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이 2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감사 임명장을 받았다. 그는 과거부터 꾸준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고, 보수정권과 뉴라이트 역사관을 옹호해왔으며, 야권과 전교조 등을 강하게 비난해온 보수인사다. 그가 쓴 수많은 칼럼으로 분류하자면 그는 '자유민주주의자'다.

배인준 전 주필이 공영방송 임원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이 ‘이념적 편향성’을 지적하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성준 위원장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지난달 1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결을 강행했다. 방통위는 티타임에서 명단을 공유하고 이후 전체회의에서 고작 1시간 반 동안 임명 여부를 토론했을 뿐이다. 방통위 내에서는 “상임위원들이 직접 고른 인사라면 더 협의할 수도 있다. 임명을 강행한 것은 청와대로부터 오더가 내려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까지 나왔다.

2일 과천정부청사 내 방통위 회의실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이 반쪽짜리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회의실 밖으로 “제가 추천한 만큼 잘 해주시길 바란다”는 김석진 상임위원의 덕담(?)과 박수 소리가 들렸으나 김재홍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결국 반쪽짜리 환영회였던 셈이다. 배인준 신임 감사는 행사가 끝난 뒤 김재홍 부위원장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고, 고삼석 상임위원에게도 30여초의 짧은 인사 정도만 건넸다.

고삼석 위원은 이날 ‘왜 임명장 수여식과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것에 대해 승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라며 “김재홍 부위원장과 나는 ‘배인준 전 주필은 역사관과 교육관에 논란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공영방송 이사로 적절치 않다’고 했으나 최성준 위원장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1시간 반 논의하고 ‘충분히 논의했다’며 의결을 강행했다”고 말했다.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EBS 감사 선임 과정 등을 거론하며 방통위 정상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방통위 내부 문제 등으로 냉랭한 분위기에 방통위를 방문한 터라 배인준 EBS 신임 감사는 환영받지 못했다. 그를 안내하던 방통위 관료는 “감사님 때문은 그런 것(방통위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달랬지만 배인준 감사는 끝내 김재홍 부위원장은 만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EBS 안팎에서 배인준 감사를 두고 ‘부적절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그의 언론관과 역사관 때문이다. 그에게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KBS와 MBC는 정권과 좌파, 그리고 노조를 위한 방송이었고 ‘민주공화국의 적’이었다. 그는 ‘친일사관’으로 논란이 돼 낙마한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를 옹호하기도 했다. 뉴라이트 역사관과 교학서 교과서를 적극 방어하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난하는 글을 쓰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박근혜 정권과 “이해가 대강 일치”한 글을 써왔다. 그는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여론조작 파문이 이어지던 2013년 테러방지법 등을 제정해 국정원을 권한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2007년 대선 경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과 태도, 이념과 철학을 높이 평가해왔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추켜세우는 글도 썼다.

▷관련기사 <‘우편향’ 배인준 EBS 감사, 무슨 글 써 왔나 ① 언론관 / 교육관 / 역사관>
▷관련기사 <EBS 배인준 감사 과거 글보니 “박근혜, 빛났다” ② 이념편향적 발언 /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언급>

미디어스가 배인준 감사 임명장 수여식을 취재한 이유는 ‘언론관·역사관이 여전한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인준 감사는 말을 아꼈다. 미디어스는 그에게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에게 환영 받지 못한 소회’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 ‘KBS와 MBC 등 언론에 대한 인식’ 등을 물었으나 그는 대답을 꺼렸다. 오히려 질문하는 기자에게 “(나를 비판하려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질문한다”는 식이었다.

배인준 감사는 앞으로 3년 동안 EBS 이사회 내 포진한 뉴라이트 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찬성론자와 함께 일하게 됐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르면, EBS 감사는 공사의 업무 및 회계에 관한 사항을 감사하고, 이사회에 출석해 EBS 업무와 관련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 아마도 그는 자리만 지키다 다른 자리로 옮기는 과거 감사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가 어떤 과제를 부여받고 EBS에 내려왔는지는 주목해야 한다. 그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제작진에 대해 어떤 발언과 조치를 취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 배인준 EBS 신임 감사는 지난 2008년 제5회 ‘서울대 언론인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그는 동아일보 논설주간이었다. 그는 “좌파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통렬한 비판의 길을 걸어온 진정한 저널리스트”라는 평가를 들으며 이 상을 수상했다. (사진=미디어스)

다음은 2016년 3월 2일 오전 미디어스가 배인준 감사와 나눈 대화다.

미디어스 : 감사님, 미디어스 박장준 기자입니다.

배인준: 아, 네네.

미디어스: 감사 임명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짧게라도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배인준: 아, 잠깐만. 그동안 나에 관해서 기사를 썼던가요?

미디어스: 아니요. 제가 쓰진 않았고요, 저는 방통위 출입기자로 방통위 내 문제에 대해….

배인준: 예예.

미디어스: 오늘 자리만 해도 야당 추천 상임위원들의 환영은 받지 못했는데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배인준: 그동안 나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나에게 아무런 컨펌이 없었는지 궁금하고, 지금은 내가 공무를 순차적으로 진행해야 하니까 다음 기회가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미디어스: 하나만 여쭤보려고…

배인준: 여기까지만 할게요.

미디어스: 신문 출신으로 방송에 문외한이 아니냐, 그리고 그동안 써온 글들이 편향됐다는 지적이 일부에서 나왔습니다.

배인준: 누구나 다 생각의 자유가 있으니까.

미디어스: 노무현 정부 시절 KBS, MBC 같은 공영방송이 정권에 편향된 방송이라고 하셨는데.

배인준: (인터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이렇게 지나가는 말로.

미디어스: 저는 지나가는 말로 여쭤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물어보는 겁니다.

배인준: 여기까지만.

미디어스: 감사님, 하나만 여쭤볼게요.

배인준: 뭔가를 취재하려면 나름대로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시선을 가지고 하셔야지 의도를 가지고 하시면 좋아하는 사람이 없죠. 그동안 나왔던 내용들이 옳다고 생각합니까.

미디어스: 아니,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인준: 내가 오는 취임하는 날이라 그런 이야기까지 할 정도의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다음 기회에.

미디어스: 지금 EBS 최대쟁점 중 하나입니다.

배인준: 그런데 어느 매체라고 하셨는지.

미디어스: 미디어스입니다.

배인준: 관심과 내가 해야 할 일의 순서가 있으니까.

미디어스: 평소 생각을 말씀하시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 않을까요?

배인준: 말이라는 것은 어떤 계제에 하는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미디어스: 그러면 그동안 써왔던 글들이 평소 생각이라고 보면 되는지요?

배인준: 써왔던 글들을 제대로 읽어나 보셨어요?

미디어스: 저도 열심히 계속 읽고 있습니다.

배인준: 그 글을 사적 관점 가지고 또는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돼요, 언론은. (청사 밖으로 퇴장)

미디어스: 나중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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