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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온 나는 중학교에 없었던 모의고사를 보면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변화를 보며 일제고사가 이런 시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중학교 때의 아이들은 그게 허풍일지언정 에너지가 있다. 자신이 대통령, 교육부 장관, 축구선수, 연예인, 카피 라이터, 드라마 작가, PD, 요리사 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나중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부는 한 중간쯤 해도 그렇게 기죽어하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 속에 나오는 기를 통제하는 것이 사실 중학교 교사의 힘든 점이다. 어떤 때는 아이들의 그러한 기를 견디지 못해 애들이 차라리 자기라도 했으면 싶지만, 아이들은 자지 않는다.
그런 중학교 교사로서 생활을 뒤로 하고 올해 고등학교에 왔다. 나는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중학교에서 갓 올라온 아이들과 함께 고등학교 생활에 적응하는 셈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의욕으로 가득차 있었다. ‘성적 올려 좋은 대학에 가보겠다’ ‘동아리 활동 등 여러 가지 재밌는 활동들도 해보겠다’ ‘남자 친구도 사귀어보겠다’…. 그렇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왔던 아이들의 기를 가장 먼저 죽이는 것은 3월 모의고사이다. 그래도 중학교 내신으로 중간이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변두리 학교의 중간은 전국 꼴찌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고, 중학교 때 90점이 넘는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은 전국적으로는 내가 중하위권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꿈꾼 대통령, 교육부 장관, 축구선수, 연예인, 카피 라이터, 드라마 작가, PD, 요리사 등은 수도권 근처의 4년제나 전문대를 나와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모든 꿈은 ‘in 서울’로 수렴된다. 아이들이 꿈이 없는 것은 정말 꿈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제고사를 통해 자기가 꿈을 꿀 자격도 없고 필요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아이들은 학교 좀비 생활을 시작한다.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하는 아이들대로 ‘경쟁의 신’에 영혼을 판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입시능력을 올려주는 곳은 학원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내신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수업을 들으며, 수행평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하지 않고, 수업 외에 선생님이 뭔가 얘기를 할 때는 단어장을 꺼내든다. 학원에서 공부를 집중하기 위해 잠을 청하기도 한다. 공부를 안하는 아이들은 ‘태업의 신’에 영혼을 판다. 학교 밖을 나가 있는 시간에, pc방이나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에, 아르바이트 시간에 살아있기 위해 학교에서는 정말 단 한 시간도 깨지 않고 자기도 한다. 아니면 학교에서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괴롭히며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즉 학교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좀비’로서의 존재이다. 졸업장을 따기 위한 매트릭스에 일시적으로 몸의 회로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좀비’로 살기를 강요당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이런 스트레스를 약한 존재를 공격함으로써 해소하기도 한다. 가끔씩 신문을 떠들썩하게 하는 10대의, 끔찍한 범죄나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왕따나 학교폭력은 ‘좀비’로서의 삶을 강요당하는 아이들의 공격이다. 이런 일제고사가 초등학교에 부활하는 것은 17살 때부터 좀비로 사는 아이들을 10살 때부터 좀비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의 생명력을 빼앗아 피가 돌지 않는 하얀 좀비로 만들고 있으니, 앞으로 이들의 복수는 더 끔찍해질 것이다.
10명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어쨌든 일제고사의 날은 왔고, 나는 이틀 전에 학교 앞에서 하교길의 아이들에게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이 일제고사날 함께 등교거부의 행동을 하자는 선전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일제고사 날에는 시감을 거부하지는 못하고 아이들에게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알리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쓰고 조퇴를 했다. 몇몇 아이들이 나와 함께 조퇴를 하고 싶어했지만 무단조퇴가 입시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나 혼자 니네 몫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학교에서 배운 것> 인생의 일할을 오랜만이구나. 중간고사를 맞이하여 공부가 안된다고 칭얼대면서도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들을 보며 뭐라고 말을 붙여야할지 왠지 뻘쭘해져서…… 오늘은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의 날이구나. 두 달에 한 번씩 모의고사라는 형태의 일제고사를 보는 너희에게는 ‘빨리 끝난다’는 것이 가장 의미있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오늘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가 학생들의 성적을 근거로 줄서는 날이겠지. |
그날 많은 조합원들이 나처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일제고사에 저항했다. 어떤 사람은 담임 편지글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시감을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체험학습을 안내하고, 그러던 중 사립까지 포함 열 분의 선생님들이 파면·해임 처분을 받았다. 그들의 징계사유는 다음과 같다.
징계사유 1. 성실의 의무 위반 - ‘정부시책인 국가수준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담은 가정통신문을 학교장 승인 없이 발송하여 응시여부를 회신하게 함으로써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을 양산하였다’. 징계사유 2. 명령 불복종 - ‘시험당일 체험학습을 불허한다는 명령을 어기고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담임편지에 소개하여 학교장 승인 없이 임의승인하고, 체험학습 참가아동을 무단결석 처리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은 점’. 징계사유 3. 자료제출 불응 - ‘일제고사와 관련된 경위서 작성 및 문답 확인 감사를 거부한 점’ 이라는 요지의 징계 사유에 대한 답변입니다. |
나는 담임을 하면서 아이들의 소소한 일상을 담임편지로 보냈지만 한 번도 학교장의 결재를 받은 적이 없다. 그리고 체험학습의 경우도 갑작스레 생긴 집안일로 가는 경우가 많아서 다녀온 후 사후결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장 황당한 것은 세 번째 징계사유이다. 잘못이 없으니 없다고 말한 것이 죄목으로 추가된다는 것이 어느 사법체계에 있단 말인가? 징계를 당하신 어떤 선생님의 경우에는 교장실에서 언성을 높였다고 품위유지의 의무를 어겼다는 것이 징계사유로 올라갔다고 했다. 학교일에서 문제가 있어서 교장실에서, 얘기하는 것조차 이제 파면·해임을 불사해야한다는 것인가? 이것이 징계사유라면 담임편지를 학교장 결재 없이 올해만 3번 발송한 나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 이제 담임편지를 한번 보낼 때마다, 교장실에 한 번 들어갈 때마다 나는 내가 잘릴지 아닐지를 고민해야 한다.
대한민국 입시지옥에서의 교사는 하루종일 굴욕감을 느껴야 한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서 ‘시험에 나오는 거니까 꼭 외우라’는 말을 해야 수업이 굴러가고, 평가를 반대한다면서 수행평가를 해야 그나마 수업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고, 인권을 존중한다면서 교문지도를 묵인해야 한다. 그나마 전교조는 나의 이런 굴욕을 굴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구정물로 뒤덮인 나의 일상에서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맑은 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었다. 피말리는 입시지옥 경쟁시스템에서 나도 아이들처럼 좀비가 되어가지만 적어도 약자인 아이들을 물어뜯어 내 피를 공급받지는 않도록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데 이제 굴욕을 굴욕이라고 하지 못하고, 불순물을 불순물이라고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처럼 완벽한 좀비가 되어 약한 아이들의 피를 빨고 살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10명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단순히 내가 잘리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긴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던 내가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