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은 뜨거웠지만 뜨거운 열정만으로는 부족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서 무대 진출에 도전했던 한국 여자농구가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고배를 들고 말았다.

위성우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은 19일(현지시간)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벨라루스와의 리우 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5위 결정전에서 39-56으로 패해 리우 올림픽 본선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이로써 한국 여자농구는 지난 2012년 런던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본선에 나가지 못하게 됐다.

이날의 패배는 벨라루스가 국제농구연맹(FIBA) 랭킹 10위로 12위인 한국보다 랭킹에서 두 계단 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한국이 조별예선에서 벨라루스를 상대로 한 점 차 역전승을 거뒀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못내 아쉽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강이슬이 19일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 벨라루스와 경기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대한민국농구협회=연합뉴스]

특히 조별예선에서 던지면 들어가는 수준의 정확성을 과시했던 3점슛에 난조를 보이며 39득점 밖에 올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아쉽다.

결국 체력의 문제였다. 6일간 5경기를 치르는 살인적인 강행군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셈이다. 우리 대표팀은 쿠바와의 경기를 치른 지 불과 19시간 만에 벨라루스를 상대해야 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체력이 떨어지면 슛 거리도 짧아질 수밖에 없고 집중력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저하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위성우호가 이번 대회에서 거둔 12개 팀 가운데6위라는 성적도 박수 받기 충분한 성적으로 볼 수 있다.

특히 195cm의 여고생 센터 박지수가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을 대표할 수 있는 선수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혔고, 강아정, 박혜진, 김단비, 이승아 등 젊은 선수들이 팀을 이끌며 세계적인 강호들과 주눅 들지 않는 경기를 펼쳐, 한국 여자농구가 성공적인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한 점은 고무적이다.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박지수(분당경영고)가 15일(현지시각)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최종예선 벨라루스와 경기에서 리바운드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국여자농구연맹 제공 = 연합뉴스]

스타일 면으로 봐도 위성우호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여자농구의 새로운 컬러를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악착같은 수비와 조직적인 속공 플레이, 그리고 그 가운데 정확도가 한층 업그레이드 된 3점슛이 더해지면서 ‘코리언 스몰 바스켓’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성과에 있어 위성우 감독, 전주원 코치 콤비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은행의 여자프로농구 통합4연패를 이끈 이들의 활약을 대표팀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우리은행에서 더 나아가 한국 여자농구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해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만큼은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상대팀들에게 ‘승수 자판기’가 아닌 ‘복병’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회에 출전한 단 한 가지 목표이자 절대적인 목표인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는 결과는 바뀔 것이 없고, 그런 점에서 본다면 위성우호는 ‘실패했다’는 냉정한 평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여자농구의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는 여자배구의 올림픽 본선 진출 성공과 대조되면서2016-2017시즌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프로농구의 인기에 상당한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지난 2015-2016시즌 한국 여자프로농구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 판 자체를 뒤흔들었던 첼시 리가 혈통을 위조한 가짜 혼혈 선수임이 밝혀져 농구계는 물론 한국 스포츠계를 발칵 뒤집히게 만든 사건이 불거진 상황이고, 그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른다는 현실이 여자농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할 것이다.

여자농구 KEB하나은행 첼시 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찌 보면 한국 여자농구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다 이제 가장 어둡고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와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내려갈 곳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설령 그런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내려가서는 곤란하다.

‘첼시 리 쇼크’와 리우 올림픽 진출 실패의 아픔을 털고 스포츠 팬들로 하여금 여자농구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요소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날 한국 여자농구의 난맥상을 유발한 궁극적 책임 주체인 한국여자농구연맹부터 환골탈태가 필요하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이 뭔가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고, 마련할 제도가 있다면 꼼꼼한 과정을 거쳐 제대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과거의 예를 비춰볼 때 이번에 여자농구 대표팀이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면 또 이런 문제들이 슬그머니 묻혔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한국 여자농구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과 모순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점검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본다면 길게 볼 때 현재의 상황은 한국 여자농구의 중흥에 있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정신 차려야 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린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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