밝혀졌다. 그리고 혈통을 위조한 이 한 명의 부정 선수가 지난 시즌 평균 15.2득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KEB하나은행은 정규리그 2위와 챔피언결정전에도 진출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첼시 리는 신인상은 물론이고 득점, 리바운드, 공헌도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리그 전체의 판도를 혼자 몸으로 바꿔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몰고 올 후폭풍은 그 정도를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지난 시즌 첼시리의 기록과 수상은 모두 무효가 되는 것은 물론 KEB하나은행의 준우승팀 자격도 박탈될 것이 확실시된다.

하지만 첼시 리로 인해 KEB하나은행이 감당해야 할 가장 큰 타격이자 치욕은 KEB하나은행은 지난 한 시즌을 사실상 안 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말을 조금 더 확대하자면 지난 시즌 WKBL 전체가 무효라고 해도 할 말이 없어진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첼시 리(KEB하나은행)가 지난 3월 오전 서울 영등포구 63스퀘어에서 열린 KDB생명 2015-2016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스타 신인 선수상을 받은 후 수상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WKBL은 조만간 재정위원회와 이사회를 열어 첼시 리 사건과 관련된 징계 및 재발 방지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KEB하나은행 구단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킨 것과 관련해 사과하고 향후 첼시 리와 첼시 리 에이전트에 대해 강력한 법적조치를 취할 뜻을 밝히는 한편, 사건이 최종적으로 문서 위조로 판명될 경우 장승철 구단주는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임할 뜻을 밝혔다.

리우올림픽 최종예선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이 나이지리아에게 1점차 역전패를 당해 8년 만의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이 불투명해진 바로 그 다음날, 첼시 리를 둘러싼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한국 여자농구는 ‘겹초상’을 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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