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와 CJ가 어버이연합에 거액을 지원한 사실이 JTBC 취재결과 드러났다. JTBC가 보도한 3건의 리포트를 종합하면, SK하이닉스가 지난 2014년 4월 22일 어버이연합의 차명계좌에 5천만원을 입금했고 CJ 역시 같은 계좌로 2013년 8월 6일 1천만원을 입금했다. 입금 시기는 이 계좌에 만원 미만의 소액만이 남아 있던 때고, 입금 직후 이 돈은 곧장 탈북자 모집책, 집회버스 대절업체, 어버이연합 간부의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어버이연합은 이 돈을 불법시위 때문에 부과된 벌금을 내는 데에도 사용했다.

▲JTBC 2016년 4월 27일자 리포트 갈무리. 이미지를 누르면 리포트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거대 재벌이 어버이연합의 협박에 못 이겨 입금을 한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것일까. 두 기업의 해명을 보자. 이들은 어버이연합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돈을 지원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CJ는 당시 CJ가 보수인사를 희화화한 것에 대해 어버이연합이 ‘종북 CJ 규탄 집회’를 열었고 이를 달래는 차원에서 돈을 건넸다고 해명했다. SK하이닉스는 해명을 하지 않았지만 그 계좌의 실제주인이 어버이연합인줄 알았다고 했다.

어버이연합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받은 돈만 해도 드러난 것만 5억2천만원이다. 여기에 SK와 CJ로부터 받은 돈까지 더하면 5억8천만원이다. 억 소리가 나는 수준이지만 끝이 아닌 것 같다. JTBC가 입수한 차명계좌 정보에는 개별기업이 입금한 것은 SK, CJ뿐이라고 한다. 만약 계좌가 더 있거나, 대면해 직접 현금으로 건넨 사례가 있다면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규모는 이보다 커진다.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트위터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기업은 한국에서 ‘일진’이다. 시민단체가 제아무리 협박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돈을 줄리는 없다.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고, 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우용씨가 비유한 대로 “일진이 양아치에게 돈을 뜯기는 건, 양아치 배후에 진짜 힘 센 사람이 있을 때뿐”이다. 청와대 행정관과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이 공격 대상과 집회 날짜를 협의한 사실, 국가정보원이 보수단체들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사실은 이 의문의 스폰서십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버이연합의 ‘뒷배’를 찾아야만 이 게이트의 본질이 드러날 수 있다. 청와대는 ‘행정관의 일탈행위’로 꼬리를 자르려는 모양새고, 전경련 부회장은 출국해버렸고, 어버이연합 간부들은 잠적했다. 기업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나 아직 청와대-국정원-정경련-어버이연합은 입을 맞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게이트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시간, 언론이 이들의 관계에 균열을 내고 진실을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지상파방송사 등 주류언론은 여전히 미온적이다. 손석희 앵커의 표현대로, 워치독(Watchdog)이어야 할 언론은 지금 랩독(Lapdog)이나 가드독(Guard dog), 슬리핑독(Sleeping dog)이다. 어버이연합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 여론의 절반이라고 추켜세운 언론들은 이번에도 침묵하고 있다.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내부자들이 될 것인가. 언론, 특히 지상파는 자신이 공범이라는 혐의를 벗기 위해서라도 중개인과 뒷배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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