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중문화의 키워드는 분노였다. 사회를 지배하는 분노는 자연스럽게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발현되었고, 올해도 그런 기조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총선이 있고 그 뒤 대선을 위한 행보로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2015년 영화 <베테랑>의 조태오가 있었다면, 올해는 <리멤버-아들의 전쟁>에 등장하는 남규만이 그 역할을 이어간다.

악인에 열광하는 사회;
2015년 조태오에 이어 이제는 남규만의 악인 열전이 펼쳐진다

연말 시상식으로 인해 결방됐던 <리멤버-아들의 전쟁>가 다시 정상 방송이 되기 시작했다. 유승호 팬들에게는 너무 긴 2주였을 듯하다. 그렇게 돌아온 이 드라마에서도 이젠 하나의 트랜드처럼 자리하기 시작한 악인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공공의 적처럼 여겨지는 사악한 재벌가의 이야기는 2016년에도 여전히 강렬함으로 다가온다.

병적으로 모든 것들을 사진처럼 기억해 언제든 필요할 때 뽑아서 사용할 수 있는 서진우는 억울하게 살인마로 전락한 아버지를 위해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남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남규만을 향해 나아갔다.

남규만을 응징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과 달리, 알츠하이머에 시달리는 아버지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철저하게 방치된 서재혁은 이제는 아들에 대한 기억조차 잊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끔씩 기억을 되찾아 진우를 알아보고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였지만 자신에게 아들이 있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재혁을 바라보는 진우는 서럽기만 하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남규만을 무너트리기 위해 일호생명 부사장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준 진우는 그래서 표적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은 치워야만 속이 편해지는 남규만의 아버지 남일호에게 진우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일호그룹 회장인 남일호는 철저하게 자신의 아들을 위해 살아간다. 아들이 잔인한 살인마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대한 기업을 이끌기 위해서는 그 정도로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다. 괴물이 커가는 데에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남일호가 하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 불쾌하기만 한 남일호와 남규만은 분노한다. 다혈질인 규만은 그런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 진우를 죽여서라도 사라지게 만들고 싶어 하는 규만. 그런 규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도발하는 진우는 거칠 것이 없었다.

미친개를 조련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맞서서 제압하려고 한다고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진우의 선택은 무모해 보인다. 이미 한 차례 호되게 당한 상황에서도 진우는 복수를 멈추지 않았다. 일호 일가에서 내친 일호생명 부사장을 구해내고 그 대가로 비리 사실을 얻어냈다. 충실하게 자료를 모아 그들을 무너트리는 것만이 아버지를 구해낼 수 있는 최선이다.

더디지만 차근차근 자료들을 모아갔고, 남규만의 여동생인 남여경에게도 다가선다. 복수를 위해서는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정도인 진우에겐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일하게 자신과 아버지를 믿어주었던 인아만이 이 전쟁에 함께하지 않기를 원하는 진우. 그런 진우와 달리 정의감이 투철한 검사 인아는 본격적으로 4년 전 '서천 여대생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인아는 서재혁 면회를 갔다. 진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있는 그를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치료가 정상적으로 되지 않으며 아들 진우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끔찍해 보였다.

교도소 담당 의사를 찾아가 분노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왔다. 인아의 이런 행동에 부장검사인 홍무석은 분노했고, 그에게 미제사건들을 떠안기며 4년 전 사건에서 발을 빼게 만들었다. 서재혁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홍무석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시를 받고 현장에서 사건을 조작한 강력계 곽한수 형사는 오직 재물에만 눈에 어두운 존재일 뿐이었다.

남규만을 위해서라면 충실한 개가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검사와 형사. 이 조직적인 연결고리는 낯설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실제 현실에서도 이런 상황을 익숙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돈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서 부당한 권력이 구축되었다. 이제 세상은 돈을 가진 자들의 것이 되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더는 탈옥범의 외침이 아닌 우리 사회의 변할 수 없는 진리로 자리를 잡았다. 돈이 있으면 죄인도 죄인이 아닌 세상. 현직 기자 맷 타이비가 쓴 <가난은 어떻게 죄가 되는가>는 이런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고착화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대중문화는 이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며 비난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크게 성공한 작품들 중 사회 비판을 앞세운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한다. <<리멤버-아들의 전쟁> 역시 명확하게 이런 사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이들의 노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베테랑>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진우는 4년 전 허위 자백을 했던, 아버지의 동료였던 전주댁을 찾아간다. 위증에 대해 번복해달라는 진우의 부탁은 결과적으로 전주댁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박 변호사가 경고했듯 상상을 초월하는 일호그룹 부자들의 행동은 경악스러웠다. 아들과 아침 식사를 하면서 "사람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잘 바꿔 쓰기만 하면 된다"는 남 회장의 발언은 우리 노동환경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노동자와 '함께'가 아니라 오직 '도구'로만 생각하는 현실에서 남 회장 부자의 행동은 너무나 섬뜩하게 다가온다. 실제 재벌의 '매값 폭행'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재벌가 아들이 벌인 황당한 행동은 영화 <베테랑>에서 그대로 차용되기도 했다.

남규만 역시 조태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서에게 전주댁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만 더는 악행을 할 수 없다는 안수범을 죽기 직전까지 패는 남규만에게 자신 외의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는 자신의 앞길을 막는 조그마한 티끌이라도 치워버리고 싶을 뿐이다.

살인 청부업자를 시켜 전주댁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현장으로 진우를 이끈 그들, 이미 남규만의 개가 되기를 자청한 곽한수 형사는 그를 살인범으로 잡으려 한다. 붙잡히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억울한 누명을 쓸 수밖에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진우는 도주를 시작한다. 유망한 변호사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으로 지명수배를 받게 된 진우는 그렇게 복수를 시작했다.

▲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
그런데 진우를 위기에 몰아가는 과정이 어색하다. 어떻게든 뜯어 맞추며 그럴 듯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한 전개를 시작한 작가의 선택이 아쉽기만 하다. 복수의 방식이 다양하게 있겠지만 그가 선택한 복수는 손현주가 열연했던 드라마 <추적자>의 방식으로 다가온다.

치밀하게 짜여진 <추적자>와 달리 형식만 유사한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무리한 전개로 보인다. 변호사라는 직책을 가지고 도망자가 되어 진범을 추적하는 진우의 선택이 과연 어떤 재미의 힘과 몰입도를 갖춰나갈지 모를 일이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바로 남규만이다. 잔인한 살인 본능을 타고 난 일호그룹의 아들 남규만은 우리 사회 비뚤어진 권력을 형상화했단 점에서 반갑지만 이제는 너무 익숙하게 다가온다.

잔인한 재벌 2세인 남규만을 연기하는 남궁민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잔인하고 비열한 인물인 남규만이라는 캐릭터는 남궁민의 연기에서 완벽하게 살아나고 있다. 악당에게 열광하는 사회. 그렇다고 악당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듯한 모습을 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현대 사회의 악당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그 악당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말이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 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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