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어버이연합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서울 광화문광장의 맞은편에 있었고,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규탄하는 집회에 맞불을 놨다. 그때 언론은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전문시위꾼’으로 몰았고,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단체의 목소리를 키워냈다. 어버이연합이 과격한 발언과 퍼포먼스로 주목받은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가 ‘일대일’이 된 것은 분명 언론이 전폭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 절반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선전해온 어버이연합이 게이트에 휘말렸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재향경우회가 자금을 지원하고, 청와대 행정관과 국가정보원이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증거와 증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어버이연합 게이트’로 규정하고, 진상조사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시사저널과 JTBC 등 언론 보도, 그리고 어버이연합의 주장을 종합하면 지금까지 드러난 진상은 이렇다. 어버이연합은 2005년 허가가 취소된 벧엘선교복지재단의 계좌를 활용해 수억원의 돈을 전경련로부터 지원받았다. 이 돈 가운데 일부는 집회에 탈북시민들을 동원하는 데 쓰였다. ‘일당 2만원’으로 말이다. 그리고 어버이연합의 ‘맞불집회’ 기획 배경에 허현준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있다. 국정원은 어버이연합을 박원순 서울시장 등을 저격하는데 활용해왔다.

▲어버이연합이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진행하지 않자, 이를 비판하는 JTBC 기자의 모습 (이미지=미디어몽구. 이미지를 누르면 미디어몽구가 4월 24일 업로드한 영상 <어버이연합 기자회견 중 jtbc기자들 분노폭발>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밝혀진 것보다 앞으로 밝혀야 할 문제가 많다. 전경련 등으로부터 내려온 지원금은 확인된 것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중앙일보에 “2014년 전경련 사업 공모를 통해 벧엘선교복지재단을 거쳐 받은 돈이 매월 2500만~3천만원대”라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은 노인 급식사업을 위해 이 돈을 썼다고 밝혔으나, “사무실 2층엔 지역 노인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컵라면을 준비해놨다”는 수준이다.

또 청와대 행정관과 국정원이 보수단체 활동에 개입한 수준도 아직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청와대 행정관이나 국정원이 보수단체의 집회를 기획하고,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전경련과 재향경우회 등을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기획이 권력을 위한 여론전 차원에서 이뤄졌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를 꼬리가 많다. 이 말은 그만큼 언론이 더 많은 증언을 확보해야 하고, 자금줄-권력기관-어버이연합의 관계를 분석해야 하며, 의혹을 제기하고 책임을 촉구해야 하는 때라는 이야기다. 보수언론이고 진보언론이고 모두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상황이다. 중앙일보는 25일자 사설에서 “청와대는 행정관 한 사람의 대응에 모든 걸 맡긴 채 넘어갈 모양새”라며 “청와대는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있는 그대로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앙일보 4월 25일자 사설

그런데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일제히 입을 닫고 있다. 받아쓰기조차 않고 있다. 시사저널의 최초 보도가 있었던 4월 11일 이후 KBS는 어버이연합 게이트와 관련, 인터넷 등으로 9건의 기사를 내보냈지만 메인뉴스에서는 이를 다루지 않았다. MBC는 총 5건의 기사를 내보냈는데 정작 메인뉴스로는 보도하지 않았다. 재계가 연루되고 권력기관이 개입한 정황이 뚜렷한 문제에 사실상 침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KBS는 라디오에서 어버이연합 게이트 관련 뉴스를 브리핑한 기자를 하차시키기까지 했다.

공영방송의 침묵은 또 다른 의혹을 만들고 있다. 경향신문 25일자 신문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청와대·재벌·방송 합작품이었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KBS와 MBC가 어버이연합의 목소리를 비중 있게 보도해왔으면서 정작 두 방송사가 어버이연합 게이트와 관련해 보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그러면서 “어버이연합 배후에 청와대와 전경련이 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면 KBS와 MBC 역시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어버이연합 의혹은 정치공작과 정경유착을 넘어 언론공작 차원에서도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선희 사무총장 등 일부 활동가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분명한 동기가 있다. 이들이 한 단체에서 서로를 반박하는 증언을 밝히는 등 좌충우돌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어버이연합에 국가관이 뚜렷한 활동가들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공영방송은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내부에 그런 데스크가 있다 하더라도 공영방송사가 이런 ‘뉴스’를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다.

지금 권력에 가장 쓴소리를 하는 방송사는 JTBC다. 그리고 지금 방송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매체는 뉴스타파다. JTBC는 족벌언론 중앙일보가 최대주주로 있는 방송사이고, 뉴스타파는 KBS와 MBC에서 내던져진 기자와 PD들이 만든 비영리독립언론이다. 언제부턴가 두 공영방송은 언론계에서도, 시청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 두 공영방송은 자신이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공범’이 아님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내부에 싸워야 하고, 보도해서 권력기관을 흔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영방송이 생존할 수 있다.

▲경향신문 4월 25일자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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