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가 다시 극적인 상황을 만들며 시애틀의 왕이 되었다. 시애틀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하나인 카노가 이대호에게 덕 아웃에서 보인 행동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오늘 메이저 코리안리거들인 박병호와 강정호, 김현수까지 모두 안타를 치며 모두를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대호 대타 3점 홈런, 포기했던 경기 되살린 시애틀, 10점차 점수 뒤집었다

이대호가 나오기 전까지 시애틀은 경기를 거의 포기한 모습이었다. 초반 대량실점 하며 2-12까지 점수가 벌어진 상황에서 역전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6회 4-12 상황에서 린드를 대신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시애틀은 1회 선취점을 얻으며 앞서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역전을 당한 시애틀은 샌디에이고에 의해 5회 폭격을 맞으며 2-12로 경기가 뒤집히고 말았다. 중반 무기력하게 대량 실점을 하며 무너지는 경우 역전은 쉽지 않다. 초반 대량 실점을 한 경우는 이닝이 많기 때문에 역전도 바라볼 수 있지만, 중반인 5회 7실점을 하며 오늘 경기도 샌디에이고에 내주는 듯했다.

완전히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애틀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6회 추가 2득점을 하며 4-12까지 만든 상황. 1사 2, 3루 상황에서 샌디에이고가 좌완 브래드 핸드로 바꾸자 시애틀 서비스 감독은 곧바로 이대호를 대타로 내보냈다. 린드가 최근 좋은 타격감을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대호로 바로 교체하는 모습에서 강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美프로야구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에서 홈런을 터트린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 4-12로 밀린 6회초 1사 2, 3루에서 애덤 린드 대신 타석에 들어서 좌월 3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샌디에이고<美캘리포니아주> AFP/게티이미지=연합뉴스)

전날 대패에 이어 다시 한 번 무기력한 패배를 당할 위기, 이대호는 좌완 핸드를 상대로 2B2S 상황에서 가운데로 몰린 82마일 브레이킹 볼을 놓치지 않고, 펫코파크 좌측 펜스 뒤 2층 상단을 맞추는 대형 3점 홈런을 쳐냈다. 이 거대한 홈런은 시애틀을 완벽하게 깨웠다. 만약 이대호의 대타 카드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시애틀은 그렇게 무너졌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시애틀의 상징이 된 카노가 놀라는 모습이 이채롭게 다가올 정도로 극적이면서도 엄청난 비거리로 다가온 홈런이었다. 이대호는 그렇게 매리너스를 깨웠다. 한국에서 시작해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온 이 거대한 빅보이는 플래툰 상황에서도 모두를 놀라게 하는 극적인 한 방으로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드러냈다.

5회 말 샌디에이고에 7실점을 하며 완벽하게 무너질 것 같았던 시애틀은 6회 이대호의 3점 홈런을 포함해 5득점을 하며 추격을 시작했다. 7-12까지 추격한 시애틀은 7회에도 다시 추격을 불을 지피는 한 방을 터트렸다. 2점을 추가해 9-12까지 추격한 상황에서 이대호 타석은 중요했다.

크루즈가 1사 1, 3루 상황에서 삼진으로 물러나며 추격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대호마저 적시타를 쳐주지 못하면 흐름이 그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점 차까지 추격하며 추가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이대호는 놓치지 않았다. 과거 마우어에게 홈런을 빼낸 적이 있었던 이대호는 이번에도 강했다.

이대호[AFP=연합뉴스]

마우어와의 대결, 풀 카운트 상황에서 96마일의 낮은 공을 놓치지 않고 밀어쳐 적시타를 쳐내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마우어의 승부구는 결코 나쁜 공도 아니었고 치기 쉬운 공도 아니었다. 낮고 빠른 공을 놓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밀어 적시타로 만드는 장면에서 이대호의 타격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잘 보여주었다.

꼭 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이대호는 놓치지 않았다. 이대호가 끊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적시타를 치며 시애틀은 거짓말 같은 기적을 7회 만들어냈다. 7회에만 무려 9득점을 하며 경기를 16-12로 뒤꾸었기 때문이다. 만약 이대호의 안타가 터지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대호는 오늘 경기에서 3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2득점을 올리며 시애틀을 구해냈다. 시거의 5타점에 이어 가장 많은 타점을 올린 이대호는 6회 대타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오늘 경기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는 순간 등장해 경기의 흐름을 샌디에이고에서 시애틀로 옮겨놓은 이대호의 극적인 3점 홈런에 이어, 7회 빅이닝을 만든 적시타는 말 그대로 팀을 깨우고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박병호는 3안타 경기를 펼쳤다. 왼발을 땅에 붙인 채 타격을 하며 위기를 벗어나 3안타 경기를 친 박병호는 완벽하게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그동안 타격 자세를 교정하고 난 후 펜스를 직접 맞추는 등 두 개의 2루타로 타격 본능을 되살렸다.

박병호[AFP=연합뉴스 자료사진]

김현수는 시프트 상황에서 텅 빈 3루수 방향으로 밀어 안타를 만들어냈다. 강정호는 극적인 2루타를 치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이치로의 호수비들이 안 나왔다면 강정호도 오늘 3안타 경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정도로 타격감 자체는 좋았지만 후반 결정적인 순간 해결사 본능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은 아쉬웠다.

오릭스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이대호를 애타게 기다린 이유를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그대로 보여주었다. 플래툰으로 경기에 나서고 있는 현실에 실망하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가치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빅보이 이대호의 존재감은 강렬함을 넘어선 그 이상의 가치였다. 경기장에서 울리는 "대호! 대호!"라는 함성은 그곳이 시애틀 홈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코리안 메이저리거 4명이 모두 안타를 쳐낸 흥미로운 날이었다. 긴 침묵을 깨고 3안타 경기를 치며 오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박병호를 살포시 밀어내버린 이대호의 강력한 한 방은, 시애틀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빅보이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경기였다. 시애틀 역사상 신인 대타 첫 2홈런을 쳐낸 선수가 되었다는 것도 즐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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