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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오케피’, 중년 관객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배꼽 분실’ 뮤지컬[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5.12.21 15:13

2015년 한국 뮤지컬계의 겨울은 ‘죽은 신작의 사회’(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패러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작 뮤지컬이 궤멸 상태에 빠졌다. 알고 보면 작품성이 검증된 재연작을 올린다 해도 사연이 제각각이다.

이를 테면 A 뮤지컬은 초연 당시 일어난 세월호 사고의 여파로 몇 십억 원의 적자를 낸 관계로 이번 재연을 통해 적자를 만회해야 하는 사연이 숨겨져 있다. B 뮤지컬은 연출가의 아내가 출연하는 캐릭터의 분량을 이전보다 부풀리는 바람에 초연보다 루즈해짐으로 말미암아 다운그레이드되는 부작용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재연되는 뮤지컬도 안정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태에 다다랐는데, 하물며 신작 뮤지컬에 손을 댄다는 게 뮤지컬 제작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위험천만한 작업이겠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뮤지컬 <오케피> 컨덕터 역 황정민, 하프 연주자 역 윤공주 ⓒ샘컴퍼니
황정민의 ‘모험’이 아니었다면 올 겨울 뮤지컬계는 신작 뮤지컬이 멸종된 사태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황정민은 안정주의 대신에 과감한 선택을 감행했다. 일본 뮤지컬 <오케피>를 국내 최초로 선보임으로 신작 뮤지컬의 전멸 사태를 방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웃음의 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 작가 미타니 코우키가 만든 <오케피>는, 뮤지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이면서 동시에 관객이 잘 모르는 ‘오케스트라 피트’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코믹하게 그린 뮤지컬이다.

   
▲ 뮤지컬 <오케피> 공식 포스터 ⓒ샘컴퍼니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면서 동시에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모르는 오케스트라 피트는 관객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숨은 공로자다. 올해 상반기 <로빈훗>의 1막에서 유준상이 칼싸움을 연기하다가 10 바늘을 꿰매고, <팬텀> 1막에서 류정한이 다치는 바람에 카이로 급하게 교체된 것처럼, 뮤지컬 배우의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변수나 컨디션에 따라 오케스트라 피트는 즉석에서 키를 높이거나 낮추고 때로는 박자도 새로 짜 맞춰야 하는 애로점을 겪는다.

자신들이 주체가 되는 게 아니라 연출진과 배우의 다양한 변수에 맞춰야 하는 숨은 공로자가 오케스트라 피트이다. 관객들로선 이들의 노고를 알 도리가 없기에 오케스트라 피트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없어서는 결코 안 되는 숨은 공로자로 자리잡는다. 오케스트라 피트의 이런 다양한 애로점을 아는 뮤지컬 배우라면 <오케피> 가운데서 펼쳐지는 다사다난한 상황을 보며 일반인 관객보다 십분 공감이 가능하리라 짐작한다.

황정민과 오만석이 연기하는 컨덕터는 12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아우를 줄 아는 정신적인 선장이다. 별거 중인 아내 바이올린을 달래는 것도 모자라 다양한 사연을 가진 11명의 단원 모두의 처지를 헤아린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기에, 뮤지컬을 보면서 오케스트라 컨덕터의 노고에 절로 경의를 표하게 된다. 참고로 실제 오케스트라 피트의 단원수는 뮤지컬처럼 12명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오케피>는 남자들의 착각이 여자의 속마음과는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보여주는 ‘남녀 심리 설명서’이기도 하다. 컨덕터와 기타는 윤공주와 린아가 연기하는 하프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하프는 기타와 컨덕터에게 잘해줄 뿐 이성적으로 접근할 생각을 갖지 않는 여성이다.

하프의 오지랖 넓은 대인관계는 기타와 컨덕터로 대변되는 남자로 하여금 여성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오케피>라는 코믹 뮤지컬은 여자가 남자에게 잘 대해준다고 해서 여자가 남자를 이성적으로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남녀 심리의 차이점을 보여주기에 <오케피>는 ‘남녀 심리 설명서’로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 뮤지컬 <오케피> 색소폰 연주자 역 정상훈, 트럼펫 연주자 역 김재범 ⓒ샘컴퍼니
김재범의 시크한 매력은 관객의 배꼽을 스틸하는 배꼽 스틸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12명의 다양한 오케스트라 피트 단원과 컨덕터의 개그에 활력소를 더해 넣는 건 목소리만으로 출연하는 홍지민의 보이스 덕분이리라. 올 겨울 유일한 신작으로 기대를 모았던 <오케피>는 필자의 뒷자리에 앉은 중년 관객도 웃음을 절제하지 못하는 ‘배꼽 분실’ 뮤지컬로 자리매김하기에 충분한 블루칩 뮤지컬이다.

단, 기존에 익숙한 쇼뮤지컬과는 달리 이번 뮤지컬은 연극처럼 대사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키사라기 미키짱>이나 <너와 함께라면>과 같은 일본식 유머에 익숙하다면 <오케피>를 200%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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