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라는 제목은 오히려 이 드라마 시그널에 붙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4회까지 경기남부살인사건을 다룬 시그널이 찾은 과거, 아니 기억은 대도 조세형 사건과 성수대교 붕괴였다. 물론 그 사건들 그대로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대로 했어도 좋았겠지만 아니어도 문제는 아니었다. 어떤 부담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에게 분명 부담감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맥락은 흐리지 않았다. 부잣집만 털어 의적으로까지 미화되었던 대도 조세형은 드라마 시그널에서 아내 없이 딸을 키우는 대단히 서민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것도 이미 범죄와는 인연을 끊고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처음에 그를 붙잡은 형사 이재한과 호형호제하는 사이까지 됐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 즈음에 다시 대도가 등장했다. 회장님집만 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기분을 좋게 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러자 경찰은 발칵 뒤집혔다. 형사 수십 명이 며칠씩 잠복을 해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무려 6년 만에 다시 박해영과 교신이 된 이재한은 미친 척하고 미래의 형사라는 박해영에게 대도의 정체를 묻는다.

그러나 박해영은 범인을 알려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한 그 사건은 범인이 잡히지 않은 미제사건으로 처리되었다. 그렇지만 이재한이 하도 간절하게 물어오니 사건기록이 아닌, 기사를 토대로 프로파일링한 내용을 이재한에게 전달했다. 박해영으로부터 프로파일링을 들은 이재한은 범인을 단정했다. 과거 대도 사건의 전력이 있는 오경태(정석용)를 범인으로 체포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 바람에 오경태의 딸은 평소와 달리 버스를 타야 했고, 그때 다리가 붕괴되면서 버스가 추락하고 그만 죽게 된다. 오경태가 범인이라 할지라도 엄청난 비극이고, 아니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참극이 된다. 그리고 그 후 20년이 흘러 오경태는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아주 허술한 납치를 저질렀다. 의도적으로 지문을 남기고, CCTV에 얼굴도 찍혔다.

이쯤 되면 누구나 오경태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가 있다. 막바지에 다시 박해영과 이재한이 교신하는 장면에서는 이재한이 다시 눈물을 흘리며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자책하는 모습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오경태는 경찰에 의해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것이고, 딸의 목숨까지 잃은 더 없이 억울한 사람인 셈이다. 그렇다면 오경태의 납치는 분명 그 원한에 의한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왜 경찰이 아니라 일반인을 납치했을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하고, 그 궁금증은 6회에 대한 강한 기대감이 되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것은 박해영과 이재한이 사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게 되면 꼭 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재한의 첫사랑 김원경이었고, 두 번째는 오경태의 딸이었다. 심지어 5회의 OST는 펄 시스터즈의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이재한은 왜 친형처럼 지내던 오경태를 범인으로 오인했을까? 그 해답은 이재한이 아닌 차수현이 말해주었다. 박해영과 오경태 납치사건으로 말다툼을 하다가 차수현은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의 고통도 모르면서 경찰을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해”라고 한다. 이재한은 대단한 열혈형사다. 위에서 쪼아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범인을 잡고 싶다는 열정과 의지가 강해서 범인을 잡지 못할 때의 고통이 누구보다 클 것이다.

그 열정과 고통이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예상된 함정이다. 나쁜 경찰이 꼭 부정한 경찰은 아니다. 의지와 권력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언제든 본의 아닌 나쁜 경찰이 될 수 있다. 이재한은 그렇게 본인이 전혀 원치 않은 나쁜 경찰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을 과연 공권력의 필요악적 요소라고 말을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다.

▲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

그런데 이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문득 떠오르는 불길한 예감이 있다. 박해영과 이재한이 교신을 하면 반드시 누군가 죽는다는 것이다. 아직 이재한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차수현은 그를 잊지 않고 찾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박해영이 그 이재한과 교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교신의 대가일지 아니면 저주일지 모를 결과로 사람이 죽는데, 그 사람이 마지막에는 혹시 차수현, 이재한, 박해영 이 셋 중 누군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다.

한 번도 밝아본 적이 없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동화적 결말은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주인공이 죽는 결말까지는 생각하기 어렵지만 왠지 이 드라마는 그럴 가능성을 열어둔 것만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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