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국 간부들이 세월호 특조위의 공개 청문회 보도를 요구하는 기자협회장의 제안에 대해 “편집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KBS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3일 동안 열린 청문회 소식을 메인뉴스에서 단 2개의 단신으로만 처리한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권오훈, 이하 새 노조)에 따르면 16일 열린 보도본부 아침 편집회의에서 이병도 기자협회장은 ‘세월호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하는 보도를 하는 게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14~15일 양일 간, KBS <뉴스9>에서 나간 청문회 소식은 <세월호 특조위, 제1차 청문회…해경 대응 질의>라는 두 문장짜리 단신 1개뿐이었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의혹을 해소하고 진상규명을 하기 위한 청문회를 생중계하지도 않고 보도조차 부실했던 탓에 방송의 공적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 KBS <뉴스9>는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공개 청문회 소식을 3일 동안 단 2건의 단신으로 처리했다. 사진은 14일 <뉴스9> 간추린 단신 일부.

그러나 이 같은 제안에 정지환 보도국장은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라고 발언했고, 다른 간부들 역시 정지환 보도국장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협회장이 “편집권을 존중한다. 참고해 달라는 의견 개진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보도국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 노조는 17일 성명을 내어 현업 기자들의 목소리를 위축시킬 있는 사측의 ‘편집권 침해’ 주장을 비판했다. 새 노조는 “세월호 사건이 어떤 사건인가? 불과 1년 반 년여 전 몇 달 간에 걸쳐 온 나라를 슬픔에 빠지게 하고, 이에 대한 보도를 제대로 하지 못해 KBS의 사장까지 물러나야 했던 사건이 아니었던가?”라며 “기자협회장은 지극히 상식적이고도 정당한 문제제기와 제안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편성·보도·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KBS <방송편성규약>(이하 <편성규약>)에 따른 정당한 의견 개진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편성규약> 제15조(편성규약의 효력)는 “편성규약은 단체협약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회사와 조합은 이를 성실히 준수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편성규약>에 근거해 운영되는 보도본부 본부별 편성위원회인 보도위원회의 ‘운영 세칙’에도 기자협회장의 역할이 잘 나타나 있다. 운영 세칙에는 “보도본부 내 뉴스 기획·편집회의에 평기자 대표가 참여한다. 평기자 대표는 편집회의 이외에 뉴스 최종 편집과정에서 실무자들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고, 당시 보도본부장과 기자협회장은 이 내용에 공식 서명한 바 있다.

새 노조는 “다른 어느 곳보다 자유로운 언로가 보장돼야 할 언론사 내에서 평기자 대표가 편집회의에서 보다 나은 뉴스를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내는 것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할 텐데, 20명이 넘게 참석하는 부장들이 협회장 한 명의 의견제기를 압박으로 느끼고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언론사고 언론인들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새 노조는 “<방송법>에 근거해 제정된 <편성규약>을 무력화하려는 사측의 어떠한 도발에 대해서도 단호히 맞설 것이다. 취재 및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편성 규약’을 취재 및 제작에 대한 데스킹을 강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개정하려는 고대영 사장과 사측의 시도에 대해서 모든 역량과 수단을 동원해 맞서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년 전에도 제기된 ‘편집권 침해’ 주장… “평기자 목소리 전달, 불편해하는 듯”

2년 전에도 KBS 보도본부 간부들은 기자협회장이 평기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크게 반발했었다. 천안함 3주기였던 2013년 3월 26일, KBS는 ‘천안함 피격 3년 특집 오프닝’을 시작으로 <"제2의 천안함 피격은 없다"…서해 기동 훈련>, <북 "천안함 날조극" 되풀이…국가급 군사훈련>, <천안함 이후 북 도발 양태 다변화…의도는> 등 총 12개의 리포트를 방송했다.

당일 아침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함철 당시 기자협회장은 △리포트 숫자가 과도한 점 △호전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는 점 등을 지적했다. 내부에서도 당일 전체뉴스의 1/3을 차지할 만큼 보도량이 많았고, 천안함 1주기(5개), 2주기(3개)와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양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그럼에도 KBS 보도본부 국·부장단 일동은 연대 성명을 내어 “보도위원회 운영세칙상의 ‘편집회의 참석’을 빌미로 9시 뉴스 편집에 간섭하려는 기자협회장의 시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며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서 뉴스기획과 편집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편집권의 침해 정도가 아니라 초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보도본부 간부들이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발언을 문제 삼아 성명을 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편집회의 참석자 20여명 가운데 평기자 대표는 기자협회장 1명임에도 보도본부 간부들이 “편집회의에서 기자협회장이 발언하면 부장들이 외압으로 느낄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당시 KBS기자협회는 “그동안 일부 간부들이 편성규약, 보도위원회 시행 세칙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한 적은 있었으나 이번처럼 기자 대표의 ‘의견 제시권’을 부정한 일은 없었다”고 꼬집은 바 있다.

2013년, 2015년 2차례에 걸쳐 일어난 논란에 매번 정지환 국장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편집권 침해’와 ‘부장 외압 우려’를 주장한 정지환 보도국장은 2년 전 편집주간이었다.

이병도 기자협회장은 17일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7월부터 (아침) 회의에 들어갔는데 그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전임 보도국장과 다른 부장들은 의견을 들어주고 용인해줬다. 이번 신임 보도국장 체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며 “과거에도 (협회장의 의견 제시에 대해) 강하게 문제제기하셨던 분인데, 여전히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어, “평기자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KBS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편집회의에서의 보도국장 입장은 과거부터 반복되어 온 기자협회장 아이템 관련 발언이 편집권 침해임을 명확히 고지한 것이지 당일 논의된 특정 아이템(세월호 청문회) 보도 적절성 여부를 놓고 벌인 입장차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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