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도면 훌륭하다”

EBS감사로 새로 선임된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에 대한 정부여당 추천 방통위원들의 반응이다. “역사시장에도 뉴라이트가 살아나야 한다”는 등 극우 역사교과서를 옹호한 전력으로 논란돼 EBS 구성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던 배인준 전 주필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 추천 3인 대 야당 추천 2인으로 구성된 방통위 의결을 무난히 통과했다. 이 회의는 ‘인사’를 다루는 특성상 비공개로 진행됐다. 결정 직후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19일 오전 회의를 열어 EBS 신임 감사로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을 선임했다. 야당 추천 2인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다수결로 처리됐다.(▷관련기사 : 방통위, ‘이념편향’ 논란 배인준 씨 EBS 감사로 선임)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합의제 원칙을 존중하라”며 이후 진행되는 비공개 간담회(tea time) 전체를 보이콧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장 오는 22일로 예정된 간담회에도 불참하겠다는 입장이다.

MBC녹취록 방관 등 그동안 쌓였던 불만 표출…“티타임 보이콧”

▲ 방통위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사진=연합뉴스)

방통위 야당 추천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2시 45분 경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17~18세기식 사고”라면서 “19세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 다수의 횡포와 독재를 경험한 이후 현대 민주주의는 토론과 협상에 의한 합의제 원칙을 의사결정 방법으로 더 우위에 두어 왔다”고 강조했다. 다수 의견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과 배려, 비토권은 인정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들은 “방통위와 같이 ‘합의제’ 원칙에 따라 운영하도록 요구돼 온 기관은 단순 다수제가 조직운영의 기본이 되어선 안 된다”며 “그런데, 지금 방통위는 다수결 원칙만 횡행하고 있을 뿐 ‘합의제 의사결정 규범’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통위가 그동안 처리해왔던 △방송평가규칙 개정, △MBC녹취록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 방관, △EBS 신임 감사 선임 등을 문제로 꼽았다. 그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는 얘기다.

이들은 비공개 간담회(tea time) 보이콧을 선언했다. 방통위는 그동안 비공개 간담회를 통해 사전 의사를 조율해왔다. 이 과정에서 소수 상임위원들의 주장이 묵살돼 왔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재홍·고삼석 방통위원은 이제부터는 공개적으로 운영되는 전체회의만 참석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모든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특히, 안건에 대한 사전조율 등 원활한 위원회 운영을 명분으로 유지되고 있는 위원 간담회(Tea Time)는 ‘최소주의 원칙’ 하에 운영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최소한의 안건을 제외하고 모든 안건은 전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의 반대 발언을 순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용돼 온 위원 간담회에 참석하는 것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위원회간담회 재검토, △최성준 위원장이 방통위를 대표에 참석하는 외부회의(국무회의 및 차관회의/부처 간 협의회/국회 상임위 소위 등)에 대한 결과 공유, △방통위 인사위원회 개선(위원장 독단), △합의제 원칙에 따른 운영을 위한 <방송법>, <방통위설치법> 규정 개정 착수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방통위 사무처 운영에 있어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며 “<방통위설치법>은 위원장이 위원회 소관 사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것이 합의제 운영원칙보다 우위에 있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위원들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수적 우위로 밀어붙여”…언론노조, 공정한 인사 재선임 촉구

야당 추천 고삼석 상임위원은 EBS 배인준 신임 감사 선임과 관련해 “월요일(15일)에 공개해서 4일만에 임명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며 “적임자라면 그럴 수 있지만 며칠 검토해보니 적임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단수로 놓고 가부 결정할 게 아니라, 폭넓게 새로운 인물을 물색해보자고 했는데, 돌아온 답은 ‘벌써 한 시간 반이나 논의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반응이었다”고 지적했다.

고삼석 상임위원은 “EBS 감사 선임은 4개월이나 지연돼 왔던 건 사실이지만 우리 때문이 아니었다. 여기에 며칠 연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래서 ‘퇴장하라는 거냐’, ‘내가 들러리냐’라고 이야기했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을 그림자 취급하는 걸 더 이상 지켜 볼 수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 또한 같은 날 배인준 EBS 감사 선임과 관련해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으로 드러난 국정원 댓글사건은 옹호하는 등 특정 정치세력에 편향된 인사로 방송법과 교육방송법이 명시한 EBS의 정치적 독립성과 공정성 실현에 부적합할뿐더러 교육 및 방송에 대한 전문성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면서 “EBS 뉴라이트 감사 선임 의결을 당장 취소하고 공정한 인사로 재선임하라”고 촉구했다. 무엇보다 EBS 회계 전반에 대한 감사 권한을 가지고 있어 프로그램 개입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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